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문닫는 ‘쓴잔’ 필연

경영능력 부재, 제도 뒷받침 전무 등 어려움 산적 … 정부 지원책 필요

종업원들이 부실한 회사를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보다는 아예 인수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패 원인은 한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없다. 인수과정에서 풀어야 할 법적 문제들을 비롯해 경영경험 부족, 제도적 지원 프로그램 부재 등 아직까진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에서 종업원 기업인수가 아직 실험단계란 점에서 실패한 기업들에서 찾을 수 있는 교훈도 있다.삼화정밀과 르비앙전자는 각각 인수과정에서 실패한 경우와 어렵게 인수하고도 경영에서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삼화정밀, 체계적 준비 부족도 패인삼화정밀은 도어크로저를 생산하는 중소제조업체였다. 도어크로저는 아파트 현관문 등에 설치되는 건축용 철물이다. 문짝의 맨 윗 부분에 부착해 문이 자동으로 닫치도록 하는 장치로 속도 조절 기능이 있다. 삼화정밀은 이 제품을 개발해 96년까지만 해도 ‘킹’이란 자체 브랜드로 국내에서 7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해외에까지 수출했었다. 그러던 중 15개가 넘는 계열사를 만드는 등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며 빚을 끌어다 쓴 것이 화근이 돼 97년 1월 부도를 맞고 말았다. 빚감당을 할 수 없었던 사주가 잠적한 상태에서 90명의 직원들은 수개월치 월급도 못 받은 채 오도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됐다. 당시 노조에선 회사를 떠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채권자들과 맞섰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규찰대를 조직해 채권자들이 기계를 들고 나가는 것을 막으면서 공장을 지켰다.임금채권으로 설비점유권을 확보하고 공장을 가동시켜 2년 넘게 생산을 지속했다. 99년 회사가 경매에 들어가자 이를 인수하기 위해 노조원들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직원들의 재산만으로는 도저히 회사를 경락받을 수 없어 당시 함께 부도를 맞은 계열사 한 곳과 공동으로 인수하는 방법도 시도해 봤다. 공동인수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경락을 받으려면 최소 40억원은 있어야 했고 그러자면 인수금의 80%를 은행 대출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은행측은 인수주체가 개인사업사 자격인데다 경영 경험이 없는 종업원들이 인수한다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동업을 약속했던 계열사 역시 은행측에서 요구하는 담보 제공을 꺼렸다. 이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5차 입찰에서 경락을 받고도 잔금을 제 때 넣지 못해 재경매에 들어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회사가 넘어갔고 최대한 많은 수의 직원들이 고용승계된다는 조건으로 일단락됐다.당시 비상대책위원회에 속했던 한 관계자는 “우리 손으로 회사를 꾸려가야 겠다는 열정은 있었지만 법적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시도도 해 봤지만 불가항력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또 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인 준비가 부족했던 것을 패인으로 들었다.르비앙전자는 삼화정밀과는 달리 경매에 붙여진 회사를 직원들이 인수하는데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경영에 실패한 케이스다. 직원들이 회사를 인수하기 전엔 제일가전이란 이름을 가진 중소기업이었다. 주로 가습기, 선풍기 등 계절가전제품을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방식으로 삼성전자에 납품했었다. 그러다 IMF경제위기 직후인 98년 3월 부도를 맞고 경매에 들어갔다. 노조가 없었던 탓에 생산직 종업원들이 경락을 받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99년초 10억원의 차입금에 직원들이 가지고 있던 임금채권을 팔아 모은 돈을 합쳐 12억8천5백만원으로 4차 입찰에서 회사를 경락받는데 성공했다.당시 생산기술담당 부장이 대표를 맡고 60명 가까운 직원이 부푼 꿈으로 새 출발을 시도했다. 인수 후 ‘르비앙전자’로 새로 간판도 내걸고 ‘르비앙’이란 자체브랜드도 만들었다. 전체 물량의 80%를 자체브랜드로 출고시킬 만큼 의욕적으로 일한 덕분에 장사도 잘 돼 성수기엔 월매출 12억원을 웃도는 높은 실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다할 납품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고가 쌓여가면서 사세가 다시 기울었다. 계절가전인 탓에 제 때 물량을 소진하지 못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해 덤핑으로 가격을 쳐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매출이 날 땐 다소 이익이 나기도 했지만 재고손실분을 빼고 나면 빌린 돈 이자 갚기도 빠듯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수 전 납품하고 받아 둔 1억5천만원짜리 어음이 부도가 나기까지 했다. 그나마 자금회수도 잘 되지 않아 결국 유동성 위기를 맞고 말았다. 인수 당시 차입금을 갚지 못해 치러야 하는 금융 비용도 계속 발목을 잡아 나중엔 자본금까지 ‘까먹는’ 위기에 직면했다.안정적 거래처 확보못해 위기 맞기도담보를 설정해야만 돈을 빌려주겠다는 신용보증기금을 설득해 1억원 정도를 빌려오기도 했지만 자금난을 타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인수 2년만에 유통업자 손에 액면가로 회사를 넘기고 만 것이다.당시 대표이사를 맡았던 박덕성씨(현 두루테크 대표)는 “인수 당시 직원들 주머니 돈을 갹출해 만든 자본금이 고작 4억원이 조금 넘었을 정도”였다며 “말이 종업원주주라고 해도 이렇다할 실익이 없는데다 수익률이 악화되면서 월급 받아가기도 힘겨웠다”고 회상한다.외부 조건도 열악했지만 내부문제도 없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처음엔 의욕에 차 적극적이던 구성원들이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들었다는 것.이런 문제를 극복하려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도 해 봤지만 ‘주주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이 두 기업말고도 직원들이 회사를 인수하는데 실패하거나 인수 후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지 못한 사례들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버스회사들의 경우엔 부도가 나면 회생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직원들이 기업인수를 시도한다. 이런 경우 십중팔구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나마 부채를 다 떨어내고 시작해도 어려운 판에 수십~수백억원씩 되는 빚을 고스란히 떠 안고 인수해 자금난에 허덕이다 결국 쓰러지는 업체들도 허다하다.사실 국내에선 중소제조업체들에서 종업원 기업인수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거의가 벼랑끝까지 내몰린 상태란 점에서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분사형태에서 볼 수 있는 안정적인 거래처가 확보되지 않으면 회사 경영의 경험이 전무한 직원들이 시장을 개척하고 능수능란하게 위기를 관리하는 걸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종업원 인수기업에 대한 이렇다할 정부차원의 지원이나 보호 정책이 없는 것도 실패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와 함께 종업원 지주제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식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시스템이 없는 것도 문제로 남아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