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투자시장에 ‘코리아 브랜드’ 없다

외국계 투신사, 글로벌 네트워크·자본력·선진기법 앞세워 한국시장 대공략 … 국내업체 ‘판매창구’ 전락 위기

조만간 국내 간접투자 시장이 외국계 회사를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것은 투신업계의 공공연한 얘기다. 우선 국내 대표적인 3대 투신사 중 멀쩡한 곳이 한 곳도 없다. 현대투신은 다국적 금융기관인 AIG에 넘어갈 것이고,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역시 독자생존은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한국투신운용이 스위스의 자산운용사인 UBS투신에 매각될 것이란 소문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투신증권 관계자는 “지난 3월 한국투신운용은 UBS투신운용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면서 내년 3월까지 10%의 지분을 인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소문을 일부 시인했다. 그는 이어 “UBS투신에 한국투신증권도 사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투신사·자산운용사, 제휴·매각 계획대한투자신탁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대투는 이미 지난 99년 영국 금융회사 리젠트그룹에 매각하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고 지금도 계속 외자유치를 추진 중이다. 대투는 메릴린치를 주간사로 외국계 금융기관과 접촉 중이고 매각이 성사되면 외국회사가 된다. 선진금융기법을 수용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목적이지만, 경영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풀이된다.한투와 대투가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삼키고도 경영 정상화가 어렵다는 주위의 시각은 최근 경영이행각서의 개정판을 만드는 데서도 드러난다. 지난 99년과 2000년 7조9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두 투신사는 지난해 9월 금융감독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에 경영 정상화 각서를 제출했다. ‘2001년 경상이익 흑자, 2002년 자기자본 플러스 전환’ 등 연도별로 계획을 세웠지만 달성된 것이 거의 없다. 금감위 관계자는 “사실상 목표 달성은 어렵다”며 “조건을 완화하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에 새로 각서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투신업계 전문가들은 “생존의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명을 연장시키는 처사”라고 비난한다.이들 대형 투신사뿐 아니라 중소규모의 투신사와 자산운용사도 외국에 매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조흥투신은 연말까지 외국계 금융기관에 매각키로 했고, 다임인베스트먼트 등 자산운용사 2~3곳도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외국계 회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시장이 점점 외국사 아니면 안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셈이다.이렇듯 국내 회사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외국계 금융회사는 눈에 띄게 진출이 활발하다. 프랭클린 템플턴투신과 슈로더투신이 이미 국내 시장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며, 도이치투신운용은 예비허가 신청서를 금감원에 낸 상태다. 도이치투신은 영국의 자산운용전문 지주회사를 통해 한국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다. 세계적인 금융회사 메릴린치도 투신시장의 진출을 진지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또 지난 8월부터 투신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한 피델리티 역시 진출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피델리티는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투신상품의 인가 조건 등을 면밀히 따져가며 내년 초 진출키로 했다. 지난 99년 한국투신과 판매 대행 계약을 맺으며 한국 땅을 밟은 피델리티는 1천3백조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다. 이 업체의 특징은 개별기업의 펀더멘털을 분석,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투자하는 것. 이 때문에 시장의 변동성이나 경제흐름을 예측하는데 포커스를 맞추지는 않는다. 이런 운용철학이 시장에서 신뢰를 받아 일본에서는 이미 10대 투신사로 진입한 상태다.국내 투신업체들은 이들이 비록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본력을 배경으로 들어오지만 영향력은 미미할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상품 판매조직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와 제휴 등을 통하지 않고는 세력을 넓힐 수 없다고 장담한다. 국내 투신사 관계자는 “우리는 16조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지만 템플턴투신은 고작 1조5천억원 정도를 운용한다”며 “자금 규모면에서 국내 업체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외국계 장기 운용, 수익률 승리자 될 것이에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국내 투신업체들이 단기성 자금을 운용하는데 비해 외국업체는 장기자금을 운용한다는 데서 경쟁력이 드러난다”며 “자금규모는 작지만 결국 수익률 승리자는 외국업체가 될 것이고 이같은 실적은 국내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라고 반박한다.국내 투신업체들의 평균 자금운용 기간은 10개월, 이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지 못할 정도로 최단기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단기간의 운용실적으로는 안정된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 지난 수십년 동안 펀드를 운용한 세계 투신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펀드 수익률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업체가 얼마 뒤 하위로 떨어지는 모순은 이처럼 단기 자금을 운용해서다.장기자금과 확고한 운용철학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템플턴투신의 활약은 이미 오래 전부터 투신업계의 화제다. 올 초부터 최근까지 주식형 펀드의 6개월 누적수익률 기준으로 1위를 놓쳐 본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그만큼 안정적으로 펀드를 운용했다는 얘기다. 투신업계 전문가들이 “고도의 실력이 필요한 자산운용은 외국계 회사가 독차지하고, 국내사는 이들이 내놓은 상품 판매에 만족하는 시대가 온다”고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인들이 국내 펀드에 투자하는 시대가 되었을 때 이들의 자금 역시 외국계 투신사가 독차지 할 것이란 분석이다. 송승효 조흥투신 사장은 “외국인들이 국내 펀드에 투자하기 시작한다면 아무래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외국계 회사를 통할 것”이라며 “이 시장을 보고 외국계 업체들이 국내 진출을 준비중일 것”이라고 말했다.국내 투신업체들의 또 다른 고민은 고객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국내 총 통화는 4백40조원, 이중 3백40조원이 은행에 똬리를 틀고 웅크리고 있다. 이중 3백조원은 1년 미만의 단기 예금상품에 가입돼 있다. 국내 대부분의 자금이 금리 5%도 안 되는 은행권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만큼 투신시장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는 얘기다.지난 99년 투신권에 한창 자금이 몰릴 때 투신사의 고객 예탁금은 2백50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1백60조원으로 ‘팍’ 줄었다. 은행 신탁자금 역시 같은 처지다. 99년 1백80조원을 넘었던 예탁금이 지금 80조원에도 못 미친다. 종금사에 맡겨둔 고객의 자금도 99년 30조원을 정점으로 현재 10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국내 시장 일본화도 우려국내 투신사들의 고민은 국내 시장이 일본화 되어 간다는 점으로 귀결된다. 유태호 다임인베스트먼트 사장은 “외국 금융회사와 접촉하면서 느낀 점은 국내 시장이 점점 일본화되어 간다는 것”이라며 “최근 3년내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일본 시장을 잠식한 것처럼 한국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침체된 일본시장에서 눈을 돌려 외국시장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 그리고 오랫동안 자산운용 노하우를 갖고 있는 다국적 금융기관의 득세가 어우러져 일본시장을 잠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일본은 노무라 다이와 니코 등 3대 투신사가 건재하지만, 국내 3대 투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국내 투신사들이 하루 빨리 펀드매니저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리서치조직을 강화하는 노력을 한다면 승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한국투신·대한투신 경영개선 어떻게 됐나자구계획 불투명 … 이행각서 아직도 수정 중공적자금을 집어삼킨 한국투신과 대한투신, 독자 생존 가능할까. 지난 99년과 2000년 총 7조9천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한투와 대투의 경영개선계획이 불투명해졌다. 지난해 9월 금융감독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와 맺은 경영개선계획을 또 다시 수정하고 있어서다. 12월초 개선계획이 나온다면 이번이 3번째. 이처럼 철썩같이 지키겠다고 맹세한 계획을 불과 1년 뒤에 백지화시키자 투신업계의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한투와 대투가 내놓은 자구계획안을 보자. 한투의 경우 2001년 3월 경상이익 흑자 전환, 2002년 9월 자기자본 플러스 전환, 그리고 2003년 영업용순자산비율 1백50% 달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6월 금감원 조사결과 경상이익 흑자전환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다음 약속의 이행도 불투명한 것으로 결론을 냈다. 대투의 상황도 비슷하다.금감원 관계자는 “이들이 제시한 개선계획은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투신증권 관계자도 “지금 상태로서는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 현대건설과 하이닉스의 채권상환이 연기됐고, 종합주가지수 등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두 업체가 제시한 경영개선계획에는 “경영개선 목표는 3년간 종합주가지수가 15~30% 상승하고, 수익증권 수탁고가 5~15%씩 확대된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고 못 박혀 있다. 지난해 종합주가지수가 수직 하락하고 있음에도 이런 전제 조건을 정부가 인정해 준 자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단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때문에 “한투와 대투를 살리기 위해 서로 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이런 비판이 부담이 됐는지 금감위는 새로 맺는 각서 당사자에 이름이 빠져 있다. 예금보험공사와 두 투신사가 다시 합의해 12월초 수정 각서를 내놓을 계획. 새 각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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