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샐러리맨을 위한 ‘실버 프로젝트’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국내 샐러리맨들이 처음 입사했을 때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이 여러 가지 있다. 은퇴에 관한 외국인들의 생각도 국내 샐러리맨의 머리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 중 하나. 한창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는 초록 눈의 임원이 “3년 뒤에 은퇴해서 아내와 여행을 다니며 생을 마감하겠다”고 너스레를 떨면 얼떨떨해진다. 알아서 나가겠다고 떠든다는 것은 곧 회사에 애정이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고,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서다. 얼마 전 투신사 H상무에게 은퇴한 뒤에 어떤 좋은 계획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가 좋은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 진 적이 있다. “일터에서 죽는 것이 소원”인 그에게 은퇴는 곧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요즘 FP(재무설계사, Financial Planner)들을 취재하면서 가슴에 와닿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은퇴 설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 시기, 그 뒤의 생활, 그에 따른 자금마련 계획 등을 세워놓지 않으면 인생이 막막해질 수 있다. 대기업 L이사는 “빨리 은퇴설계를 받지 않으면 노년에 쓰레기통을 뒤져야 할 지도 모를 일”이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업계에서 유능하다고 평판을 받는 L이사도 최근까지 은퇴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그가 이렇게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UN으로부터 고령화사회로 판정 받은 한국은 고령사회(65세 이상이 인구의 14%)로 도달하는 데 19년, 그리고 초고령사회(20% 이상)로는 7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미 노령사회가 된 일본도 고령사회에서 초고령화사회로 가는데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보다 5년이나 느린 셈이다. 미국은 15년, 그리고 프랑스는 41년이나 걸린다.국민연금도 노년의 생활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이번 취재를 통해 40대 샐러리맨이 55세를 은퇴시기로 잡을 경우, 지금부터 1백20만원을 매월 저축해야 60세 이후 1백50만원(국민연금 수령액 포함)의 최저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자녀 교육비, 결혼자금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40대 샐러리맨 중 몇 %가 매월 자신을 위해 1백만원 이상 저축할 수 있을까.“그래도 나는 집을 갖고 있다”고 안심하는 샐러리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늙어서 치매나 뇌졸중에 걸리면 수억원짜리 아파트는 고스란히 병원비로 나가야 한다. 특히 최근 여성의 경우 노년에 뇌졸중을 앓을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매월 2백만원을 지출한다면 이는 가족들에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그러나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은퇴 계획을 세우고, 만약의 일에 대해 준비를 해두면 된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나 재산가는 훨씬 쉽게 노년을 설계하고, 그렇지 않은 일반 샐러리맨들은 힘겹게 플랜을 짜야 한다. 하지만 은퇴한 뒤 자신이 누리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다가서는 것을 행복으로 삼는다면 당장 이를 실천해보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당신의 생활 목표에 따라 실천 가능한 설계도면을 펼쳐줄 것이다. 그리고 문제점도 지적해 줄 것이다. 이를 토대로 부유한 노년을 위해 나만의 생활설계를 해보자.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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