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 패권공방 속 시장재편 가속

정유사들은 석유제품의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업체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생긴 불황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지난 3분기에 정유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한 SK(주), LG칼텍스정유, S-Oil, 현대정유 등 4개 정유사 모두에 해당된다. 시장규모만도 43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정유산업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5개 정유사 중 지난 10월 부도가 난 인천정유의 뒤를 따를 회사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왜 흔들리나먼저 공급과잉 문제부터 살펴보자. 국내 5개 정유사의 석유정제 능력은 연간 9.2억배럴(2000년 기준)이다. 이에 비해 내수는 7.4억배럴로 1.8억배럴(전체의 24%)이 남아돈다. 문제는 지난 96년 이후부터 공급과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원인은 정유사들이 정유산업 자유화에 대비, 신규사업자의 진입을 막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정제능력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또한 수요 측면에서도 89년에서 99년까지 유가안정과 경제성장 등으로 평균 10% 수요가 늘어났으나 IMF 이후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됐다.전문가들은 향후 평균 3∼4% 정도 증가세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1위 업체인 SK의 생산실적이 3억배럴, LG가 2.3억배럴, S-Oil이 1.9억배럴 정도였다. 단순 비교를 하면 지난해 1.8억배럴이 남아돌았다.공급과잉 문제와 더불어 경쟁이 더욱 심화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도 정유업계의 판도변화를 예상케 한다. 원래 정유산업은 신규투자비가 많이 드는 장치산업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정부가 각종 규제를 통해 신규업체 진입을 막아왔다. 그러나 97년 1월 업계 자율에 따라 판매가격을 정할 수 있는 유가자유화, 98년 석유제품 수출입 자유화와 정제유통시장의 대외개방 등 규제완화조치가 잇따르면서 신규업체들의 시장진입이 속속 이뤄졌다.현재 삼성물산과 쌍용 등 대기업들이 참여한 가운데 34개의 석유수입업체들이 석유유통시장의 5% 가량을 잠식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성장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 석유수입상들이 성장할수록 기존 정유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되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지난 9월부터 시행한 복수폴사인제는 주유소의 입지를 높이는 대신 정유사의 시장지배력을 더욱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S-Oil이 법정소송까지 가면서 SK와 감정싸움으로 번진 송유관공사 사건은 험악해진 업계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인천정유를 제외한 4개 정유사의 영업지표를 보면 선발업체인 SK와 LG칼텍스정유보다 후발업체인 S-Oil과 현대정유의 어려움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후발업체인 S-Oil과 현대정유는 99년 모그룹인 쌍용과 현대그룹이 어려워지면서 분리된 뒤 독자생존을 모색해온 업체들이다. SK와 LG칼텍스정유는 모 그룹의 지원에다 전국 주유소의 65% 가량을 갖고 있어 안정적인 내수 판매망을 가진 반면 S-Oil과 현대정유는 브랜드파워가 약하고 모 그룹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정유는 지난해 1천9백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 3분기까지 이미 1천5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생존전략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 수요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94년 63%에서 2000년에는 52%로 낮아졌다. 낮아진 비중만큼 가스나 전력 등 대체에너지가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악조건으로 인해 정유사들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다. 정유사들이 정유부문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신규투자를 통해 사업다각화를 꾀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SK는 향후 정유회사 보다는 ‘종합마케팅 회사’로 불리기를 원한다. 종합마케팅 회사란 ‘고객과 기업에 대한 방대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에게 필요할 만한 상품을 찾아내 판매함으로써 시장을 선도해 나가는 기업’이라는 게 회사측 설명. 엔크린보너스카드 회원, 011 이동통신 회원 등 1천5백만명이 넘는 고객 DB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를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판단은 단순히 원유를 수입, 가공해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기업이 성장하는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분석에서 나왔다. 전력 및 LNG사업 등 신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석유개발사업에도 적극 나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찾고 아울러 방대한 DB를 활용한 마케팅 사업에 활로를 찾겠다는 설명이다.LG칼텍스정유는 ‘토털에너지 서비스 리더’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정유 및 석유화학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사업다각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즉 천연가스 및 전력사업은 물론 연료전지 등 대체에너지를 포함하는 토털에너지 서비스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LG정유는 앞으로 10년 내에 종합에너지 업계 리더의 자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S-Oil은 사업다각화는 물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마케팅에도 별 관심이 없다. S-Oil은 유통시장에서의 불필요한 낭비요인을 줄여서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본연의 정유업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고도화시설 등 시설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해외시장도 꾸준히 개척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정유회사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현대정유는 중장기 계획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대주주인 아랍에미레이트의 IPIC 측과 향후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장에는 e비즈니스 등 첨단 정보화 사업에 대한 전략적 제휴, 전국 계열 주유소의 전자상거래 시스템망을 단계적으로 갖춤으로써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계획이다. 다른 정유사와 마찬가지로 대형 택배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해 주유소를 통해 물건을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주유소 물류거점화 사업도 적극 전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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