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설비 재투자, 임금인상은 공평하게 ‘이직없이 공장 가동’ … 미래 불확실성이 걸림돌
많은 종업원 지주회사들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의사결정의 어려움이다. 주주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내홍을 치르는 사례도 많다.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에 위치한 섬유염색 가공사 동양섬유는 이런 의미에서 돋보이는 기업이다.동양섬유의 전신은 상장사였던 영진테크의 섬유사업부문이다. 영진테크는 98년 부실기업으로 정리 대상이 됐다. 이때 섬유사업부문의 직원은 모두 55명. 공장이 가동을 멈춰버리자 막막한 마음에 직원들이 모두 모여서 회의를 했다. 회의 결과 산업연수생과 외국인연수생을 제외한 직원 35명이 퇴직금에 비례해 출자, 자본금 5천만원을 모아 새 법인을 만들었다. 영진테크와는 공장설비 무상임대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해서 98년 7월 멈춰선 공장을 다시 가동할 수 있었다.처음 자본금을 퇴직금에 비례해 출자, 법인을 설립한데서 알 수 있듯이 회사의 운영은 관리직이 중심이 되어 꾸려가고 있다. 이것이 드물게 조직 안정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이다.초대 대표를 맡은 이도 영진테크 시절 섬유부문장이었던 오현배씨. 지금은 당시 총무 차장이었던 황남호씨가 관리부문을 맡고, 박상교씨가 영업을 책임지는 공동대표 체제를 취하고 있다.(오씨는 지난해 개인 사업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황대표는 “법인을 설립한 이래 주주간에 큰 분쟁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서 “그것보다는 직장을 잃지 않고 회사를 꾸려가는 일이 모두에게 훨씬 급했다”고 말했다. 경영상 중요한 의사 결정은 6명의 부서장이 모여서 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직원(주주) 모두와 회사 상황에 대해 인식을 공유한다. 이제까지 발생한 이익은 모두 공장설비를 보수하는데 재투자했기 때문에 주주간에 이익 분배 문제로 분란이 일어날 일도 없고, 임금은 주총 결정에 따라 대표부터 평사원까지 모두 같은 비율로 인상하기로 해 분쟁의 싹조차 없앴다. 주식은 황대표가 10.5%로 가장 많고 제일 적은 직원은 2%, 부서장들은 7% 보유하고 있다. 초대 대표를 제외하고는 당시 주주로 참여했던 직원 중 회사를 떠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직률이 낮다.운전자금마련 위해 여전히 발 ‘동동’99년 매출 36억원, 2000년 32억원, 올해 30억원. 섬유 경기 불황에 따라 매출이 조금씩 줄고는 있다. 그러나 반월공단 등지의 염색 업체들이 요즘도 매달 몇 군데씩 부도를 맞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과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1억8천만원의 흑자를 내기도 했다.하지만 자금력이 없기 때문에 한달에 2억8천만원 가량 되는 운전자금을 구하기 위해 항상 발을 동동 굴러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98년부터 지금까지는 일단 영진테크와의 임대 계약을 통해 공장 설비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영진테크의 주채권자가 신한은행에서 자산관리공사를 거쳐 도이치방크로 바뀌었다. 도이치방크가 이 채권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따라 동양섬유의 운명은 갈리게 된다. 동양섬유의 직원들이 공장 부지와 설비를 매입하기엔 너무 규모가 크고 값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황대표는 “현재 면스판 가공이 주력인데 새 제품 기술 개발에도 착수한 상태다. 이렇게 회사가 자리를 잡고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채권단에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