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보지마!” 종업원 인수기업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거나 퇴출 위기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재취업이 힘들다면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돼 고용이 승계되는 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실업자로 남고 만다.이보다 훨씬 ‘공격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직원으로 일하던 회사를 인수해 직접 경영해 보는 것이다. 종업원에서 경영자로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종업원들이 주식을 갖는 형태로 종업원기업소유가 일찍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에선 종업원 기업인수가 주로 기업의 부도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져 왔다. 현재 종업원이 인수한 기업 수를 정확하게 집계할 수는 없지만 적게 잡아도 1천개는 넘을 것이란 게 노동자기업인수지원센터측의 추정이다. 최근엔 사기업은 물론 공기업들에서도 종업원 기업인수가 일어나고 있을 정도다.인수 형태도 다양하다. 우선 회사가 부도난 후 종업원들이 임금채권으로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가 있다. 또 경매에 들어간 회사를 경락받는 방식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대부분 중소제조업체에서 추진되는 사례가 많다. 이와는 달리 대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 부서가 떨어져 나와 그 구성원들이 회사를 설립하는 분사형태의 기업인수도 많이 있다. 어떤 형태든 종업원이 주주가 돼 회사를 운영하는 건 마찬가지다.적지 않은 기업들에서 여러 형태의 노동자 기업인수가 있었지만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예 인수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수자금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어크로저 전문업체인 삼화정밀의 경우 입찰에서 경락을 받고도 제때 잔금을 치르지 못해 도중 하차한 대표적 사례다.종업원들이 주머니 돈을 털어 인수자금을 채우려면 빚을 질 수밖에 없고 그 금융비용이 부담이 된다. 경영능력 부족으로 인수 후 부실이 악화돼 매각된 기업도 상당수다. 가전업체인 르비앙전자는 회사를 경락받아 2년 넘게 운영하고도 이자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제3자에게 회사를 넘기고 말았다.성공한 종업원 인수기업도 적지 않다. 포스텍전자는 만성적자에서 ‘돈버는 회사’로 탈바꿈한 대표적 성공 케이스다. LG정밀 스위치볼륨 사업부에서 1년에 79억원의 적자를 보던 사업부가 분사 1년만에 2백46억원 매출과 19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하는 우량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인수전엔 경쟁력이 없던 아이템을 접고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해 활력을 되찾은 업체들도 있다. 조흥은행 자회사인 조흥시스템을 소속 직원들이 인수해 설립한 투나인정보기술이 대표적이다. 2년 연속 적자를 내던 금융시스템 대신 ‘콘텐츠 매니지먼트 솔루션’을 개발해 업계 선두그룹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최근 종업원 인수 후 투명경영으로 관심을 모으는 업체들도 있다. 버스회사인 진아교통이 그중 한 예다. 밀린 임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회사를 인수한 후 노조원 감사직을 선임하고 수입 지출 등 경영내역을 매일 공개하는 등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동양섬유는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같은 비율로 임금을 인상하는 데 합의, 처음부터 공평한 이익분배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성공비결이 됐다.아직 실험단계… 성공 업체들도 고민 많아아직 실험단계이다 보니 성공했다는 업체들조차도 여러 가지 고민이 많다. 가장 큰 문제가 경영능력 부족에 따른 시행착오가 잦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능력을 의심해 인수 후 거래처를 잃는 사례도 많다. 또 은행들 역시 자본금이 적고 종업원들의 경영 능력을 못믿어 대출 지원을 꺼리고 있다.직원들이 대부분 주주라는 점에서 각각의 이해와 요구를 다 받아들이기엔 난항이 많은 게 사실이다. “차라리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는 편이 낫겠다”고 하소연하는 CEO들도 있다.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없는 것을 지적한다. 종업원들을 대상으로 한 경영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자금 지원 등이 절실하다는 것. 종업원 기업인수는 실업을 예방하는 고용 유지의 대안일 뿐 아니라 민주적이고 건전한 기업문화 정착과 기업구조 개선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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