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닷컴증권 ‘1등’ 온라인 증권사로 우뚝

‘꼴찌에서 9위로’… 1년 만에 70억원 적자서 100억원 흑자로 대변신

키움닷컴이 영업인가를 받은 건 지난 2000년 1월, 본격 영업을 시작한 때는 같은해 5월이다. 당시 약정점유율은 25위, 꼴찌 수준이었다. 2000년 결산을 한 결과 1년 만에 대표이사가 바뀌는 사건까지 겪었던 키움은 1년여 만인 2001년 7월, 점유율 3.14%를 기록하며 업계 9위에 올라섰다. 이때는 투신사에서 전환한 증권사까지 포함해 국내에 41개 증권사가 있었으니, 실적만 보면 대형사 부럽지 않은 수준에 올라선 것이다. 약정액도 2000년 5월 3,532억원에서 올 1월 9조원대를 돌파했다. 선물옵션 분야는 이미 2001년 초에 점유율 4%대를 넘어서며 업계 5위권 안에 자리를 굳혔다.키움닷컴증권은 이후 주식약정 부문에서는 꾸준히 9위대를 유지하고 있다. 키움의 바로 앞 순위인 6∼8위 증권사들은 동원·굿모닝·미래에셋 등인데 자본금을 비교해 보면 키움이 500억원, 굿모닝은 9,336억원, 동원 4,042억, 미래에셋 1,128억원 등이다. 규모에 비춰봤을 때 키움의 실적이 탁월함을 입증하는 것이다.키움은 국내 최초의 ‘100% 온라인 증권사’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다. 인가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지면서 ‘국내 최초’란 수식어는 떼야 했지만, 이제는 ‘국내 최초로 단기간에 눈부신 실적을 올린 온라인 증권사’란 표현은 쓸 수 있게 됐다. 2000년 76억원의 적자를 봤던 키움은 2001년 2월말 현재 1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키움은 처음에는 자본금 300억원으로 단순한 중개업무만 담당하는 증권사로 시작하려 했지만, 초대 김범석 사장이 강력하게 주장해 인수업무까지 영위할 수 있는 종합증권사로 출범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7월에는 온라인증권사 최초로 공모주청약을 실시한 데 이어 같은해 12월에는 기업공개 주간사업무까지 맡았다. ‘공모주 청약’ 하면 으레 증권사 지점에 길게 늘어선 줄이 떠오르지만, 키움닷컴은 모든 공모주관련 절차를 온라인에서 성사시켰다.키움닷컴증권의 성공비결을 한마디로 축약하긴 어렵겠지만 ‘마케팅의 승리’란 데 대해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앞에서 거론한 독특한 TV CF에다 ‘파격적인 수수료’란 점을 강조한 지속적인 광고, 경영진의 공격적인 마케팅 마인드 등을 꼽고 있다.경쟁업체의 한 임원은 “사실 키움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수료가 타사보다 몇 배 이상 싼 것도 아니었다”며 “독특한 마케팅 전략의 승리라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온라인증권사인 겟모어나 e*trade 증권이 지난 2월말 현재 1%대에도 못 미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점에 비쳐보면 키움의 마케팅 전략이 뭔가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본격 영업 앞서 ‘브랜드 PR 광고’효과 커키움의 마케팅 전략은 마케팅 이론의 실험장이라 할 정도로 다양했다. 요즘 용어로 하면 ‘브랜드 인지도 제고작업’부터 시작했다. 이박사가 CF 광고에서 ‘키움이 좋아, 좋아’라고 읊조리고 다녀 인지도가 크게 향상됐다. 김봉수 대표는 “삼국시대 백제 무왕이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를 데리고 온 것처럼 ‘키움’이란 이름을 잘 아는 곡조로 흥얼거리게 해 기억에 남기려는 시도가 성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처음에는 키움닷컴이 뭘 하는 회산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영업에 앞서 이름을 알리는 작업이 중요했기에 다소 파격적인 광고를 경영진이 허락한 것이다.”광고작업을 진두지휘한 윤수영 이사의 회상이다. 키움은 수수료 인하 전략도 적절하게 구사했다. 이른바 ‘공짜 마케팅’이다.키움은 영업을 시작하면서 수수료 인하폭을 업계 최저로 책정했으나 인가절차가 늦어지면서 다른 증권사에 선수를 빼앗기자 아예 ‘무료’로 치고 나왔다. 신규고객들에 한해 15일간 33회 매매까지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은 것이다. 한시적인 인하조치가 투자자들에게는 ‘키움은 싸다’란 인식을 심어줬다.키움닷컴의 시스템을 초기부터 이용하고 있다는 한 40대 투자자는 “솔직히 키움의 시스템이 업계 최고는 아니다”면서 “하지만 그 정도 수수료에 그만한 시스템이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리얼타임으로 현재 내가 매매한 종목과 잔고현황을 보여줘 데이트레이더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큰 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30대 고객은 “키움의 시스템은 매도, 매수 화면을 아주 짧은 순간에 바꿀 수 있게 해두었다”며 “데이트레이더 입장에서는 일분 일초가 아까운데 주문화면이 이용자에게 편리하게 돼 있어 좋다”고 평가했다.고객관계 관리에 일찍 눈떠 성장세키움은 고객관계관리, 이른바 CRM에도 일찍 눈을 떴다. 키움이 온라인증권사란 점에서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길 수 있는 여러 불만들을 미리 잠재우기 위해 먼저 콜센터장이 고객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했다. 소위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도한 것이다. 키움은 또 정기적으로 고객과의 만남도 갖고 있다. 올초에는 우수고객 초청행사를 호텔에서 열기도 했다.키움은 이와 함께 ‘시장개척’에도 주력했다. 99년 이후 각 증권사에서 수익률 대회를 경쟁적으로 개최했지만 현물 또는 주가지수선물에만 그치고 있던 틈을 파고들어 ‘옵션수익률대회’를 2001년 7월 처음 개최했다. 옵션키우기 전략은 예상 밖의 결과를 낳았다. ‘옵션영웅문’이란 이름으로 한경와우와 제휴해 매주 수익률대회를 중계하자 키움닷컴의 현물주식 약정 점유율이 덩달아 급등한 것이다. 특히 9·11테러 직후 키움의 고객들이 옵션투자로 대박이 터졌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키움은 운 좋은 증권사’란 인식도 퍼졌다.키움닷컴은 이름을 짓는데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키움’은 ‘키우다’의 명사형으로 고객의 재산을 키워드리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라고 윤이사는 설명했다. 증권사 이름으로는 맞춤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름 덕분에 주목을 많이 받았다. 또 키움닷컴의 주문전용시스템 이름은 ‘번개’다. 번개같이 주문을 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위해 그렇게 지었단다. 또 옵션수익률 대회와 시스템 이름을 ‘옵션영웅전’이라 짓고, 무협지 분위기를 냈다.물론 키움닷컴증권의 성공에는 운도 많이 따랐다. 은행에서 증권계좌를 틀 수 있게 만든 99년 정부의 조치는 키움닷컴증권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투자자들이 계좌를 직접 지점에 와서 만들어야 했다면 키움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다 시장환경도 키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키움이 영업을 시작할 즈음 국내 시장에서는 ‘데이트레이더’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하루에도 많게는 몇백 번씩 주식매매를 하는 사람들인만큼 수수료에 민감한 부류였다. 키움이 ‘싼 수수료’로 어필하자 데이트레이더들이 대거 옮아왔고, 이들이 약정 급상승에 큰 몫을 했다.그래서 업계 일각에서는 키움이 ‘지나친 매매를 유발, 업계의 물을 흐리는 회사’란 비난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키움은 데이트레이더들 중 큰 손을 몇 명 잘 유인해서 일어선 회사”라고 악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키움의 성장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키움닷컴증권을 향한 업계의 질시는 이젠 좀 사그라졌지만 앞날에 대한 걱정은 회사 안팎에서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만으로는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김봉수 대표는 “금융회사가 장기추세상 이익을 내고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관리자산 규모가 커야 한다”며 “자본이 더 충실해지고 시장지배력이 커지면 다른 분야에도 눈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키움닷컴증권은 앞으로 있을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한 모델이 될 수 있다”며 “전산관련 비용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중소형 증권사들은 이제 자신의 틈새시장이 어딘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키움닷컴이 앞으로도 계속 순풍에 돛 단 듯 성장한다면 몇 년 안에 우리도 ‘온라인증권사가 기존 증권사 합병’이란 기사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