반도체 경기 추락·유동성 자금 바닥, 회생까진 산너머 산 … 반도체 이외 사업 부문 과감히 매각해야
“하이닉스가 1조6천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지 불과 2개월만에 남은 돈은 6천6백억원이에요. 6조원이 넘는 부채를 갚느라 그렇죠. 게다가 반도체 가격이 지금 이대로라면 분기별 2천억~3천억원의 영업적자는 감수해야 합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채권단밖에는 없고 지원을 하더라도 화끈하게 하지 않으면 하이닉스는 힘들어요.” 전병서 대우증권 조사부장은 하이닉스의 생존해법을 “적자상태를 견뎌낼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채권단의 충분한 지원없이는 경쟁사에 치어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한다.하이닉스의 최대 위기는 유동성 부족이다. 올해 갚아야 하는 부채만 6조3천억원에 달한다. 다행히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채권은행간 협약에 따라 상환계획이 마련돼 상환해야 할 부채는 2조4천억원으로 4조원 가량 줄었다. 그래도 이 돈은 순순하게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러려면 제품을 팔아 영업이익을 남기는 수밖에는 없다.그러나 전망이 밝지 않다. 증권업계에서 추정한 이 회사의 올해 에비타(EBITDA,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 유입액)는 1조3천억원. 여기에 이자비용과 운전자금, 그리고 설비투자 자금을 빼면 오히려 올해 6천억원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제품을 팔아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팔수록 빚이 쌓인다는 얘기다. 이 계산에 따르면 올해 하이닉스는 총 3조원의 현금이 필요하다.투자유가증권·자산 매각, 1조원 마련이같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이닉스는 투자유가증권과 자산 매각을 통해 1조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상반기 걸리버스 농구단, 수처리 시설, 서울 영동사옥 매각 등으로 4천6백억원의 자금을 마련했고 하반기 LCD 사업부문과 해외현지법인이 보유한 맥스터 지분 매각 등을 통해 6천억원을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여기에 전환사채 1조원 그리고 지난 6월 해외DR 발행자금 1조6천억원까지 합하면 총 3조6천억원을 확보해 놓고 있는 셈이다.이처럼 있는 자금을 다 끌어다 쓴다 해도 문제는 있다. 하이닉스가 밝힌 자산 매각 계획이 제대로 이뤄질까 하는 부분이다. 이미 하이닉스는 LG반도체를 인수합병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은 매각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까지 실천한 사항은 거의 없다. 대표적인 것이 LCD 사업부문 매각 계획. 회사측은 “대만 중국과 LCD 사업부문 매각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말만 하지 말고 실제 매각해 자금을 은행에 넣어야 채권단도 회사의 자구노력을 인정할 것”이라고 지적한다.자산 매각 계획 성사여부도 걸림돌이에 하이닉스 관계자는 “통신단말기 LCD ADSL 사업부 등을 분사하면서 2만2천명의 직원을 1만5천명으로 줄였다. 아직 매각 대상자가 정해지지 않아 자금이 회사로 들어 오지 않았지만 올해 말까지 1조원은 차질없이 조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이닉스의 제품 경쟁력이다. 자금을 투입해 살리기만 할 뿐 체질 개선을 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위기가 닥쳐오기 때문이다. 구희진 LG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생산라인 규모에 비해 매출이 적은 편이다. 생산수율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또 PC용 D램 생산에만 의존하지 말고 서버나 PDA용 D램을 생산하는 하는 등 제품을 다양하게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HDTV·DVD 분야 진출 다짐이에 하이닉스 관계자는 “PDA나 서버용 시장은 규모가 적기 때문에 투자 메리트가 없다. 그러나 HDTV나 DVD 분야에 새롭게 진출해 PC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하이닉스는 올해 6천억~8천억원을 투자, 노후화된 생산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반도체 수율 향상과 회로선법 디자인툴(반도체에 미세한 회로를 심는 기술) 등을 개선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원가절감을 실현, 제품 경쟁력을 갖춰갈 방침이다. 또 D램라인을 비메모리 라인으로 교체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제품경쟁력과 함께 하이닉스가 주력하는 시장도 경쟁력을 갖춰야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지표는 PC 경기의 추세. 일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9~10월 사이 PC경기가 되살아난다면 의외로 하이닉스의 회생을 점칠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오는 셈이다.우동제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9월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개인들의 컴퓨터 구매가 늘어나고 있으며 인텔이 램버스D램 등 고가의 반도체보다는 중저가반도체를 사용하는 전략을 펴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경쟁사와 비교해 설비투자규모가 적지만 하이닉스로서는 오히려 좋은 상황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남아 있는 문제는 내년 자금 상황 계획이다. 올해 산업은행이 인수한 2조9천억원의 회사채는 내년 다시 만기가 돌아온다. 지금처럼 반도체 경기가 위축된 상태에서 영업이익으로는 회사채를 갚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렇다고 주가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올해처럼 해외DR 발행 등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최근 하이닉스의 재정주간사와 채권단이 내년 회사채 만기 도래분에 대해 이자지급 연기나 만기 상환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채권단의 고민은 ‘죽으려면 살고, 살려면 죽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웬만한 자금으로는 하이닉스를 살리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지금껏 지원한 자금이 대부분 손실처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채권단의 엄지손가락은 위로 향할 지 아래로 떨어질 지 업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