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비스, 출범 1년만에 매출 1조원 육박 … 중국 투자 등 글로벌 강화로 생존모색
국내 화학섬유(이하 화섬)업계가 IMF이후 지금까지 재편의 회오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리한 증설로 금융비용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2000년대에 살아 남을 국내 화섬업체들은 몇이나 될까.업계 재편 구도한때 내로라 했던 고합 동국무역 새한 대하합섬 금강화섬 등 국내 화섬업체들이 잇따라 워크아웃 및 화의에 들어갔거나 사라졌다. 특히 고합과 새한의 경우 현재 폴리에스터 섬유사업 설비 매각을 추진하고 있어 덩치가 한참 쪼그라들 신세다. 이들 모두는 9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 증설을 주도했다가 무리한 설비투자로 금융비용 상승과 공급과잉을 초래해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국내 화섬업계에서 가장 높은 주가와 현금보유율을 자랑하던 태광산업 역시 90년대 후반부터 악재에 시달리면서 위상을 잃게 됐다.이처럼 국내 대형 화섬업체들이 선두그룹에서 대거 이탈하면서 업계 전체가 재편바람에 휩싸였다.현재 국내 화섬업계는 SK케미칼 SKC 등 SK그룹의 섬유계열사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주)효성이 태광을 제치며 고지를 점령, 자리를 굳히고 있는 형세다. 여기에 SK케미칼과 삼양사가 지난해 폴리에스터 부문을 따로 떼내 설립한 휴비스가 급속도로 선두그룹을 추격하고 있다. 코오롱도 약진하면서 선두 자리를 넘보고 있다. ‘SK-효성’의 2강 체제를 휴비스와 코오롱이 바짝 추격해오는 4강 구도가 짜여지고 있는 것이다.외형상으로 보면 태광·대한화섬도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렇다할 호재가 없는 한 예전 모습을 되찾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이미 스판덱스 부문에서 효성에 패권을 완전히 뺐긴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다.부문별 시장 주도화섬업계가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새로운 주도업체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폴리에스터 필라민트 부문에서 효성과 휴비스가 시장주도 업체로 자리 잡은 사실이다.폴리에스터 필름 부문에선 세계 4위 업체인 SKC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SK케미칼은 폴리에스터의 원료인 TPA를 생산해 휴비스 등에 공급하고 있고 폴리에스터 필름에 주로 쓰이는 DMT는 국내 독점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휴비스는 품질과 규모면에서 경쟁우위에 있던 삼양사의 폴리에스터 설비에 SK케미칼의 설비가 통합되면서 규모와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강화됐다.PET병 칩 부문에선 SK케미칼이 단연 선두다. 직접 생산하는 PET병 칩의 매출 규모가 지난해 1천6백60억원으로 99년 6백60억원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PET병 칩의 생산 규모를 2백30t에서 4백30t으로 증설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은 지난해 폴리에스터 섬유사업을 관계사인 휴비스로 분사시킨 후에는 TPA/DMT와 폴리에스터제품 중 PET병 칩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주력사업으로 등장했다.고수익 제품인 스판덱스(폴리우레탄 탄성사) 부문에선 현재 국내에선 효성이 이미 패권을 장악한 상태. 그동안 국내 3대 생산업체인 태광산업과 효성, 동국무역이 생산라인을 증설해왔다. 국내 1위 업체이자 미국 듀폰에 이어 세계 2위였던 태광산업은 효성과 동국무역, 듀폰 등에 상당부분의 시장을 내주게 됐다. 나일론원사·타이어코드·PET병에서도 효성이 역시 1위를 달린다. 효성은 지난해 울산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 증설이 완료됨에 따라 세계 1위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연간 5만 1천t 규모에서 6만8천t으로 생산능력을 늘림에 따라 연산 6만7천t인 미국의 얼라이드시그널을 제치고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이로써 효성은 나일론 타이어코드지, 폴리에스터 타이어코드지, 스틸코드 등 3대 타이어보강재를 모두 생산하는 업체가 됐다.산업용사, 인조피혁, 멤브레인 등에선 코오롱이 세계 5~6위권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타이어코드지나 PET필름 등에선 효성이나 SK케미칼, SKC 만큼의 규모나 경쟁력을 갖진 않지만 매출 규모에 비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상위권 진입을 엿본다. PET, 타이어코드지에서는 효성에 이어 국내 2위와 세계 5위업체로 성장하고 있고 수요가 큰 폭 증가하고 있는 산업용 고강력사에서도 세계 5위 규모를 갖추고 있다. 또 고급섬유인 해도형극세사 ‘로젤’을 세계 1위 품목으로 키웠다.생존 전략국내 화섬업체들은 현재 중국시장에서 또다른 승부를 걸고 있다. SK케미칼 휴비스 효성 코오롱 등 주요 화섬업체들은 이미 중국에 투자를 했거나 향후 지속적인 투자를 해나갈 예정이다. SK케미칼은 중국과 동구권 등에 새로운 현지법인을 설립해 기존의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에 이어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할 계획이다. 효성은 현재 전체 생산량 가운데 60%를 북미·일본 등지로 직수출하고 있으며 국내 업체를 거친 완제품 수출물량을 포함하면 전제품의 97%를 수출한다. 앞으로 굿이어와 미셸린 등 세계적인 타이어 업체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내년엔 총 1천억원 이상을 투자해 중국과 미국에 현지공장을 설립한다. 현지화 전략을 통해 현재 20% 수준에 머물러 있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최소 30%대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스판덱스 공장은 12월초에 가동된다. 총 7천만달러를 투입, 연산 3천6백50t 규모의 스판덱스 생산공장을 건설한 것이다.휴비스의 경우 쓰촨성 정부와 이미 투자협상을 마치고 중앙정부의 승인만 남겨 놓고 있다. 중국에 대한 초기 투자설비가 휴비스 전체 생산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코오롱도 세계 최대 수요처인 중국에 시설을 이전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을 추진하고 있다.상위권에서 이탈된 업체들의 재도약을 위한 움직임도 한창이다. 폴리에스터 필라민트 부문에서 국내 최대 업체인 한국합섬은 미국 가연전문업체인 UNIFI와 제휴를 추진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법정관리 중인 한일합섬은 신인견을 개발했다. 신인견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새로운 섬유. 펄프를 가공해 만든 섬유로 촉감이 부드럽고 강도와 흡수성이 뛰어나 전세계 시장 규모가 연간 6조원에 달한다. 고합은 회사를 유화 부문과 화섬 부문으로 분할, 우량사업 부문인 유화 부문을 신설법인으로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