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절후(空前絶後)의 대경품’.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없을 만큼 놀랄만한 축하상품이라는 표현. 1913년 하단 광고란에 실린 문구다. 빈 담배 각을 모아 오면 거울이나 수건 같은 생활용품으로 바꿔주는 행사를 알리고 있다. 이 광고주는 같은 해 국내에 들어 온 수입담배회사인 영미연초주식회사. ‘던힐(Dunhill)’로 잘 알려진 지금의 영국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이하 BAT)의 한국법인인 BAT코리아(www.batkorea.com)의 전신인 셈이다. 당시 이 회사가 수입해 팔던 담배는 자전거표, 풍어표, 대나무표, 칼표 등 브랜드명이 모두 우리말로 돼 있다. 그 옛날에도 이른바 토착화 전략을 쓴 것이다. 자그마치 90년 전의 일이다.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BAT코리아 본사 사장실엔 그 때의 신문광고가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존 테일러 BAT코리아 사장이 가장 아끼는 물건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문이 굳게 닫혀 있던 담배시장이 활짝 열리던 지난 88년 다시 국내에 진출한 BAT코리아를 이끄는 그에겐 오래전 한국인과의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인’ 소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81년 필립모리스를 시작으로 96년 BAT필리핀 사장을 역임, 98년 한국으로 왔다.1902년 영국 임페리얼토바코와 미국 아메리칸토바코의 합작으로 탄생한 BAT는 현재 1백80여국에 해외지사를 두고 66개국에 생산공장을 가진 세계적 담배회사다. 전세계 흡연자(약 10억명) 6명중 1명이 BAT 브랜드를 피우고 있을 만큼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현재 보유한 브랜드만 3백20가지가 넘는다.BAT코리아가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테일러 사장이 부임한 이듬해인 지난 99년. 모기업인 BAT가 로스만스인터내셔널과 합병함에 따라 BAT코리아 역시 로스만스코리아와 합쳐지면서 규모가 커진 덕을 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켄트(Kent)’를 중심으로 박하담배인 ‘쿨(Kool)’, 슬림형 브랜드 ‘휘네스(Finesse)’ 등을 출시해오다 당시 세계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던 ‘던힐’을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면서 급성장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현재 국내 전체 담배시장에서 6% 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다. 특히 ‘던힐라이트’의 경우 2년 연속 판매량이 2배 넘게 늘었다. 현재 국내 전체 담배 시장의 5.5%를 차지하면서 국내 외산 브랜드(32.7%)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올 10월 현재 BAT코리아가 판매한 담배는 모두 2천4백30만갑. 연간 세금을 포함해 3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우리 나라 중앙과 지방정부에 낸 담배소비세와 법인세 등 세금만 해도 3천억원이 넘는다.“수입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직영체제를 구축한 것도 힘이 됐다”고 테일러 사장은 밝혔다. 현재 전국 10개 도시에 17개 지사를 두고 영업망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현재 5만5천개에 이르는 소매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10년간 한국에 1조4천억원 경제효과 기대테일러 사장은 BAT코리아가 국내시장에 다시 상륙한 후에도 10년 넘게 ‘한국 사람과 친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결정판이 지난 11월말에 있었던 경남 사천시 진사공단내 공장(BAT코리아제조주식회사) 착공이다. 다국적 담배회사가 국내에 현지 공장을 세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착공식에서 1천억원 규모의 시공을 국내 건설업체인 대림산업에 맡기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설비까지도 국내에서 조달하겠다고 천명했다. 뿐만 아니라 원료인 잎담배 역시 단계적이긴 하지만 국내 농가로부터 납품받아 우리 나라 종업원들을 채용해 생산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계획대로 2003년부터 생산이 시작된다고 해도 2~3년은 더 지나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그 때까지 드는 모든 비용이 모두 국내 매출로 잡히게 된다. 연간 4억갑 정도의 생산 능력을 갖춘 이 공장은 앞으로 10년간 한국에 1조4천억원에 이르는 부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원가부담을 감수하고도 세계 시장가격의 3배 가까운 한국산 잎담배를 사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생색’을 낼 만하다.그가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어떻게 해서든 ‘한국기업’이란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담배가 ‘마약’ 취급을 받는 미국은 물론이고 WHO(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전세계에 일고 있는 금연운동이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입담배회사가 국내에 공장을 짓는다는 점이 국민 정서상 문제를 일으킬 것을 우려하는 우리 정부의 눈치도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우리의 목표는 흡연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흡연자가 BAT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BAT 브랜드를 피우지 않는 나머지 94%의 국내 흡연자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얘기다.수입담배 공장이 국내에 들어서게 되면 그동안 담배인삼공사에서 독점하다시피한 국내 담배산업에서 업체별 비교 평가가 자연스럽게 이뤄져 결국 품질, 서비스, 근로조건 등 상당 부분에서 발전하게 될 것으로 그는 내다본다.투자유치 실무자가 본 BAT코리아“지역경제 활성 프로젝트 반할 만”BAT코리아는 지난 11월 경남 사천에 공장을 착공했다. 경남도청 투자유치과 정부창 팀장은 BAT코리아가 사천에 공장을 짓겠다는 신청을 해왔을 땐 고민이 많았다.“수입담배회사가 국내에 생산공장을 짓는 게 처음인 데다 지역주민들의 반응이 어떨 지도 미지수였죠. 그런데 우리보다 이를 더 잘 파악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BAT코리아였습니다.”정팀장은 투자유치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BAT의 협상 노하우에 흥미를 갖게 됐다. “공장을 짓는 것은 물론이고 설비를 들여오고 1천명 이상의 신규고용을 창출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왔습니다.” 우리 나라에 앞서 세계 각지에 많은 공장을 세웠던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고 정과장은 설명했다.“그들은 현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 세운 공장이 그 나라 경제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는 지를 명확한 데이터로 제시해 왔던 거죠.” 그만큼 접근 방법이 치밀하고 정교했다는 설명이다.“BAT코리아는 ‘현지화 전략의 귀재’란 느낌이 들더군요. 이번 BAT의 투자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정팀장은 외국인 투자 유치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직접 공장을 세우는 투자는 줄고 있는 상황에서 BAT코리아를 시작으로 많은 외국인 투자가 잇따를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