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중시...비씨,모든 서비스 '여행'이 중심
부자의 지갑은 얇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미국 영화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멋진 신사가 고급 상점에서 은빛 찬란하게 반짝이는 카드를 쓰윽 내밀고,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사인을 하던 모습 말이다. 물건값을 받으려던 상점 주인도 이런 카드를 내미는 사람은 새삼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한 뒤, ‘알아서 모신다.’하지만 이제는 많은 국내 카드사들도 돈 많은 고객들을 ‘차별대우’하기 위해 플래티늄 카드를 발급, 운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플래티늄 카드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겨우 2년 전인 2000년 무렵부터다. 카드사별로 1만∼5만명의 플래티늄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며, 전체 경제인구 가운데 플래티늄 카드 회원 가입 대상이 되는 사람은 20만명 선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그중 남성 비율이 90%를 넘는다.전통적으로 플래티늄 카드는 그저 돈이 많다는 것 이상의 이미지를 갖는다. 카드회사들이 소유자의 사회적 지위와 격조를 상징한다고 주입하기 때문이다. ‘이 카드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카드 소유자인 당신은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VIP 마케팅의 기본 전략이다.플래티늄 회원은 연회비 10여만원만 내면 우선 무료 제주도 항공권이나 호텔 숙박권 등을 ‘기본사양’으로 받을 수 있다. 그밖에 골프장 부킹, 여행 예약 대행, 각종 제휴사의 멤버십 등 회사별로 기상천외한 고급 서비스들이 제공된다.한 카드사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면 너도나도 따라서 하기 때문에 차별화도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카드사들은 왜 이런 돈 많이 들고, 귀찮은 플래티늄 카드를 운영하는 걸까.고급화 위해 돈 안 돼도 서비스실제로 ‘플래티늄을 운영해서 별로 남는 것은 없다’고 카드사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연회비가 10만∼13만원 선인데, 가입만 하면 호텔 숙박권 등의 가입 선물이 제공된다. 이걸 한두 번만 이용해도 연회비는 충분히 벌충하게 된다.비씨카드 우수고객팀 권순용 대리는 “플래티늄 회원에게서 받은 연회비 총액 이상을 서비스 제공 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카드사들은 ‘이미지’와 ‘평판’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려운 가치를 위해 이런 고급 서비스 개발에 열을 올린다.국내 카드사들은 회사별로 조금씩 다른 전략을 채택해 플래티늄 회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국민카드와 비씨카드가 회원이 많은 편이고, 전담 콜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국민카드는 같은 VIP 마케팅이라 해도 ‘수익에 기여하는 고객’과 플래티늄 고객을 분리해 관리하는 전략을 택한다.국민카드의 플래티늄 가입 기준은 기관장, 기업체 임원, 3급 이상 공무원, 판사, 검사, 의사 등이다. 이런 직업을 갖고 있다면 카드 사용 실적이 얼마 안 돼도 플래티늄 카드를 발급한다. 현재 회원은 3만 8,000여명, 연회비는 10만원이다. 앞으로 플래티늄 회원 수를 늘려갈 예정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수 정예의 원칙은 깨뜨리지 않을 방침이다. 희소성을 유지해 회원들의 자부심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한편 수익 기여도가 높은 고객, 다시 말해 국민카드를 열심히 쓰는 고객은 ‘우수 고객’으로 분류한다. 카드 사용액, 연체율 등의 신용도를 두루 고려해 우수고객을 지정하는데 이렇게 선별된 우수 고객은 모두 17만명이다. 이들의 평균 사용액은 연 2,000만원 이상. 우수 고객 내에도 등급이 있는데 1등급 고객은 해마다 8,000만원 이상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카드 마케팅팀 김길영 과장은 “우수 고객과 플래티늄 고객의 사용 행태는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이들의 카드 사용 횟수를 집계한 자료를 보면, 우수 고객은 1위 주유소, 2위 할인점, 3위 한식집, 4위 항공사, 5위 골프, 6위 해외 등이다.한편 플래티늄 회원은 1위 주유소, 2위 항공사, 3위 골프, 4위 음식점, 5위 백화점, 6위 할인점 등이다. 생필품이나 먹는 데보다는 비행기 타고 해외 여행을 가는 일에, 그리고 레저를 즐기는 데에 플래티늄 회원이 더 잦은 지출을 하는 것이다. 국민카드 일반 회원 전체와 비교하면 어떨까.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곳이 주유소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반회원의 경우 항공사 사용 빈도는 18위, 해외는 24위다. 반면 슈퍼마켓이 5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플래티늄 항공사, 일반회원 음식점 사용 잦아카드 사용 금액이 많은 우수 고객에게 플래티늄 가입을 권유해도 거절하는 일도 많다. 무료 제공 항공권 한 번만 이용해도 연회비 10만원은 충분히 상쇄되는데도, 많은 이들이 “연회비 내기 싫다, 안한다”고 단호히 말한다는 것. 이같은 성향을 고려해 우수 고객과 플래티늄 고객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도 다르다.우수 고객은 타 카드사와 비교해 수수료율이 싼 것이나, 비록 소액이라 해도 상품권 제공 등 ‘실제로 돈 되는’서비스에 관심이 많고 이런 서비스를 받았을 때 흡족해하는 편이다. 이에 비해 플래티늄 회원은 여행 예약 등 부가서비스에 좀더 치중한다.비씨카드는 국내 최대인 플래티늄 회원 5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비씨의 전략은 ‘서비스 기획부터 실행까지 플래티늄 회원은 따로 전 과정을 일괄 관리한다’는 것. 이를 위해 별도의 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플래티늄 회원만을 위한 일종의 핫라인인 셈이다. 이 회사 우수고객팀 김인호 부장은 “플래티늄 회원이 가장 바라는 서비스는 그들이 찾을 때 바로 연결돼고 요청에 요구를 해결해 주는 것,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무료 식사권 제공 같은 서비스는 이것이 해결되고 난 다음 차원의 문제다”라고 말했다.비씨카드는 모든 서비스를 ‘여행’을 중심 축으로 삼고 제공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실제로 플래티늄 회원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도 항공권 및 숙박 예약, 해외 여행에서의 식사 등이다. 이에 맞춰 해외 여행시 보험 무료가입, 해외 호텔 및 렌트카 이용시 할인, 주중 골프장 부킹 등을 해주고 있다.이밖에 회원의 성향에 따라 이벤트도 마련한다. 매달 예술의 전당서 열리는 음악회 티켓을 보내준다든가, 플래티늄 회원을 대상으로 앙드레 김 패션쇼를 연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비씨카드 우수고객팀 김인홍 부장은 “다채로운 서비스가 마련되지만 이걸 다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주로 음악회 티켓만, 또 골프에 관심있는 이들은 골프관련 서비스만 집중적으로 이용한다는 것.그래서 가장 큰 고민은 여러 사람의 입맛에 맞는 폭넓은 서비스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2년 전 벤처 붐이 한창일 때 30대 벤처 사장들 만큼은 제공되는 여러 서비스를 200% 활용했다고 한다.이들은 영어가 자유롭기 때문에 해외 여행도 잦고 해외에서 운신의 폭도 넓다. 관심사도 다양하며 합리적이기 때문에 연회비 12만원을 내고 챙길 수 있는 한 알뜰하게 가능한 서비스를 다 받더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