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vs SAP “ERP 목장의 혈투”

99년 7월 테헤란로 포스코빌딩 동관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검은 가방을 든 두 사람이 올라탔다. 짧지만 의미있는 눈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표정을 숨긴채 결승장인 포스코 회의실로 향했다. 둘은 각각 사인칸을 비워둔 계약서와 미리 챙겨둔 사직서를 품고 들어섰다.“6백억원 상당의 딜링이 오늘 결정된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승자에게는 수 십억의 인센티브와 가족과 오붓하게 보낼 수 있는 안락한 휴가가 기다린다. 그리고 안 보이는 ‘금메달-끝없는 희열’이 보장된다.”딜링을 주도하는 한국오라클과 SAP코리아 영업대표는 저마다 승리를 자신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다. 나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것이다’를 되내이고 되내였다.포항제철(포스코)은 99년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ERP) 구축을 추진키로 하고 포스코배 ERP쟁탈전을 개최했다. 최종 참가선수는 미국의 오라클과 독일의 SAP. 한국오라클의 강병제 회장, SAP코리아의 최해원 사장(전임 사장)이 각각을 대표해 수주전에 돌입했다.포스코 ERP 구축 놓고 자존심 대결ERP시스템의 총 예상 금액은 2천억원. ERP핵심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은 약 6백억원으로 알려졌다. ERP 단일 프로젝트로서는 사상 최대 금액. 핵심 소프트웨어로서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금액 못지 않게 포스코 프로젝트가 미치는 영향은 금액으로 표현하기 힘들다. 단일 철강사업으로 수조원대의 매출을 갖고 있는 포스코를 장악한다는 것은 향후 10년간 관련 프로젝트를 앉아서 수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전산 특성상 핵심 소프트웨어를 선택하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및 확장시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이밖에 포스코는 세계 최대 철강기업. 철강분야에서는 대표적인 사이트로 확보할 수 있는 파트너다. 이 때문에 한국오라클과 SAP코리아는 포스코에서 목숨을 건 한판 승부를 벌였다.양사의 싸움은 한국 시장 이상의 싸움으로 확대됐다. 양사의 로비는 관련 부처 산업자원부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정치권까지 확대됐고 이 때문에 유상부 포철 회장이 정치권 이곳 저곳에 불려다니기도 했다는 후문이나올 정도로 치열해졌다. 심지어 한국오라클은 수완을 발휘, 미국 상무부가 포스코에 오라클의 ERP시스템을 채택해 달라는 압력성 서한을 보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우여곡절 끝에 포스코 ERP전투는 한국오라클의 승리로 돌아갔다.그러나 명화는 여운이 길다고 했던가. 2000년 4월 한국오라클 핵심 요직을 맡고 있던 최승억 상무가 경쟁사인 SAP코리아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건이 벌어진 것. 포스코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수주의 주역인 최사장을 영입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이 일로 한국오라클은 발칵 뒤집혔다.한국오라클과 SAP코리아는 다국적 기업의 한국지사다. 미국 본사와 독일 본사 소프트웨어를 국내에 판매하는 판매대리점이다. 따라서 세일즈가 국내 사업의 중심이 된다. 물론 현지화라는 국내 환경에 맞도록 바꾸는 개발 부문도 있지만 매출확대의 최대기능은 세일즈 즉 판매기능이다.SAP, 오라클 출신 최사장 영입 선전포고95년 SAP는 세계적인 ERP로 인정받고 있었고 그에 비해 오라클의 ERP는 인지도가 떨어졌다. 특히 한국이라는 시장에선 시장 선점이란 면에서 한 수 아래였다. 하지만 DB의 저력을 갖고 있던 오라클도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비록 삼성은 잃었지만 98년부터 분발에 나서 LG를 잡고 업계 최대 사업장인 포스코까지 거머쥔 것이다.출발은 늦었지만 SAP와의 한판 승부가 두렵지 않은 체력을 갖게 된 셈이다. 사실 95년까지만 해도 국내 데이터베이스(DB) 시장에서 한국오라클을 대항할 경쟁자가 없었다.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선두를 유지해온 오라클은 국내 전산 인프라 즉,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주도하고 수천억원의 매출을 가져갔다. 그러나 SAP의 출현으로 국내 시장에서 도전을 받게 됐다.95년 설립된 SAP코리아는 독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일계 기업. 89년에 설립한 한국오라클에 비해 6년이나 늦었지만 탄탄한 기술을 바탕으로 ERP시장을 공략, 삼성그룹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후 ERP시장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등 그룹내 대형 사업장을 고객사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특히 ERP 분야에선 반대로 오라클이 후발주자라는 점에서 한국오라클을 바짝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양사는 서로가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며 비교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피튀기는 혈전의 연속이다.IMF 이후 국내 기업들이 경영혁신을 위한 필수 시스템으로 ERP 솔루션 구축을 늘리고 있다. 기업의 프로세스를 바꾸는 만큼 시간과 돈이 필요한 프로젝트다. 따라서 ERP 프로젝트는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몇백억원에 이르는 빅딜이 많다.ERP시장 황금어장 급부상 경쟁 치열지금 양사의 혈전은 대규모 기업집단은 물론이고 화학 금융 제조 통신 서비스 등 웬만한 사이트에서 번번히 부딪친다. 양사간 세일즈맨의 경쟁은 3백65일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산업별 사이트에서의 경쟁만이 아니다. 혈전의 최전방에 선 양 CEO의 경영스타일에서 프로젝트의 필수 파트너 협력사, 또 기업내 조직과 문화면에서 서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협력 파트너의 경우 삼성이 SAP코리아와 손잡고 있고 LG가 한국오라클과 가까이 있으면서 ERP 솔루션을 두고 국내 대표적인 대기업이 갈라져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용어 설명ERP란Enterprise Resource Planning의 약자. 설계 생산 구매 판매 조달 등 기업 활동 정보를 실시간 데이터로 정립하는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뜻한다. 최근 고객관리(CRM), 생산부품 조달(SCM) 등으로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오라클·SAP 어떤 회사인가전세계 기업솔루션 좌지우지 ‘SW 공룡’오라클은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개발업체. 오라클DB시리즈로 국내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해 왔다. 컨설팅 지원 시스템통합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해외판매가 전체 수입의 50%를 차지하고 있다.세계 1백45개국에 지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규모 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포천지가 선정한 1백대 기업의 65%가 오라클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신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오라클은 첫 프로젝트인 미 국방부 컴퓨터 상용화 사업에 참여할 당시 프로젝트 명. 프로젝트명을 회사 이름으로 따 왔다.오라클은 77년 설립된 24세 기업. 오라클의 성공 요인으로 `고정 관념을 타파하는 ‘젊은 마인드’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엘리슨 회장은 98년 CPU와 키보드만을 갖춘 네트워크컴퓨터(NC)를 주창했으나 상용화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NC개념은 인터넷과 함께 현실속에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지난해 전세계 매출 1백9억달러(5월 결산), 약 10%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인원은 4만3천명이 근무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 사업으로 출발해 90년대 중반부터 ERP사업 및 컨설팅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BT GE 포드 델 HP 포항제철 등이 주요 고객이다. 오라클9i를 중심으로 한 데이터베이스, e비즈니스수이트라는 ERP솔루션이 주력 상품이다.SAP은 1972년 설립된 독일계 기업. SAP은 설립초기부터 ERP 등 기업용 솔루션을 개발 공급해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포천지 5백대 기업 중 80% 이상이 SAP의 솔루션을 사용할 정도로 시장 지배력이 강하다. 현재 세계 50개국에 지사를 둔 SAP의 지난해 매출액은 62억6천만유로(약 7조5천억원)에 달한다. SAP의 최고경영자는 창업자인 하소 플라트너와 공동회장인 헤닝 카거만이다. 하소 플라트너는 제조와 서비스 부문에서 전략 마케팅 솔루션 개발 등을 책임지고 있다. 헤닝 카거만은 물리학자이며 수학자로 82년 SAP에 합류해 영업 유통 컨설팅 등을 맡고 있다.주요 고객은 GE 포드 BMW 화이자 소니 컴팩 코닥 등 1백20개국에 1만4천여 고객사를 두고 있다. 솔루션이 도입된 사이트는 3만6천여개이고 사용자수는 1만명에 달한다. 현재 종업원은 올 6월 현재 2만6천7백74명이다. 본사는 독일 발도로프에 있다.SAP의 ERP 솔루션 이름은 ‘mySAP.com’이다. mySAP.com은 산업별로 일반제조 금융 공공 소비재 서비스 등으로 구분돼 있다. 산업별로 적용되는 모듈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EP, CRM, SCM, E프로큐먼트, BI, HR, 파이낸셜 등이다. SAP의 올 2분기 실적을 보면 솔루션 라이선스 수익이 총 6억4천6백만 유로로 전년분기 대비 17% 성장했다. 기타 컨설팅 교육 유지보수 등을 합치면 올 2분기에 18억5천3백만 유로를 벌어들여 전년동기 대비 24% 신장했다.지역별 매출 비중은 유럽 중동지역이 36%, 북미 14% 아태지역이 15%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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