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감동경영이 경쟁력” … TV홈쇼핑·e백화점 등 연계 종합유통업체 변신 박차
입력 2006-08-31 11:55:53
수정 2006-08-31 11:55:53
이병규(48) 현대백화점 사장은 유통업계 지도를 매년 새롭게 그려내고 있는 전문경영인이다. 지난 99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이후 매년 사상 최고의 경영실적을 올려 경쟁회사들을 잔뜩 긴장시켰는가 하면 올해는 TV 홈쇼핑에 뛰어들어 이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내년엔 홈쇼핑사업에서 흑자를 내는 것은 물론 정상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이사장이 자신하는 데는 현대가 백화점사업 부문에서 신세계백화점을 누르고 2위에 올랐던 저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올해 매출이 10% 증가한 3조9천여억원, 경상이익이 21% 늘어난 2천3백여억원에 달해 부동의 2위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유통업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이사장이 괴력을 발휘하며 경쟁사들을 긴장상태로 돌입케 한 근원은 무엇일까.이사장은 한마디로 ‘고객감동경영’이라고 말한다. 즉 고품격의 차별화된 상품을 진열하고 고객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매장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한편 합리적인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효과를 봤다는 얘기다.이사장은 할인점 등 다른 업태에 대한 미련을 일찌감치 버리고 명실상부 고급백화점으로 자리를 굳힌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선두 롯데백화점에 못지 않은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바로 과학적인 판매정보 시스템인 ‘고객관계관리(CRM)’다. 이는 전국 12개 점포 2백50만명에 이르는 카드회원들에 대한 1대1 마케팅을 펼치면서 신규고객의 고정고객화를 꾀하는 마케팅 전략이다.이와 함께 최근 고객의 의견 DB 시스템도 갖췄다. 이는 매장, 고객상담실, 인터넷 등 여러 창구에서 접수되는 각종 고객의 불만사항이 입력과 동시에 자동으로 해당 팀장에게 통보돼 후속조치가 이뤄지게 하는 시스템이다.매장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 부문별 최고의 인지도와 브랜드력을 갖춘 상품군을 유치해 고급화시켰다. 이에 따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본점에는 화려하고 우아한 매장환경에 어울리는 다양한 명품 브랜드 50여개를 비치해 두터운 고정고객층을 확보했다. 소비자들 사이에 ‘현대=고급백화점’이라는 얘기가 퍼진 것은 이같은 노력의 결실이라는 설명이다.직원 사기진작에도 심혈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직원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이사장은 “직원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고객들 또한 감동시킬 수 없다”며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주력했다. 지난 99년부터 신입사원들이 1년간 선배들과의 교류를 통해 회사생활에 쉽게 적응토록 하는 신입사원 후견인제도를 도입하고 제대로 시행되도록 해당 선배들에게 매달 한번씩 보고서를 내도록 했다.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CEO와의 대화’ 자리도 1년에 두 번 만들었다. 이사장은 오후 3~6시는 회의실에서 직원들과 진지하게 대화하다가 저녁 6~8시는 저녁과 술자리를 하며 못다한 얘기까지 꼭 챙겨듣는다고 한다. 특히 여사원들을 위해 마련한 숭의여자대학 2년제 정규과정 프로그램은 인기가 좋아 경쟁이 치열할 정도라고. 초·중급 전문관리자를 위한 현대유통대학과 고급경영자 양성을 위한 현대유통대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매년 1명을 선발해 미국 대학원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했다.이사장은 주주들에 대한 관리도 적극적이다. 올해만 해외에서 세 차례 대규모 IR행사를 가졌다. 그는 인위적인 주가관리보다 내실을 기해 주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게 현명한 CEO라고 믿고 있다.이사장이 내년에 중점을 둘 사업부문은 TV홈쇼핑이다. 지난 11월 개국 기자간담회에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쌓아온 고급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를 바탕으로 기존 업체와 차별화된 새로운 TV홈쇼핑을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다. 때문에 이사장은 하루의 대부분을 서울 용산의 현대홈쇼핑 사옥에 상주하면서 홈쇼핑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대홈쇼핑을 인터넷 쇼핑몰인 e현대백화점, 위성방송, 카탈로그 쇼핑, 모바일 홈쇼핑 등 새로운 유통 채널로 묶어 종합 유통업체로 변신시킨다는 게 이사장의 21세기 밑그림이다.일단 개국 첫 해인 내년에 TV와 위성방송을 통해 4천3백억원, 카탈로그 5백억원, 인터넷 쇼핑몰 4백억원 등 총 5천2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1백56억원의 경상이익을 내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그리고 2차 연도인 2003년에는 1조원을 넘긴다는 것이다. 이사장은 홈쇼핑이 현대백화점 등 전국 8개 백화점과 2천4백만명의 네티즌 회원을 보유한 다음커뮤니케이션, 1천4백50만명의 고객을 가진 국민은행 등 든든한 주주를 확보하고 있어 은근히 자신하는 눈치다.이사장은 개인적으로도 내년에 꼭 이루겠다고 다짐한 게 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돌아가는 일이다.“현대입사 이후 고 정주영 현대명예회장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 보니 가족들과 대화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이젠 가족 곁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내 자신의 여유도 찾고 말이죠.”이사장은 77년 현대그룹에 입사하자마자 고 정명예회장의 비서로 들어가 그룹문화실장, 총재보좌역 등 줄곧 그의 곁을 지킨 가신 중의 가신이다. 이사장은 지난 3월 고 정명예회장이 죽자 마지막으로 빈소를 끝까지 지켰다. 이 때문에 고 정명예회장의 발인 다음날에 있었던 홈쇼핑 사업 최종결정을 위한 청문회에 답변자료조차 제대로 훑어보지도 못하고 나갔지만 후회는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