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웨이 성장엔진 ‘네트워크 마케팅’ 주역

암웨이의 성실한 파트너 그룹인 예거스톰스의 톱리더, 나순석 사장은 5만 대군을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이다.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 세제 파동 등 네트워크 마케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시장에서 성공을 열망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반석 같은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다.예거스톰스 톱리더 나순석&김기원 부부암웨이 성장엔진 ‘네트워크 마케팅’ 주역신뢰의 토대 위에 설립한 울타리 없는 회사, 5만명의 독립 사업가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회사, 예거스톰스 그룹이 네트워크 마케팅 시장의 ‘차세대 주력’이라 불릴 만하다. 나사장은 “자신과 시간을 경영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어났을 뿐”이라며 겸손해 하지만 예거스톰스의 연간 매출액은 수백억원을 넘는다. 이처럼 네트워크 마케팅 산업의 성장은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어지고 능력위주의 사회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일간지 기사 보고 멤버가입 결심사실 지난 94년 초 암웨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 나사장에겐 ‘실패’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사업에 투신했지만 그리 순탄치 않았다. 8차례나 사업 아이템을 바꾸고 서울에서 고향인 경북 포항까지 내려가며 갖은 노력을 했지만 그에게 남은 건 공허감뿐이었다.앞날이 길게만 느껴질 무렵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 있었다. 94년 초 일간지에 난 암웨이에 관한 기사였다. 일본에선 억대부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암웨이 멤버들이 주역이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궁금해진 나사장은 미국에서 유학 중인 동생으로부터 암웨이가 포천(Fortune, 세계적인 경제 격주간지)의 1백대 기업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회사에 대해 신뢰감이 생기고 나니 오히려 문제는 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성공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 변화의 시점에서 과감한 사람, 그것을 믿는 사람, 그리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군다나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단정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제 인생 앞에 놓인 다른 이정표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1백80도 바뀌었다. 네트워크 마케팅의 가치와 사업성을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더욱 열정적으로 암웨이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실패에도 연연하지 않았다.나사장은 “남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양동이를 채울 때 나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해도 우물과 양동이 사이에 파이프를 하나 둘씩 연결한다는 심정으로 사업에 전념했다. 그랬더니 전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인내심과 부지런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나사장은 암웨이에 흠뻑 빠져들 때쯤 단 스톰스(Don Storms)라는 미국 암웨이의 성공리더를 만났다. 한국에서 사업을 성공시킬 인물을 찾고 있던 단 스톰스는 예거의 수제자. 나사장이 현재 예거스톰스라는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 사람 때문이다. 나사장은 암웨이 사업을 시작한 지 6개월만에 스톰스가 살고 있는 미국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그는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하는지 실감했다. 전용 비행기에 요트, 그리고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눈으로 확인한 그는 성공의 크기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스톰스가 소유하고 있는 대저택만이 그의 이목을 끈 것은 아니었다. 정작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스톰스의 마음가짐이었다. 상대방이 자신감을 갖도록 따뜻하게 배려해주고 격려해주는 그의 말을 따라가 보면 어느덧 자신도 그에게 전염된 것처럼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나사장은 지금도 암웨이 비즈니스의 가장 큰 장점을 설명할 때 무엇보다 사람과 함께 일하는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보통 직장에서는 ‘Up or Out’이라는 프로그램이 입사와 동시에 실행됩니다.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탈락됩니다. 하지만 암웨이 비즈니스는 공동성장과 합리적인 이익분배의 원칙에 따른 완벽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암웨이가 성공을 향해 질주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그래서 예거스톰스 그룹의 독립사업가(IBO:Independent Business Owner)들은 돈독한 우정과 서로간의 유대감으로 철저히 무장돼 있다. 암웨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서로 몰랐을 이들이 사업을 통해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휴먼 네트워크가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자신의 성공을 믿은 나사장과 내조자이자 동반자로서 사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김기원씨는 나사장과 더불어 5년만에 다이아몬드를 달았다. 그 뒤 이 부부사업가는 6개월에 한번씩 진급, 수석과 더블다이아몬드를 거쳐 지금은 트리플다이아몬드가 됐다.성공의 동반자, 예거스톰스 그룹덱스터 예거에서 단 스톰스로, 그리고 한국의 나사장까지 전해져 내려온 이런 성공계보는 이제 다른 사람에게 찾을 수 있다. 나사장 그룹에서 암웨이 사업에 뛰어든 김재규 더블 다이아몬드는 불과 2년 만에 억대 연봉자로 올라섰다. 이는 나사장과 함께 각종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축적해 놓은 한국적인 해법의 결과다. 그는 네트워크 마케팅의 사업가적 안목이 성장하며 최단기간에 정상의 반열에 오른 대표적 사례가 됐다. 대기업 정유회사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던 김재규씨는 암웨이와 인연을 맺으면서 꿈을 꾸게 됐다.“30대에 골프를 치고, 40대에 재정문제를 해결한다. 그 뒤엔 부부 사업가인 부인 이영희씨와 무진장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이 그의 소원. 막연한 공상처럼 보였던 이런 꿈들이 점점 실현됐다. 김씨는 “불가능한 것도 자꾸 얘기하면 이뤄진다”는 삶의 철학을 터득한 것이다.수석다이아몬드인 곽동륜, 정미숙 부부 사업가 역시 나사장 그룹을 통해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곽수석다이아몬드가 무역학 박사학위를 받기까지는 영어교사였던 부인 정미숙씨의 경제적인 공이 컸다. 그러나 세계적인 국제경제학자로서의 꿈을 펼치기에는 그가 부딪힌 재정적인 한계 또한 너무 컸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암웨이 비즈니스를 접하고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현재 수석다이아몬드인 곽씨는 괄목할 정도로 사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그는 미국, 필리핀, 그리고 중국을 오가며 국제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가 젊었을 때 품었던 꿈도 암웨이와 함께 이뤄진 것이다.“인생은 역전시킬 수 있기에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암웨이 비즈니스는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역전의 기회를, 성공을 뜨겁게 열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제공해 준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일 지라도 암웨이 비즈니스를 통해 돈독한 우정을 쌓으며 휴먼 네트워크를 구성하다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게 나사장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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