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재 LG홈쇼핑 사장

최영재LG홈쇼핑 사장“중국에서도 홈 쇼핑 돌풍 일으킬 겁니다”철저한 품질관리·눈높이 고객경영으로 세계 1위 눈앞기자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사무실을 찾은 것은 3월19일 오후 3시30분. 당초 최사장과의 인터뷰 약속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인터뷰 진행에 앞서 당부할 게 있다”는 홍보실측의 요청(?)으로 30분 일찍 찾았다. 내용인 즉, “최사장은 오로지 일밖에 모르는 분이어서 사적인 부분 등 소프트한 얘기가 거의 없을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홍보맨들의 괜한 얘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일에 미쳐 지내기에 그럴까’하는 궁금증이 기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이날 오후 4시 정각에 만난 최사장은 180㎝가 넘지만 호리호리한 체구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사장은 홍보실 직원이 건넨 2월11일자 에 ‘CEO탐험’ 1호로 나온 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 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보며 말을 꺼냈다. 역시 그는 ‘일’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했다.“나도 그 분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명감과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어요. 그런데 난 특별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일을 맡으면 그대로 넘기지 못하는 성격이랄까. 맡으면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열심히 해보면 틀림없더군요. LG화학 재직시 출장가서 만난 피에르 발만 이블랑 회장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일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도 일(work), 둘째도 일, 셋째도 일이라고 말이지요.”최사장의 말을 듣고있자니 자타가 공인하는 일꾼으로 소문난 서두칠 사장이 머리에 떠올랐다. 서사장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2시까지 계속 근무해 ‘식스 트웰브’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일꾼만이 일꾼을 알아본다’고 최사장은 아마도 서사장의 일에 대한 열정을 높이 샀을 것이다. 최사장은 ‘왜 일꾼을 높이 평가하는지’ 말을 이어나갔다.“조직에서 개인이 배우는 것은 ‘보고 배우는’ 것이지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놀면서 조직에 열심히 하라고 요구하면 통하겠습니까.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나요.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이 정도를 걸으면 그 사회는 제대로 됩니다. 그게 세상사는 법도지요.”회사직원들은 최사장에게 ‘싸움닭’이라는 별명도 붙여줬다. 그가 직원들을 만날 때면 늘상 ‘경쟁이 붙으면 피하지말고 반드시 맞서 싸워 이겨라’고 독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LG홈쇼핑이 국내 홈쇼핑업계의 선두에 올라선 것일까. 그리고 비약적인 성장비결은 뭘까.“사실 홈쇼핑이 아무데서나 잘 되는 사업은 아닙니다. 선진국형 비즈니스이기에 미국, 유럽, 일본-한국만큼은 아니지만-에서 성공한 사업입니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홈쇼핑이 성공을 거둔 곳입니다. 동남아에서는 성공한 곳이 없어요.중국에서 3,4년 전쯤 비공식적으로 홈쇼핑이 유행한 적 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고객에 대한 신뢰를 못 줘서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 봅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믿음을 주는데 주력했고 이것이 먹혀서 성공한 것입니다. 언젠가 LG홈쇼핑 구매 고객의 70~80%가 만족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는데 다 이 때문입니다.”이것만으론 최사장의 성공비결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고객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 또한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우리나라에서 홈쇼핑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물었다.“사실 미국홈쇼핑과는 어떤 측면에서는 다르게 봐야 합니다. 미국은 케이블TV가 먼저 정착되고 홈쇼핑이 뒤를 이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중산층 이하를 대상으로 값싼 상품을 파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따라서 판매제품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물건을 직접 사보기도 하고 기획회의에 참석도 해보고 했는데 애당초 구매력있는 사람은 홈쇼핑 대상이 아니더군요.우리가 사실 그런 점 때문에 초기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IMF 터지고 홈쇼핑 맡았는데 소득 많은 사람만 케이블 가입을 유지하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이 살 수 있는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가품이어서가 아니라 가공 등이 잘 된 제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그래서 미국과 비교했을 때 매출액 기준은 3위지만 단가가 비싸도 품질 좋은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쉽게 말해 1인당 매출은 세계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고 봅니다”최사장의 말을 요약하면 철저한 품질관리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얘기다. 최사장은 집무실 의자 뒤에 신문고라는 이름이 붙여진 팩시밀리를 두고 있다. 고객으로부터 들어오는 불만사항을 직접 해결하곤 한다.최사장은 국내 1호의 품질관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가 왜 품질관리를 중요시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난 품질검사만 갖고는 믿지 못해요. 그래서 방송 전에 기능·재질·안정성에 대해 우리 품질관리(QA)팀에서 다시 검사를 합니다. 전기안전연구소, 식품연구소, 의류연구소 등에 보내서 사전검사를 해 우리 고객에게 보내도 될지를 판단하지요. 직송상품의 경우는 현지에 가서 조사하고 합격해야 방송합니다.특히 의류는 검사만으로 봉제 등 세심한 부분을 확인하기 어려우니까 특정 기술업체와 제휴해서 우리와 제휴한 그 업체에서만 봉제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생선의 경우는 현지에서 포장 직전에 확인하고 배송합니다.식품은 식약청과 계약해서 분기별로 시설을 점검하고 또 식약청에서 직접 브랜드를 만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간 9,000만~1억원 정도를 검사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최사장의 얘기를 자세히 듣다보면 고객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나오지 않는 법이 없다. 그만큼 고객을 생각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고객의 개념은 교과서적인 내용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내가 생각하는 ‘고객만족’으로 고객이 만족할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지역, 연령, 성별에 따라 다릅니다. 사실 나도 30년 이상 상품을 팔아왔지만 나도 고객을 잘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예컨대 외국에 나가보지 않은 우리 사원보다 고객이 외국생활을 잘 알 수도 있습니다. 그렇듯 직원이 생각하는 고객수준과 고객이 직접 생각하는 수준은 다른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고객보다 앞서가게 하기 위해 여러 직원들을 외국으로 출장보내기도 합니다.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외화가 부족할 때 아이스크림 향을 통일했다고 합니다. 겨울에 이불 뒤집어쓰고 아이스크림 먹는 게 낭비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 였을 겁니다. 그러나 온갖 향수에 민감한 외국인들에게 그런 것이 통할 수 있겠어요. 흔히 내 생각으로 고객을 평가하니 이런 오류가 생기는 것입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판단해야 합니다.”최사장의 말을 계속 듣자니 너무 추상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것 같았다. 그래서 최근 미국 일본 등지에서 LG홈쇼핑을 배우러 몰려왔었다는데 그들이 무엇을 배우고 갔는지가 궁금했다.“우리가 IMF때 외자도입하려고 상품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갖고 갔더니 오히려 그 쪽에서 ‘우리도 (LG처럼) 이렇게 해야겠다’며 관심을 보이더군요. 예전에 미국 홈쇼핑회사인 QVC에선 냉장고 등은 팔지 않았는데 우리한테서 배운겁니다.그래서 매출도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요. QVC는 이전에는 매출 30~40%가 액세서리였습니다. 우리는 매출의 5~6%가 액세서리고 많아봐야 10%정도 밖에 안돼요. 우리는 가정 생활용품·전자가 30~40%, 의류가 15%, 보석이 5~6%, 화장품이 5~6% 정도인 반면, QVC는 화장품 10%, 의류 20~30% 등 주로 저가 상품을 다뤘습니다.그래서 우리 노하우를 많이 배워갔지요. 일본도 우리 프리젠테이션 자료나 스튜디오를 배워갔습니다. 호주 홈쇼핑에서도 왔었습니다. 호주 홈쇼핑 업체는 미국 QVC 20명 정도가 차린 업체로, 고전하고 있었는데 우리 전략을 도입하겠다고 하더군요”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지칠 법도 한데 최사장은 일에 전념할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오히려 그를 따르는 직원들이 힘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좀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이의 필요성을 역설하기까지 했다.“일이 힘들긴 하지만 편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내가 공장에서 일할 때 바빠서 바짝 일을 추진하면 다들 불평은 해도 눈빛은 반짝입니다. 경기가 안 좋아서 직원들에게 쉬라고 하면 몸은 편할지 몰라도 지쳐 살맛 안 나는 인상을 짓더군요. 사람이 머리를 사용하라고 이 세상에 난거지 편하려고, 또는 반복된 일을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홈쇼핑이 비교적 자아실현을 위해 좋은 문화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최사장은 2005년 세계 2위, 2010년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이젠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생각이다. 최사장은 먼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그는 중국시장이 인프라 구축이 안 돼 있는데다 이미 (중국의 홈쇼핑 업체들로 인해) 신용을 잃은 시장이라는 점 때문에 어렵다는 점을 실토하면서도 이를 해결할 전략을 가지고 있는 듯 자신감을 내보였다.최사장은 가족에 대해 말하기를 무척 꺼린다. “일만 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불평이 없는가”라고 슬쩍 묻자 답변은 간단했다. 그리고 말꼬리를 돌리더니 역시 일 얘기로 돌아갔다.“예전처럼 가정에 소홀히 하지는 않습니다. 주말에 회사 나오는 점이야 이미 가족들도 포기한 부분이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다들 여유를 즐길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도 무척 열심히 일합니다. 한국도 결국 리딩그룹에 합류하려면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독일 사람들 일하는 걸 보니 비서도 다 퇴근한 밤 10시까지도 회의를 계속 진행하고 알아서 문 잠그고 나오더군요.”희로애락내 인생에서 크게 슬프거나 노여웠던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일이 내가 타고난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항상 즐거운 생각으로 일해 왔습니다. 기뻤던 일이라면 내가 입사한지 1~2년 쯤 됐을 때 비누공장을 맡고 있던 경험이 떠오르네요.세탁 관련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 수요는 늘고 있는데 생산이 따라주질 못해서 내가 일주일을 회사에서 밤새면서 공정을 일일이 보고 과정 하나하나에서 작업자에게 표준을 새로 만들어 줬어요. 그 표준을 낮이든 밤이든 그대로 적용하라고 지시했더니 생산량이 두 배 늘었어요. 정말 보람이 있었죠.이후에 내가 세제 시장 규모를 바꿔놓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은 정말 생생해요. 여름이었는데 공장 잔디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현장에 돌아가서 관리 작업을 했던 것이 눈에 선합니다.크게 노여웠던 적은 없지만 후배들이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을 때 자주 꾸짖었던 기억은 있습니다. 내가 40년 가까이 일해 왔는데 내 입장에서 5~6년차가 하는 일에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다 일에 대한 욕심이죠.그런데 워낙 나무랐던 후배가 많아서 누구한테 가장 호되게 했다는 기억은 없어요. 아마 나한테 야단맞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꼭 잘한 것 같지는 않네요.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게 경영원칙상으로는 맞고 또 그게 미국식이기도 하지 않습니까.물론 일을 혼내는 것이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을 키우겠다는 생각에서 후배들을 많이 질책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사실 제 인생이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 삶이라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그저 일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전부 들어있습니다.하루 24시간 중 보통 8시간은 자야한다고 보면 식사시간 등을 더하면 생체에 필요한 기본적인 시간이 12시간 쯤 될 것입니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식사시간 빼고 9시간이라 보면 깨어있는 시간의 거의 90%를 직장에서 보내는 셈인데 그 시간이 즐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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