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개발 고집 … 불황에도 ‘플러스 성장’

R&D 적극 지원, 수입약품 대부분 국산화 앞장 … 부채비율 24%, 재무구조 튼튼

경동제약은 88년 국내 최초로 항바이러스제 동결건조 주사제 개발을 시작으로 많은 치료제 신약을 개발했다.25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동제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4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5월 인기연예인 ‘김태욱-채시라’ 부부를 CF모델로 세운 빈혈치료제 ‘헤모사랑’의 광고가 방송을 타면서 경동제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경동제약의 이번 제품광고는 설립이래 처음. 그도 그럴 것이 경동제약은 그동안 병원을 상대로 한 치료제 시장에만 주력해왔기 때문이다.자본금 5백만원으로 지난 76년 설립된 경동제약은 처음엔 외국에서 원재료를 수입, 이를 재가공한 제품들을 생산판매했다. 이들 제품은 일반 수입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 개인병원 약국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경동제약은 이런 경영전략을 수정했다. 신약개발 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경동제약 관계자는 “매년 수입에 따른 막대한 금액이 해외로 빠져나가 이를 막고 국내 제약업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자 전략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경동제약은 이런 전략을 수립한뒤 지난 88년 외자를 유치, 중앙연구소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경동제약의 치료제 외길 신화가 시작됐다. 지난 88년 국내 최초로 항바이러스제 동결건조 주사제 개발을 시작으로 많은 치료제 신약을 개발했다.중앙연구소 설립, 국산치료제 개발 매진이런 성과에 자신감을 얻은 경동제약은 97년 제1합성공장을 신축한 데 이어 이듬해 1월 20여억원을 투자, 제2합성공장을 준공했다. 연구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이런 연구개발투자가 결실을 맺어 국내 최초로 염산디페메린 염산티로프라미드 아세클로페낙 실로스타졸 펠로디핀 등의 원료합성을 하는 데 성공했다.비싼 외국제품을 수입해 사용하던 병원 및 약국이 경동제약을 찾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경동제약의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다른 경쟁제약사들이 IMF경제위기를 맞아 휘청거릴 때도 경동제약은 지속적인 성장을 누렸음은 물론이다. 실제 경동제약의 매출은 지난 97년 2백5억원에서 98년 2백25억여원, 99년 3백40여억원, 지난해 4백16억원으로 지속적인 ‘플러스 성장’을 보였고 IMF를 졸업한 올해에도 상반기에만 2백4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 함께 경동제약은 지난해 일본 동남아시아 남미 중동 등 세계 각국에 원료의약품과 완제품을 1백50만달러 어치 수출하기도 했다. 올해도 해외 직수출 비중을 확대해 지난해 보다 30% 이상 늘어난 2백만달러의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처럼 IMF 때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했지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동제약은 IMF 이전인 97년 원료합성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시설자금을 차입했고 모자란 자금은 외화로 충당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IMF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98년 원/달러 환율이 두배 가까이 급상승해 외화로 차입했던 30억원은 60억원으로 불어나 총차입금은 국내은행권에 빌린 20여억원을 합쳐 80여억원으로 늘어났다.‘비전 2000’ 세워 조직·업무 혁신 노력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직원들은 98년부터 2년간 6백%의 상여금 중 절반인 3백%를 반납하는 등 ‘회사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회사도 직원들을 감원하는 등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비전 2000’이라는 계획을 세워 조직 및 업무의 혁신 쪽으로 노력했다.이런 노력으로 경동제약은 99년말 외화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현재 부채비율 24%라는 튼튼한 재무구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IMF시절 동종제약업계의 매출증가율이 ‘마이너스’였지만 경동제약은 연평균 ‘플러스’ 20%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경동제약은 앞으로도 치료제 전문 기업으로 성장키 위해 중장기 사업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 사업계획의 핵심은 원료의약품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해 생산 판매하던 단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요 제품들을 1백% 자체 R&D에 의해 기술개발 및 원료합성하고 또한 새로운 제형들도 계속 개발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동제약은 현재 매출액 중 5% 미만인 연구개발비를 점차 확대해 7∼8%대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류덕희 경동제약 회장은 “기술개발에 투자를 확대해 획기적인 개량 신약을 출시하고 또한 약물전달시스템도 지속적으로 연구해 빠른시일내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라고 비전을 밝혔다.이와 함께 경동제약은 지난 7월 아시아 태평양지역 6개 국가에 수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미국의 다국적 제약기업 파마시아업존(P&U)사를 통해 신약치료제 수출을 늘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재 연간 약 1백50만달러 규모인 수출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CEO탐구류덕희 회장창업 공신 아끼며 근검절약 솔선수범경동제약 류덕희(62) 회장은 창업공신들을 무척 아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경동제약에는 류회장과 20여년간 동고동락한 창업동료들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려울 때도 자리를 지켜준 동료’가 고맙다는 류회장의 뜻에서다.류회장은 사업 초창기 운영자금난에 봉착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물론 사채업자들마저 돈꿔주는 것을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고등학교 동창이 자신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와 류회장에게 내밀며 “회사를 소신껏 이끌고 나가라”고 격려까지 해줬다고 한다. 류회장은 이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경동제약 임직원들은 류회장이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도왔던 친구를 생각하며 창업공신들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또한 류회장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류회장은 ‘남의 것을 아끼는 것은 곧 내 것을 아끼는 것’이라며 절약을 생활화해 IMF관리체제하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매출 20% 성장을 이뤄내는 저력을 나타내기도 했다. 류회장은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류회장은 사업 초창기 격주 토요일 휴무제를 도입, ‘가정의 날’과 ‘체육의 날’로 정해 직원들이 가정과 건강을 위해 쉴 수 있도록 했다.류회장은 가끔 고아 및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복지시설을 찾는다. 오래전 한 복지시설로부터 ‘사정이 어려우니 영양제 등 몇 가지 약품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편지를 받고 내친 김에 간부들과 영양제 소화제 해열진통제 등의 약을 갖고 3개의 복지시설을 방문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제약업계에선 “류회장의 따뜻한 마음이 직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 오늘의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약력: 38년5월 경기 화성 출생. 56년 성동고 졸업. 61년 성균관대 화학과 졸업. 69년 한올제약(주) 부사장. 76년 경동제약(주) 대표이사 사장. 97년 경동제약(주)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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