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검사 시스템·화상 입찰로 시장 평정

‘중고차’라는 단어를 접할 때 한국 소비자들이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는 넓은 주차장과 이를 가득 메운 차량들이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쿄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도로변에 화려한 선전 깃발을 높이 내걸고 가격표가 붙은 차량들을 반듯이 세워 놓은 중고차 판매점을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중고차 판매점의 상당수가 프랜차이즈 방식의 기업형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고차 전문업체는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회사와 일반 소비자는 접촉하지 않으면서 중고차를 판매회사에 넘겨 주기만 하는 경매회사로 나뉜다.경매회사의 특징은 무엇보다 규모에 있다. 판매회사에 넘겨줄 자동차를 상시 대량으로 보유해야 하다 보니 광대한 부지가 필수적이다. 교외에 설치된 경매장은 수천대의 자동차로 장관을 이루고 중고차를 찍어(?)가기 위해 나온 판매회사의 구매담당자들로 북적이는 것이 경매회사의 일반적 풍경이다.하지만 이런 선입견과 상식을 완전히 뒤엎고 중고차 경매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스타일로 성공신화를 일궈낸 기업이 있다. 텔레비전을 이용한 경매 방식(일본에서는 ‘테레비 옥션’이라 부름)으로 중고차 시장에 새 바람을 불어 넣은 ‘오크 네트’라는 회사다.지난해 13만7천대 중고차 경매 성사 ‘기염’오크 네트의 장사 방식은 철저히 반(反)상식이다. 경매전문업체이면서도 재고로 갖고 있는 중고차는 단 한 대도 없다. 변변한 경매장을 갖추지 못했지만 회원이라는 이름으로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판매회사는 6천5백여 업체에 이른다. 그러면서 지난 한햇동안 13만7천대의 중고차 경매를 성사시켜 1백28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경상이익은 무려 30억엔에 달했으며 최근 5년 동안 매출은 2배, 경상이익은 1.6배의 고성장가도를 달려 왔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장사 방식이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당연한 결과라며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성공의 열쇠는 시대의 흐름을 앞서간 센스와 첨단의 정보활용 소프트웨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코스트 다운에 있었기 때문이다.오크 네트의 본사에서는 매주 4일간 중고차업자간의 경매가 열린다. 그러나 판매회사 사장들이나 이들 회사의 구매 담당자가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본사를 방문하는 일은 별로 없다. 자신들의 점포와 오크 네트 본사와의 사이에 위성회선으로 연결된 전용단말기가 설치돼 있어서다.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업체는 오크 네트가 띄운 출품 리스트를 토대로 미리 마음에 드는 자동차를 고른 후 경매에 참가하기만 하면 된다. 경매는 물론 경쟁업체들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한 채 단말기 화상통신을 통해 이뤄지며 오크 네트의 중앙 통제실에서 진행 업무를 맡는다. 회원들이 오크 네트에 내는 회비는 매월 약 5만엔. 이 회비와 회원들이 내는 중고차 출품수수료(대당 6천~9천5백엔)와 성약수수료(6천~7천엔)가 오크 네트의 주수입원이다.일본이 아무리 신용사회라 하지만 중고차를 현품을 보지 않은 채 산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 일이다. 오크 네트가 가진 강점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 거래 회원들의 절대적 신뢰를 얻었다는 데 있다. 중고차는 연식과 차종이 같다 하더라도 운전자에 따라 차의 상태와 주행거리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또 사고 경력 여하에 따라 값도 큰 폭으로 달라진다. 중고차 판매업체들이 다리 품을 팔고 돈을 들여가면서 굳이 경매장을 찾아가 차량을 구입하는 것도 모두 현품을 눈으로 확인하고 사들이기 위해서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하지만 오크 네트는 일본 전역을 커버하는 검사체제를 구축해 놓고 독자적인 검사 노하우를 축적, 이를 1백% 활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다른 경매업체들이 모방할 수 없는 이 회사 최강의 무기야말로 ‘검사’에 있다고 말한다. 오크 네트에는 현재 본사와 전국 6개소의 영업거점에 모두 1백50명의 전문 검사원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의 주업무는 회원사들로부터 접수된 중고차 출품 리스트를 기초로 1주간의 검사스케줄을 짠 후 해당 차량이 있는 판매점을 순회하는 것이다.검사원들의 눈은 예리하고 한 점의 빈틈도 없다. 이들은 차량 주위와 바닥, 보닛 속은 물론이고 사소한 흠집과 수리 경력의 유무를 빠짐없이 잡아낸다. 검사항목은 무려 2백50개에 이르고 여기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중고차를 12단계로 평가한다.검사원들이 차량을 마치 해부하듯 파헤치고 엄격히 등급을 매기다 보니 차량을 출품한 측에서는 검사 결과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오크 네트가 설득 카드로 맞서는 것은 바로 검사원들이 항시 휴대하고 다니는 전용단말기다. 검사원이 검사 기록을 현장에서 단말기에 입력시키면 그 결과는 바로 본부의 DB로 전송된다. 과거의 검사 기록이 이미 방대하게 축적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흠집에는 어떤 평점을 내릴 것인 지가 자연스럽게 케이스별로 분류돼 나온다.오크 네트도 물론 예전에는 대량의 자료와 사진을 대조하면서 검사업무를 진행했지만 휴대단말기 도입으로 엄청난 ‘시 테크’가 가능해졌다. 중고차 1대당 검사 시간은 10~15분이면 충분해 검사원 1인이 1년에 맡는 차량만도 약 2천6백대에 달하고 있다. 이 회사가 검사업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장비의 현대화에만 힘을 쏟은 것은 아니다. 인력의 정예화를 위해 철저한 인사고과제를 적용하고 있는 게 또 다른 강점이다. 오크 네트는 회원사들로부터 클레임이 제기될 경우 담당자를 찾아내 3개월에 1회씩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다.검사 인력은 주위의 성가가 높아지자 회사 차원을 넘어 일본 중고차업계 전반으로 활동 범위를 급속히 넓히고 있다. 이 회사의 후지사키 키요다카 사장은 “검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전담부서를 독립시켜 자회사로 만들었더니 외부에서도 일감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자랑한다. 지난 96년에 독립한 오크 네트의 자회사 ‘AIS’는 중고차 검사업무를 맡아 달라는 의뢰가 크게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토요타 자동차와 혼다 계열의 중고차 판매회사들로부터 각각 5%씩의 출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이와 함께 이제는 두 회사들이 개최하는 경매 행사에 나오는 중고차들의 검사를 도맡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AIS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중고차 평가의 실질적인 업계표준을 우리가 획득하자”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직원들의 자부심이 한껏 고조된 상태다.전문가들은 오크 네트 성공 비결의 핵심을 회원사들이 경매장을 오가는 시간과 물류 코스트를 줄여 업무효율화를 뒷받침했다는 데서 찾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비슷한 시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오크 네트가 또 다른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정보판매 비즈니스에도 의욕오크 네트는 특유의 네트워크와 화상 시스템을 이용, 지방의 꽃 생산자와 도시 중소상인을 연결하는 화훼사업에서도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심혈을 기울이는 미래 역점사업 중 하나는 색다르게도 정보판매 서비스업이다. 후지사키 사장은 “앞으로도 중고차 경매 시장이 계속 성장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신종 수익창출원으로 정보판매 비즈니스를 중점 육성할 각오”라고 밝히고 있다. 수많은 회원사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모아 가공하고 이를 역으로 회원사들에 제공하는 사업을 펼쳐 나갈 방침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테레비 옥션’에 참가하는 회원들의 각 점포에 전용단말기를 설치한 후 재고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이를 일반 소비자들에게 게시하면 상품회전 속도를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후지사키 사장의 견해에는 경쟁업체 중에서도 동조하는 곳들이 적지 않아 이미 라이벌업체의 48개 회원사가 오크 네트의 단말기를 설치한 상태다. 오크 네트는 지난 한햇동안 33억엔의 수입을 올린 정보서비스업을 발판으로 타업체들과의 제휴를 적극 추진, 중고차에 관한 한 정보 교류의 폭을 최대한 넓혀 갈 방침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