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보내고, 2등도 보내고….올해 초 동심의 세계를 그려내 꽤 인기를 누린 이란 영화에선 달리기 시합에서 굳이 3등을 하려고 애쓰는 한 앳된 소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와 한국펀드평가가 ‘2001(채권부문)베스트 운용사’로 뽑은 한화투자신탁운용의 안창희 사장도 이 소년처럼 ‘1등은 싫다’고 한다. “무모한 수익률 경쟁으로는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운용자들에게도 수익률 1등은 하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5등 안에만 들라고 주문합니다.”대우 사태 이후 투신사에 대해 쌓일 대로 쌓인 불만과 신뢰 추락으로 인해 쓴 맛을 톡톡히 본 후 투신업계는 너나할 것 없이 “신뢰회복에 사운을 건다”고 말한다. 한화투신도 마찬가지다. “운용목표는 리스크 최소화지 수익률 상위가 아닙니다. 펀드의 성격에 맞는 운용 스타일이 중요합니다. 기준가를 잣대로 모든 펀드를 한 줄로 세우는 건 의미가 없어요. 무조건 수익률 랠리에 참여할 게 아니라 펀드에 가입한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에 부합하는 운용을 해야죠. 고객과 운용자간의 조화가 좋은 펀드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안창희 사장의 말이다.정통부 기금 운용 11개사 중 1위한화투신 채권팀이 올해 좋은 성과를 낸 것은 현대채, CBO(채권담보부증권: 투신사들이 보유한 투기채를 모아 이를 담보로 발행한 것) 등 문제성 채권에 상대적으로 노출이 적었던 데 힘입은 바 크다. “채권 운용을 잘했다기보다는 리스크 관리를 잘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장부가제도에서 시가평가 제도로 넘어가면서 비교적 대응을 잘한 것 같다”고 이 회사 양광규 채권운용팀장은 말했다. 양팀장은 “한화는 지독하고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강한 편”이라며 리스크관리 위원회 한 사람이라도 채권 편입에 찬성하지 않으면 운용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서구 운용사들이 흔히 택하는 방법이지만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한화투신 채권팀은 개별 펀드 베스트 부문에서도 일반채권형에서 ‘에이스 채권03-1’을 2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이번에 2관왕이 됐다. ‘에이스 채권’ 시리즈는 올해 채권시장의 ‘큰손’이었던 정통부 자금이 들어온 펀드. 함께 운용에 참여한 11개사와 경쟁, 고객인 정통부로부터 인정받아 꾸준히 많은 자금(7천억원)을 유치하고, 또 참여 운용사중에서 수익률이나 안정성 면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더욱 보람이 크다. 올해 투신사에 들어온 정통부 자금은 시가평가 채권펀드에 믿고 맡긴데다 무리한 수익률을 요구하지 않는 ‘합리적인 고객’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채권시장에서 매우 의미있는 존재가 됐다. 합리적인 고객과 합리적인 운용자가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사실이 시장에서 증명된 셈이다.“사고팔기(딜링)로 수익을 내는 매매수익(캐피털 게인)보다는 기본수익(인컴 게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게 채권형 펀드의 기본이라고 우리팀은 생각합니다.” 양광규 팀장은 이렇게 강조했다.양팀장은 “남들보다 한 발 앞서 판단한 것이 올해 채권운용전략으로 주효한 듯 하다”고 올해를 회고한다. 지난해 하반기 회사채 거래가 거의 끊겼을 때 미리 회사채를 많이 편입하고, 대우사태 직후 카드채와 리스채를 산 것, 유동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타사에서 ABS를 외면할 때 미리 편입했던 것 등 틈새시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이 수익률을 높이는데 한몫했다.한화투신 채권운용팀은 안창희 사장이 부임하면서 외부에서 스카우트한 인력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이다. 팀을 이끌고 있는 양광규 팀장은 한국투자신탁 출신. 송우영 차장은 한화증권 채권부출신이며 김한백 과장은 산업은행과 LG선물을 거쳤다. 우수한 인력이 좋은 실적의 관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안사장은 사람을 뽑을 때 3가지 기준으로 뽑는다고 소개했다. “첫째가 인간성과 도덕성이다. 아무리 운용을 잘해도 먼저 인간이 되지 않으면 부질없다. 고객의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환란 이후 투신사들은 뼈저리게 깨닫지 않았는가. 이걸 얻으려면 운용자의 도덕성이 갖춰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 다음이 전문성이다. 세 번째는 리스크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걸 갖춘 사람이라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뽑는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사람을 구했다”고 말했다.CEO 인터뷰안창희 사장“매니저들 판단 믿고 따른 덕분”안창희(53) 사장은 철저히 운용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스타일이다. 과감한 딜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는 이를 밀어주는 등 전체적인 운용 방향을 제시하고 타이밍에 관해서는 매니저들의 판단을 신뢰하고 원칙적으로 맡긴다고 한다. 그는 대세와 관련한 부분을 조언할 뿐이라고 했다.안사장은 인터뷰 도중 재삼 ‘원칙’을 강조했다.“투신업의 요체는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운용자 그리고 매니저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죠.” 그러나 강하게 의견을 제시할 때도 있다. 하이일드 펀드 투자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례. 안사장이 한화투신운용의 사령탑을 맡은 지난 99년 7월은 대우 사태가 막 불거져 투신업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린 시점이었다. 정부는 투신업계 지원책으로 하이일드 펀드라는 신상품을 내놓았다. 고객의 신뢰가 추락한 당시 상황으로선 선뜻 하이일드 펀드 투자를 결정하기는 어려운 상태. 안사장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본금 3백억원 중 89억원을 하이일드 펀드에 집어넣는 모험을 강행했다.결과는 대성공. 고객들에게 연평균 13% 정도의 수익률을 안겨줬다. 모험을 하면서도 ‘안정성 제일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지난해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 터질 무렵에는 미리 현대물량을 줄이라고 지시했습니다. 보유하고 있던 현대관련 채권 5천억원 규모를 2천5백억원까지 줄였죠. 나중에 이렇게 한 발 앞서 위험에 대비한 성과가 나타났습니다.”그는 펀드 운용은 마라톤이라고 강조했다. “지구력과 속도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이제는 고객에게 꾸준한 수익을 안겨주는 회사가 점점 인정을 받게 될 겁니다. 올해는 채권시장이 좋았지만 내년은 경기 기조가 상승 방향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도 미리 대비해야죠.”안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도 자주 하는 이야기라면서 “우리 회사의 운용 철학을 대변해줄 수 있는 일화를 하나 들려 주겠다”며 중국 설화에 나오는 편작 이야기를 꺼냈다.편작이 이름난 의사라고 하니까 지체 높은 사람이 그를 불러 물었다. “네가 제일 뛰어난 의사냐?” 그러자 편작은 “사실은 우리 첫째 형님이 명의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네 이름이 더 유명하냐?” “큰 형님은 사람이 전혀 아프지 않을 때 그의 체질을 알고 미리 미리 대비해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해줍니다. 그러니 아플 일이 없죠. 제일 훌륭한 의사입니다. 둘째 형님은 병이 깊어지기 전에 고쳐줍니다. 두 번째 명의입니다. 저는 사람이 다 죽어가게 돼서야 고쳐줍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제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명의가 아닙니다”라고 했다고. 명성을 드높이지 못한다 해도 편작의 큰 형님과 같은 운용사가 되고 싶은 게 그의 바램이다.약력: 48년 충남 천안생. 서강대 수학과 졸업. 74년 (주)한화 입사. 89년 한화증권 법인영업부장, 영업추진부장, 경영지원본부 상무 등을 지냄. 99년 한화투자신탁운용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