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일각 위혹제기에 국민은행 '괜한 트집'으로 응수
지난 1월 21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이 수행되고 있었다. ‘온라인 연합복권’ 시스템 운영업체 선정 심사가 진행 중이었던 것. 경찰과 시민단체가 눈을 부릅뜨고 모든 과정을 감시했고, 진행자인 국민은행 복권사업팀은 로비 차단을 위해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을 보안이 철통같은 한 호텔방으로 들여보냈다. 심사위원들의 핸드폰을 빼앗은 것은 물론이다.입찰 참가 업체들은 삼엄한 분위기에서 심사위원단에게 설명회를 진행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최대한 공정한 절차를 거침으로써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게끔 하겠다는, 복권사업 운영자 국민은행의 의지 표현이었다.1월 28일 심사 결과 KLS컨소시엄이 시스템사업자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됐다. 지금은 복권 발행기관인 7개 부처의 인가를 거쳐 국민은행과의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찰에서 떨어진 업체들은 끈질기게 심사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복권시장 독주를 바라보는 배아픈 경쟁은행의 시선도 고울 리 없다. 이는 소위 ‘로또’로 불리는 차세대 복권사업이 얼마나 엄청난 수익사업인지를 증명하고 있다.로또복권이란2000년 국내 복권시장은 5,200억원, 2001년은 6,000억원 규모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옛 주택은행이 운영하던 복권의 대명사, 주택복권(발행기관 건설교통부)의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다. 국민은행(옛 주택은행)은 이밖에도 즉석식 찬스복권, 추첨식 또또복권 등을 팔고 있다. 이밖에 문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 근로복지공단, 산림조합 중앙회 등 수많은 행정부 기관들이 복권을 발행한다.이렇게 수많은 복권이 난립하는 가운데 ‘온라인 연합복권’은 기존의 모든 복권시장을 단숨에 평정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주목받는다. 기존 복권과 로또의 가장 큰 차이는 1등 당첨금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속칭 ‘6·4·9 복권’이라고도 하는데, 복권을 산 사람은 1∼49까지의 숫자 가운데 6개를 임의로 기입, 당첨번호를 맞히는 것이다.이미 인쇄된 복권을 사는 기존 복권과는 다르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복권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당첨금은 그 주에 얼마나 많은 복권이 팔렸는지에 따라, 또 1등의 숫자를 고른 사람이 몇 명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이번에 당첨자가 없을 경우 상금은 계속 적립돼 차기 당첨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1등이라 해도 얼마를 받게 될지 모른다. 당첨확률은 매우 낮지만 대박심리를 자극하는 마력이 있다. 국민은행측은 연간 매출이 1조원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7년 안에 15조원 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연매출 2조원까지 추산하는 관계자도 있다.시스템 운영업체 선정 잡음‘온라인 연합복권’의 주체는 7개 정부 부처가 모인 ‘복권발행자’, 국민은행이 맡은 ‘복권사업운영자’, 그리고 실제 단말기 설치와 운영 등을 맡은 ‘시스템사업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복권사업운영자인 국민은행이 선정권을 갖고 있는 시스템사업자 공개입찰 심사 결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앞둔 KLS컨소시엄에는 삼성SDS, SK, 한국통신, AWI, 컴텍시스템, 안철수연구소 등이 참여하고 있다.국민은행의 선정에 강하게 반기를 들고 나선 곳은 심사에서 2등을 한 위너스시스템 컨소시엄이다. 이 회사는 3월 7일 국민은행을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계약체결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심사 결과가 발표된 후 네 차례에 걸쳐 국민은행에 이의를 제기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정까지 간 것이다.위너스시스템은 KLS컨소시엄의 주간사인 KLS의 대표가 2000년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과, 국민은행 사외이사였던 안철수 사장이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제안서 제출 이틀 뒤 사외이사직에서 사퇴했던 것등을 문제 삼고 있다.이에 대해 국민은행 복권사업팀 이인영 팀장은 “위너스측에 답변서를 보낸 대로, 개인에 대한 벌금형이 우선협상대상자를 취소할 만큼의 도덕성 결여사유로 보기 어렵고 안철수 연구소가 KLS컨소시엄에 참여한 사실을 제안서를 보고 알았다. 그래서 안철수 사외이사에게 불필요한 의혹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고 통보하자 안사장 스스로 사임했다”며 “위너스측이 다른 의도를 갖고 트집잡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왜 국민은행만?’…경쟁은행·문화부 ‘투덜투덜’로또 복권의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과학기술부, 노동부, 산림청, 중소기업청, 제주도 등은 ‘연합’을 결성하고 로또복권 사업을 서둘러 왔다. 로또복권이 도입되면 사업을 추진한 7개 부처는 가만히 앉아 해마다 몇백 억원에서 몇천 억원까지 배당금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이에 비해 문화관광부는 월드컵 경기장 시설비 마련을 위해 발행 중인 스포츠토토 복권과 중복투자의 우려가 있고, 스포츠토토 시장이 위축된다며 로토복권 발행을 반대하고 있다. 문화부는 로또복권 발행대행기관인 국민은행의 외국지분이 70.9%로 국부유출이 예상된다며 국민 정서에 호소하고 있다.국민은행이 운영자로 선정된 것은 한시라도 로또 판매를 빨리 시작하려는 정부 부처의 속사정과 맞물려 있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주택복권을 운영해본 경험이 빠른 사업진행의 편의를 높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간 1조 5,000억원이 넘는 준조세가 도입되는 셈인데도 공청회 한 번 열리지 않았다”면서 “은행으로서는 ‘건교부의 힘’에 눌려 국민은행과 경쟁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국민은행이 복권사업의 우선권을 주장할 아무런 명분이 없다. 수익금의 일부를 기금 등에 납부하는 복권사업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외국계 은행이 되어버린 국민은행이 이런 복권 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빛은행의 한 고위관계자가 던진 의문이다.이에 대해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주택복권 사업을 진행해온 국민은행(옛 주택은행)이 로또를 승계하는 것이 중복투자를 피한다는 의미에서도 당연한 것 아니냐”며 각종 의혹들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