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투명 제도개선 활발 … ‘윤리주’가 뜬다

설 연휴 기간에 뉴욕 월가를 들러볼 기회가 있었다. 역시 최대관심은 미국 증시가 과연 2차 상승기(혹자는 대세 상승기로 표현)에 접어들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일단 미국 증시가 경기회복과 기업실적의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투자자들의 심리가 ‘낙관’ 쪽으로 쏠리면서 주가가 상승한 1차 상승기를 끝내고 조정(맴돌이) 국면을 거쳐 2차 상승기 초기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다.조지 소로스(George Soros)의 자기암시 가설대로라면 이 국면에서 주가가 본격적으로 2차 상승기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경기회복과 기업들의 실적개선이 뒷받침해 줘야 가능하다.현재 미국 경기에 대해서는 저점을 통과한 것으로 판단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경험적 확률이나 3개월 평균 주가수익률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가장 신뢰하는 채권시장에서 형성되는 장·단기 금리차를 보더라도 일제히 미국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올 1월에 발표된 지난해 4·4분기 미국 기업들의 실적도 당초 예상치보다 평균 7% 정도 웃돌았다. 물론 예비기간(Pre-earning)에 악화된 실적을 토대로 예상치 자체가 낮게 설정된 한계가 있어 실제로 개선 여부는 올 1·4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4월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이때쯤이면 엔론사의 분식회계에 따른 파장도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높다.문제는 미국 증시가 2차 상승기에 접어들어 주가상승 속도와 폭이 얼마나 빠르고 크냐 하는 점이다. 여러 가지 시각이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이번 경기회복의 모습과 앞으로 새롭게 대두될 미국 증시의 장애요인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경기 재둔화 가능성 희박미국 경기 향방과 관련해서는 올 하반기 들어 경제성장률이 3∼4% 대로 높아질 것이라는 ‘V’자형 견해와 조만간 경기가 다시 침체될 것이라는 ‘W’자형 견해로 나뉘어 있는 상태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 경기가 재둔화(Double Dip)되리라는 시각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요즘 월가의 분위기다.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면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냐가 마지막 관심사로 남는다. 이는 새로운 성장주도 산업이 있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부시 행정부는 산업정책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첨단 기술업종과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전통적인 제조업간의 균형을 중시하는 ‘융합경제(Fusion Economy)’를 지향하고 있어 경기회복 속도는 종전에 비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거 클린턴 시절에 ‘신경제(New Economy)’의 신화를 낳았던 첨단 기술업종이 경기둔화시에 안정기능(Stabilizer)이 없었기 때문이다.경기회복 속도가 완만하다면 지난해 11차례에 걸쳐 단행된 금리인하로 풀린 돈(유동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경제 이론대로라면 실물부문에서 흡수해 주지 못한다면 인플레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조만간 미국 금리가 인상국면으로 전환돼 올해 안에 연방기금금리가 1%포인트 정도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을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경기회복의 질적인 측면도 종전만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으나 90년대초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시절에 미국 경제를 생각해 본다면 올해 무역적자와 함께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경기회복 속도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갈수록 악화되는 일본 경제 위기설과 무역수지 흑자 축소도 주목해야 할 변수다. 특히 일본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돼 일본의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유동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미국내 투자자금(국채투자분 포함)을 중심으로 해외에 투자한 엔화 자금을 회수할 경우 미국 증시뿐 아니라 세계경기 회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실시된다.이밖에 당초 예상보다 빠른 유로화 정착과 영국 등 남은 유럽연합(EU) 3개국의 조기 유로랜드 참여 가능성, 중국과 러시아, 한국의 부각 등도 그동안 안정(Safe-haven) 희구 심리로 국제투자자금을 일방적으로 끌어들였던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결국 이런 요인을 감안하면 앞으로 미국 증시가 다시 상승국면에 접어든다 하더라도 98년 9월말 미 연준의 세 차례 금리인하 이후 2000년 상반기까지 지속됐던 주가급등기와 달리 완만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향후 미국 증시에 커다란 영향을 줄 변수가 엔론사의 분식회계 이후 여러 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는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먼저 미 재무회계기준심의위원회(FASB)에서는 엔론 사태에서 문제가 된 특수목적의 자회사를 통한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모기업과 별도로 회계 처리할 수 있는 기업을 외부투자가들이 10% 이상 투자한 기업으로 한정시키는 법개정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는 3% 이상만 투자하면 분리회계를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자회사를 통한 분식회계가 쉬웠다.기업임원, 자사주 처분시 SEC통보 의무화미 의회도 기업임원들이 자사주를 처분할 경우 하루 안에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통보하고 이틀 안에 일반인들에게 공개토록 의무화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3월 10일까지 공개토록 돼 있다. 또 회사 임원들이 근로자연금법안 계획에 따라 자사주식을 거래할 수 없는 기간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할 방침이다.미 증권거래위원회에서는 기업경영 실적을 빠르게 공시하는 개정안도 추진 중이다. 증권거래위원회는 그동안 기업의 연간 경영실적과 분기실적은 사업연도가 끝난 시점부터 각각 90일 이내, 45일 이내 공시하던 것을 60일 이내, 30일 이내에 축소할 방침이다. 이같은 공시내용을 웹사이트에도 올려 일반인들에게도 열람할 수 있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이와 함께 증권거래위원회는 기업들이 회계관행을 변경했을 때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의무를 지게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평이한 언어를 사용할 것을 강제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또 기업이 의무적으로 경영상태를 투자자에게 공시하는 예도 늘어날 계획이다.공정한 회계감사를 위해 회계법인의 컨설팅 업무를 분리하는 것은 물론 회계감사 업무를 감독할 규제기관의 설립이 구체화됐다. 미 의회는 공공규제위원회라는 독립적 감독기구를 설립하고 위원의 3분의 2를 비회계사 출신으로 임명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증권거래위원회 예산을 45%나 늘려 회계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 보호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회계기준과 증시관련 제도는 미국이 글로벌스탠더드(Globalstandard)의 위치를 정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여러 가지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나 국내 회계법인들이 현행처럼 회계업무와 컨설팅 업무를 하지 못할 경우 국내 컨설팅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증시에서는 회계기준의 투명성과 윤리경영이 중시됨에 따라 이런 기준에 충족된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들어 뉴욕 월가에서는 ‘가치주’ 시대에서 ‘윤리주’ 시대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점을 국내 투자가들은 예의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schan@hankyung.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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