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지역특화 등 생존 위한 대변신, 2년 만에 흑자 전환 성공
입력 2006-08-31 11:55:53
수정 2006-08-31 11:55:53
“결국 특화된 은행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베스트 CEO’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대구광역시 중심가에 있는 행장실을 방문했을 때 김극년 대구은행장은 작은 체구답지 않게 단호한 어조로 경영관을 밝혔다.지난 97년 IMF쇼크는 한국의 각 분야에 많은 변화를 강요했고 지방은행도 그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4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대구은행을 비롯, 부산 전북 등 3개의 지방은행만이 독자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혹독했던 지난 시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초 취임했을 즈음 김행장은 “대구은행에 예금해도 괜찮냐?”란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당시만 해도 대구은행은 공적자금을 받고 연명할 것이냐, 대형은행에 운명을 맡기느냐를 놓고 논란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 대구은행을 바라보는 고객들과 감독기관, 그리고 투자자들의 시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김행장의 경영철학은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지방은행이 독자생존할 수 있는 틈바구니가 그리 크지 않은 현실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은행의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한 순간이 있었다”고 김행장은 털어놓았다.대구은행의 독자생존을 결정한 다음 김행장은 크게 두 가지의 목표를 세웠다. ‘슬림화’와 ‘지역밀착’이 그것이다. 방만하게 운영되던 수도권지점을 줄이고 15%의 인원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한편 ‘사이버독도지점 개설’과 ‘지역밀착카드 발매’를 통해 대구·경북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취임직후 착수한 덩치줄이기 과정에서 김행장도 잠 못 이루는 어려운 시간을 겪었다. 명퇴자들의 대부분이 자녀들의 교육이나 혼사 등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연령대의 직원들이어서 말 그대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 과정에서 김행장의 독특한 스타일이 드러난 일화가 있다. 그는 영화 를 인용하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영화 속 아버지가 자일을 잘랐듯이 우리 은행이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는 말로 명예퇴직의 불가피성을 행원들에게 알렸다. 김행장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명퇴신청한 직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 “나도 마음이 아프다. 언젠가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자”며 위로를 했다. 냉정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 결국 구조조정은 별다른 잡음없이 마무리됐다. 다른 은행장들이 비결이 뭐냐며 ‘한 수 가르쳐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구조조정과 함께 추진된 지역밀착전략은 김행장의 이니셜을 딴 ‘K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체계적으로 진행됐다.김행장은 “지난해 초 행장으로 취임했을 때 시장의 분위기는 ‘무조건 은행은 커야 하고 지방은행은 알아서 큰 은행에 붙어야 한다’는 식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김행장은 지방은행도 충분히 독자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 지역민을 파고드는 전략을 택했다. 어차피 금리나 규모로는 시중은행이나 외국은행과 경쟁이 되지 않는 만큼 특화된 전략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겠다고 판단한 것.미국에서 성공한 지방은행이라 일컬어지는 위스콘신주의 M&I 은행을 직접 방문한 김행장은 그 은행이 지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구축, 경쟁자가 진입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 감명받았다. 김행장은 돌아오자마자 ‘지역사회 봉사상’을 도입, 직원들에게 봉사정신을 고취시키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대구경북지역의 향우회와 이익단체를 총망라하는 제휴카드를 발급, 대구은행의 문턱을 최대한 낮췄다. 이때 업무제휴한 단체만도 대구광역시 변호사회 의사회 건축사회 등 거의 모든 직종을 아우르고 있으며 지역별로도 봉화향우회 국제로타리클럽 등 다양하다. 또 시민을 위한 가족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지역밀착 전략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지역밀착화 작업이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준비된 전략이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물론 김행장이 대구은행의 경영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이같은 대외 전략에만 의존했던 건 아니다. 그가 드라이브를 건 보수적인 자산운용과 소형다점포 전략은 올초부터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대구은행은 올 3분기에 괄목할만한 실적을 올렸다. 업무이익이 2천2백50억원, 순이익은 2백62억원을 올린 것. 지난해 업무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2천4백26억원과 1백56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9개월 만의 순익 규모가 이미 지난 한해 수준을 웃돌고 있는 셈이다.“주가수준이 경영자 성적표”하지만 대구은행이 일반투자자들에게 한동안 외면당한 적도 있었다. 지난 8월 기존의 부실을 다 털어내는 과정에서 장부상 적자를 기록하자 갑자기 주가가 뚝 떨어진 것. 이때 주가가 2천원을 밑도는 상황이 벌어지자 김행장도 당혹스러웠다. 김행장은 이후 기회있을 때마다 직접 나서서 주주들을 설득하는 기회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행장은 당시 상황이 “본질을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문제가 본질못지 않게 중요하단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이런 다각적인 노력 덕분에 연말 결산을 앞둔 지금은 대구은행의 주가가 3천원을 넘어서 쾌속항진을 하고 있다. 김행장은 내년 목표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을 “지금은 시장에서 외면당한 경영자나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라며 “주가수준을 경영의 성적표로 삼겠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