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대중화 일등공신 … 세계 애주가 공략 월드컵 마케팅 ‘분주’
입력 2006-08-31 11:55:53
수정 2006-08-31 11:55:53
국순당 배중호(48) 사장은 최근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올들어 다섯번째다. 효자상품 백세주를 ‘세계의 술’로 키우기 위한 출장이다. 특히 내년 월드컵은 놓칠 수 없는 도약의 기회다. 이미 월드컵 전담팀을 가동하는 한편 세계 VIP모임에 백세주를 협찬하는 등 입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해외지사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70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데킬라가 유명해졌듯 2002년 월드컵 이후엔 백세주가 세계 주당의 사랑을 받을 겁니다. 한 번 시음해 본 외국인들은 열이면 열 그 맛에 만족하고 있어 전망이 밝습니다. 이미 2천여명의 외국인 VIP를 확보하고 이들을 활용한 마케팅에 돌입했습니다.”국순당의 세계 무대 진출은 국내에서 일으킨 백세주 돌풍을 기반으로 한다. 지난 몇 년간 국내 주류시장에서 백세주는 ‘신화’와 다름없는 성과를 이뤄냈다. 소주 맥주 위스키로 구분되는 일반적인 술 분류법에 전통주를 끼워 넣었고 해마다 수직 상승하는 경이로운 매출구도를 보여줘 대기업이 잇따라 전통주 시장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백세주와 소주를 섞어 만드는 일명 ‘오십세주’는 백세주 히트가 만들어낸 또 다른 술문화 코드이기도 하다.백세주 매출액은 지난 94년 출시 첫해에 10억원 대에 머물렀지만 99년에는 4백78억원, 지난해에는 6백57억원까지 올랐다. 올해는 성장세가 더욱 폭발적이어서 지난 9월까지 7백1억원, 연말까지는 9백60억원(주세·부가세 미포함)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백세주가 히트상품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배사장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있다. ‘한국의 대표 술이 없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전통주 개발에 매달려 결국 백세주를 탄생시켰지만 처음 맞닥뜨린 시장은 냉담하기만 했다. 기존 주류 유통망에 끼어 들 재간이 없었던 데다 전통약주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낮았다. 자구책으로 선택한 것이 게릴라식 마케팅. 도매상이나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납품처를 뚫었다. 백세주 사진을 넣은 식당 메뉴판 공급 전략은 초기 시장을 확보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광고 컨셉도 주효했다. 처음 건강을 중시하는 40대를 타깃으로 했을 때는 ‘보약반첩을 넣은 건강 술’ ‘아내가 권하는 술’로 밀어부쳤고 최근엔 20~30대 샐러리맨을 겨냥한 회식자리 광고로 소비 연령대를 끌어내리고 있다. 일련의 마케팅 전략들은 배사장과 실무진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것이다.GE 경영기법·코카콜라 브랜드 전략 벤치마킹배사장은 GE의 치밀하고 체계적인 경영기법과 코카콜라의 브랜드 전략을 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 GE의 인재 양성 방법이나 코카콜라의 쉼 없는 이미지 업그레이드 전략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 배사장은 “각 부서별로 1~2명의 인재를 점찍어 두고 그들에게 역량 발휘의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 1~2년이 멀다하고 브랜드를 갈아치우는 다른 주류·음료사들과 달리 백세주를 ‘영구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밝혔다.배사장은 가업을 물려준 부친의 경영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원칙주의자다. 부친 배상면 회장은 가업을 물려주면서 △가장 좋은 원료를 사용하라 △의심 가는 첨가물은 절대 넣지 마라 △제품이 갖고 있는 가치만큼 값을 받아라 △세금 떼먹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등 네 가지를 신신당부했다고 한다.“어떤 경우에서도 원칙을 지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제품, 사회를 위해 기업이 맡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거지요. 아버지는 백세주 성공에 대해 만족하시면서도 경영 스타일이나 몇몇 의사결정에 대해선 원칙의 잣대를 놓고 지적하곤 하십니다. 간혹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요.”배사장은 지난 71년 연세대 생화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현대식 술도가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주조기술의 근본 학문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유였다. 하지만 당시엔 술도가를 이어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역회사 영업파트에서 3년 동안 ‘외도’를 하다 80년 1월 국순당에 입사하면서 제 길로 돌아왔다. 그리고 작은 술도가를 현대식 주류회사로 성장시킨 전문 경영인이 됐다.기업을 물려받긴 쉬워도 지켜내긴 어렵다는 요즘, 기업을 더욱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배사장은 주목받는다. 적지 않은 운도 따라 줬다. 대다수 기업이 어려움을 겪었던 외환위기는 국순당에겐 도약의 기회였다. 불황 덕에 술 소비가 늘어난 데다 묘한 국수주의 분위기도 형성돼 전통주 지명도가 올라갔기 때문이다.배사장은 12월부터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다. ‘백세주 마을’이라는 전통주점 사업을 시작하는 것. 서울 특급 상권을 중심으로 5호점까지 직영체제로 오픈한 후 본격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배사장은 주점 사업이 전통약주를 한층 더 대중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화의 디딤돌로 삼는 건 물론이다.배사장에겐 앞으로도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많다. 주류 메이저회사들이 속속 전통주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만만찮은 견제요소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여유로운 표정이다.“주변에선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반가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전통주 시장이 커지는 거니까요. 경쟁사들이 잘 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배사장의 주량은 백세주 4~5병.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오십세주’는 입에 대지 않는다. 소주와 섞으면 몸에 이롭고 뒷맛이 깨끗한 백세주 본연의 장기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