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평형 의무비율제 등 잇단 악재로 열기 ‘뚝’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도곡아파트‘재건축 아파트 수난시대 시작?’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치솟던 재건축 추진 아파트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소형평형 의무비율제도 부활에 2백50% 용적률 제한 발표, 저밀도지구 우선 사업지 선정 연기 등 굵직한 악재들이 한 달 단위로 터져 나왔기 때문. 이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인근 중개업소엔 매물이 쌓이고 매수세가 끊어지는 등 때 아닌 한파가 불기 시작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국 부동산시장의 특징이 재건축시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8월 들어 급격히 잠잠해졌어요. 5~6월 한창 붐이 일 때는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투자자가 연달아 방문하곤 했는데 요즘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사라졌습니다. 대신 당장 팔 수 없겠냐는 집주인들 문의가 늘었지요. 9월 들면 급매물도 상당수 나올 것 같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7월 이후 막차 탄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보게 생겼다”며 혀를 찼다.정부는 지난 7월26일 ‘전월세 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소형아파트 의무비율제도를 부활시켰다. 소형아파트 의무비율제도는 전용면적 18평 이하 소형아파트 건립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짓도록 강제하는 제도. 지난 98년 건설경기 활성화를 명목으로 폐지됐었다.이 제도의 부활로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평형 설계를 다시 해야 할 상황이다. 소형 비율이 늘어나면 조합원이나 건설업체의 부담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중대형 위주로 평형을 구성하려던 단지들은 크게 타격을 입게 됐다. 건설업계와 재건축 조합들이 반발하는 건 이 때문이다.7월 이후 매입자 손해 불 보듯아직 소형아파트를 얼마나 지어야 하는 지 비율 등 세부내용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정부는 반발에 상관없이 밀어 붙인다는 계획이다. 건교부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9월 시행을 목표로 의견을 수렴 중이다. 소형평형 비율 등 세부 항목을 조정하긴 하겠지만 방침 자체를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소형평형 의무비율제도 부활 발표 한 달 만인 8월27일, 또 하나의 메가톤급 발표가 터졌다. 서울시가 고밀도 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 조례를 개정키로 하고 향후 재건축을 추진하는 서울시내 모든 고밀도 아파트의 용적률은 2백50%를 넘을 수 없다고 명시한 것. 이에 따라 2백70~2백90%대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던 강남권 고밀도 아파트 30여개 단지들은 사업성 악화는 물론 재건축 시행 여부조차 불투명해지게 됐다.여기에다 청담·도곡 저밀도지구의 재건축 우선 단지 선정을 상당기간 유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 된 밥이나 다름없는 걸로 믿어왔던 저밀도지구 조합원들은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한순간에 불기 시작한 찬바람은 가격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 사업시행 시기가 불투명해진 청담·도곡 저밀도지구는 호가가 5백만원 이상 내리기 시작했고 용적률 제한을 받게 된 고밀도지구 아파트들은 사나흘 사이 1천만~2천만원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지난 1월에 사서 6월경에 판 사람들은 1억원 선의 시세차익을 올렸지요. 하지만 며칠사이 썰렁합니다. 호가도 5백만원 내렸어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명문공인 이영복 중개사는 최근 잇달아 나온 재건축시장 치명타 위력이 ‘상당히 세다’고 말했다. 그나마 도곡동 주공 저층아파트는 저밀도지구에 속하고 사업추진속도도 빨라 영향이 덜하다는 설명이다.하지만 사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일제히 집을 비워 놓았던 집주인들은 바빠졌다. 빈집이 많아야 사업추진이 빠르다는 근거없는 소문 때문에 주공 저층아파트 3천여가구 가운데 30%가 빈집으로 남아 있었지만 소용없게 됐기 때문. 오히려 서울시는 고의로 집을 비워 둔 단지는 우선 사업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방침이다.반면 반포지구, 청담·도곡지구의 중층 아파트시장은 상황이 심각하다. 이미 시공사를 선정한 단지들은 최악의 경우 사업 백지화도 각오해야 할 판이다. 삼성물산 주택부문을 시공사로 선정한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의 경우 당초 2백84% 용적률로 재건축을 추진해 왔다. 2백50%로 용적률이 낮아지면 가구당 추가 부담액이 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물산 주택부문도 2백50%로 용적률이 확정될 경우 이미 소요된 비용과 시공권을 포기할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수십~수백억원을 퍼부은 대형 건설사들이 자칫 투자비를 모두 날릴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하지만 조합원 사이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용적률 제한이 다시 풀릴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없는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외로 조합원들 반응이 거세지 않다는 것. 잠실지구 주공5단지 인근의 김모 중개사는 “적당히 반발하면서 겨울을 넘기면 다시 용적률 상향 조정이 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서둘러 매도하려는 사람들도 “반년만 더 기다려 보자”면서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다.단기 투자자들 급매물 출하 잇따를 듯재건축시장의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가격 하락이 시작됐고 매도 타이밍을 놓친 단기 투자자들의 급매물 출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 서초구 반포동 건설공인 김석중 중개사는 “용적률 강화 발표 이후 기존 하한가 선에 호가가 맞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상한가 대비 3천만~4천만원 낮았던 하한가에 호가가 머물러 실제 가격 하락 폭이 상당하다는 것이다.부동산전문가들은 “과도하게 오른 가격이 조정기를 맞을 때가 됐다”는 의견이다. 부동산뱅크 김우희 편집장은 “소형평형 의무비율제도나 용적률 강화 방침은 강남 아파트 값을 진정시키려는 처방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당분간 조정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