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정상 노리는 ‘야망의 CEO’

차분한 설득력으로 최고 인재 확보… 직원들과 ‘5%미팅’ 가지며 시너지 극대화

김봉수 키움닷컴증권 사장(49)이 대화를 나눌 때 눈에 띄는 습관이 하나 있다. 중요한 얘기를 할 때마다 몸을 상대방쪽으로 바싹 붙인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정확하게 알아듣도록 하기 위한 행동인데, 이런 모습에서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2년도 안 된 짧은 기간에 대형 증권사들을 긴장시킬 만큼 회사를 키워낸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루에 많게는 30여명을 만났을 정도다. 증권사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금융감독원 직원, 증권사 선후배, 그를 믿고 자금을 댄 주주들, 그리고 그와 한 배를 탄 180명 직원들을 채용할 때도 그는 수없이 많은 말을 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바싹 다가가 말하는 습관은 이 때문이 아닐까.이런 점에서 보면 경영자는 말하고 설득하는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인재확보가 가장 중요한 금융업계에서 그의 조용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말솜씨는 빛을 발했다. 단기간에 회사를 번듯하게 세울 수 있었던 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공학, 법인영업, 소매영업 등 회사의 주력부대원이 될 직원들을 영입할 때 업계 1인자들만 골라 데려왔다. 이는 ‘최고의 사람들이 없다면 최고의 회사는 없다’는 그의 지론에서 비롯됐다.‘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증권사, 그러나 종국에는 모든 증권사를 평정할 수 있는 곳.’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새로운 증권사를 만들어 업계 최고가 되자”며 이들 마음속에 있는 야망의 불을 지폈다. 작은 눈이지만 말할 때는 날카롭게 반짝거리는 눈빛, 그리고 풋풋한 이름처럼 편안한 그만의 표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인재를 끌어들인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이들을 더욱 개발시키려고 노력했다.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없기 때문에 회사 전체를 연구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직원들과 함께 2주일에 한 번씩 독서토론회를 갖고, 회사 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것을 한 가지씩 찾아오도록 했다. 그는 “내용은 무엇이든지 좋다”며 “다만 책을 읽고 같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개혁은 누구 한 사람의 주도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사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 직원의 입에서도 나와야 비로소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키움닷컴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이렇듯 모든 직원들의 연구하는 마음자세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지난 99년 권성문 KTB네트워크 사장이 온라인 증권사 설립을 제의했을 때 김사장은 그 자리에서 ‘OK’했다. 증권사 사장이 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 76년 쌍용투자증권에 입사한 뒤 23년이 넘도록 증권업계에서 생활한 그에게 지점 없는 증권사는 오래 전부터 꿈꾸던 회사였다.그는 ‘1년에 3개월, 10년엔 3년이 고작 호황이고 이때 벌어놓은 돈으로 10년의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체제로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 권사장의 온라인 증권사 설립제의에 곧바로 동의했던 것이다.그는 하루에도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한다. 수수료, 서비스, 이벤트 등에서 경쟁사와 피 말리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 0.005%의 수수료 차이로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것이 이 업계의 생존방식이다. 이런 만큼 그의 결정에 따라 회사 수익의 희비가 엇갈린다.지난 2000년 5월 키움닷컴이 의욕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직원들의 얼굴에 힘이 없어 보였다. 투신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키움닷컴이 뭐하는 회사냐”며 “지점도 없는 증권사에게 돈을 맡길 수는 없다”고 직원들을 문전박대 했기 때문.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키움닷컴을 증권사로 봐달라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였다. 그래서 김사장은 삼국시대 어린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서동요’처럼 친근하게 고객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TV광고를 추진하기로 했다.‘이박사 광고’ 대주주 반대 무릅쓰고 밀어붙여일명 ‘신바람 이박사(엽기트롯 가수)’가 회사 광고 모델로 등장, 유치찬란한 배경화면에서 부채를 들고 이리저리 춤을 추며 노래하는 광고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당시 ‘무슨 증권사 광고가 이렇게 유치하냐’며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보다 앞서 키움닷컴의 대주주인 김익래 다우기술 회장은 광고 초안을 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지만 김사장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광고로 키움닷컴의 브랜드가 전국에 알려졌고, 누구도 키움닷컴이 증권사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았다.사실 경영자가 결정하기까지는 수많은 사전 작업이 있다. 김사장은 이런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정하기까지 과정을 사장과 직원이 이해할 수 없다면 잘못된 결정이 되기 쉽다. 그가 회사의 중요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예컨대 매주 화요일 오전 7시30분, 그는 법인영업팀과 기업금융팀 직원들과 ‘시너지 미팅’을 갖는다. 이곳에서 그와 직원들은 영업현장에서 들은 정보를 교환한다. 기관투자자와 은행, 보험사 등에서 활동하는 법인영업팀이 내놓은 정보는 기업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금융팀 직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된다. 이렇듯 부서간 정보를 교환하다 보면 좀더 정확한 회사의 전략을 내놓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이 스스로 회사의 미래를 세우고 결정하도록 돕는 CEO가 되고 싶어한다.소매영업팀의 ‘5% 미팅’은 직원이 알아서 회사의 미래를 개척하자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시장점유율을 5%대로 높여가자는 것이 목표. 이 모임은 사실 ‘2% 미팅’이란 이름에서 시작됐다. 그러다가 2%를 돌파하면서 2.5% 미팅으로 바뀌었고, 그 뒤엔 3% 미팅이 됐다. 이렇듯 회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김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맥주 파티를 열었다. 최종 목표는 시장점유율 9%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증권을 앞서는 것이다. 말만으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직원들이 직접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야 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키움닷컴 소매영업부는 빠른 속도로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시장점유율 3%로 올라섰고, 그해 10월엔 4%의 벽을 깼다.“직원들과 함께 키움닷컴을 한국 대표 증권사로 성장시키는 것이 제 꿈입니다. 고객들로부터 최고의 신뢰를 받는 증권사라고 평가받는 날, 키움은 세계 최고가 되려는 목표를 세울 겁니다.”김사장은 지난 74년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굿모닝증권의 전신인 쌍용투자증권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채권부장으로 일하면서, 채권운용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다. 94년 SK증권으로 옮겨 자산운용담당 이사와 경영지원본부 상무를 거쳐 2001년 키움닷컴 대표이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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