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구매하는 알뜰 주부층 집중 공략

TV홈쇼핑 업체들 시장 주도로 1조원 시장 넘어...두산오토.제이씨페니 등 외국계도 약진

카탈로그는 인터넷 쇼핑몰이나 TV 홈쇼핑과는 달리 오프라인 통신판매 매체다. 그러나 그 성장세는 나머지 두 매체 못지않다. 한국통신판매협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카탈로그 통신판매 시장 규모는 1조 890억원. TV 홈쇼핑 매출의 절반을 조금 넘는 규모다. 전년보다 43%나 성장했고, 지난 98년과 비교하면 3년새 2배 가까이 몸집이 커졌다.카탈로그 판매가 인쇄 매체임에도 국내 소비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판매도구로 자리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의 성장에 힘입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LG홈쇼핑이나 CJ39쇼핑 등 홈쇼핑 또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국내 카탈로그 통신판매 시장을 주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TV 홈쇼핑업계 톱인 LG홈쇼핑의 경우 자사 카탈로그인 을 매달 300만부씩이나 전국에 뿌리고 있다. 5인 가족 기준으로 볼 때 두 집 건너 한 집은 이 카탈로그를 받아보는 셈이다. 여기서 올린 매출만 지난해 1,560억원. 홈쇼핑 시청자와 인터넷 쇼핑몰 회원들을 고스란히 카탈로그 독자로 확보한 것이다.홈쇼핑업계 2위인 CJ39쇼핑이 찍어내는 역시 1위 LG홈쇼핑을 위협할 만큼 상당한 부수다. 현재 매달 250만부가 넘는 카탈로그를 배포하고 있다. 지난해 1,278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LG홈쇼핑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이들 TV 홈쇼핑 업체들은 본업인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의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도 카탈로그 발행 부수를 계속 늘리고 있다. LG홈쇼핑 DM팀의 정지화 과장은 “카탈로그는 그 자체로도 상당한 매출을 올리는 통신판매 도구일 뿐 아니라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의 매출을 이끌어내는 ‘효자 매체’”라고 설명했다.구매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는 TV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과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카탈로그가 소비자들에게 더 없이 좋은 쇼핑 지침서가 된다는 것.카탈로그는 TV 홈쇼핑 채널과 인터넷 쇼핑몰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으며 급속도로 틈새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시간과 물량 제한 때문에 자칫 충동구매가 일어날 수 있는 TV 홈쇼핑과는 달리 카탈로그는 계획구매를 가능케 한다는 측면도 있다.고영선 CJ39쇼핑 카탈로그팀장은 “카탈로그는 상품을 한 달 동안 두고두고 볼 수 있는 데다 다른 카탈로그에 실린 상품들과 품질, 가격 등을 서로 비교할 수 있어 알뜰주부들의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가구당 2~3부 꼴 배포신용카드 영수증 등에 동봉돼 오는 전단형 카탈로그를 빼고도 국내에서 책자 형태로 발송되는 카탈로그 수만 적게 잡아도 1,500만부는 넘을 것으로 업계에선 추산한다. 가구당 최소 2∼3부의 카탈로그를 보는 셈. 이 어마어마한 시장을 놓고 벌이는 업체들간 각축전도 볼만하다.국내 카탈로그 통신판매 업체는 줄잡아도 20개사가 넘는다. 5대 홈쇼핑 업체를 필두로 SK글로벌(디투디), 코오롱상사(코오롱홈쇼핑), 한솔CSN(한솔CS클럽), 한국통신(바이앤조이) 등 대기업들이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다.비씨카드(쇼핑저널), 국민카드(웰컴홈쇼핑) 등 카드사들도 자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카탈로그를 뿌리고 있다. 이밖에 씨앤텔(씨앤텔), 한국텔레마케팅(통판뉴스), 가로수 등도 마케팅이 한창이다.독일계 통신판매 전문기업인 오토가 지난 97년 두산과 85:15의 지분율로 합작한 두산오토는 현재 월 80만부가 넘는 카탈로그 를 찍어내며 국내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오토사가 전 대우넥스토아를 인수해 새로 출범시킨 넥스토아(넥스토아)도 60만부가 넘는 해외파 카탈로그 통판 업체다. 미국계 대형백화점 제이씨페니의 국내 판매법인인 제이씨페니인터내쇼날카탈로그코리아 역시 업계의 다크호스다.업체들마다 많게는 몇천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는 있지만, 정작 카탈로그만으로 남는장사를 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갈수록 살포량이 느는 카탈로그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 보통 100페이지가 넘는 카탈로그 1부를 제작해 발송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00원 정도. 300만부 기준으로 30억원이 드는 꼴이다.자동응답식 보험 상품 등의 광고를 싣는다 해도 제작·발송비의 10%를 넘지 못한다. 나머지 90%의 비용을 판매 마진으로 메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하소연한다.그런데도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TV 홈쇼핑 채널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함께 운영하는 경우엔 카탈로그가 시너지 효과가 낸다는 판단에서다. 또 카드사나 통신업체, 유통사들 역시 카탈로그의 덕을 톡톡히 본다는 입장이다. 모기업이 있는 경우엔 기업홍보용으로도 그 역할이 커지고 있다.LG홈쇼핑 정과장은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정보매체로서의 역할도 있다”며 “상품 소개뿐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사보라고 생각하면 꼭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최근 업계에선 제작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탈로그를 무조건 많이 찍어낸다고 능사가 아니란 지적이 일고 있는 분위기다. 고객관계관리(CRM) 차원에서 고객의 연령과 계층, 성향 등을 고려한 맞춤형 카탈로그를 제작해 적시적소에 보내줘야 한다는 얘기다.아무리 양산되는 카탈로그라도 명품점이나 수입차 업체들이 특정 계층을 겨냥해 제작하는 카탈로그처럼 고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개발하는 게 효과적이란 판단에서다.카탈로그에 특화된 상품은 없다. 대부분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취급하는 상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이 팔리는 상품들은 고가품으로 가죽점퍼 등 특수소재 의류(20만∼30만원대), 옥돌 및 적외선 매트(10만원대), 믹서기 등 아이디어 주방기구류(3만∼4만원대) 등 이 카탈로그 통신판매를 통해 잘 나간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LG홈쇼핑은 지난해 가죽의류를 비롯해 옥돌매트 등이 전체 매출의 10%를 웃돌 정도로 인기를 모았고 올 1∼2월엔 금연바람을 타고 금연초가 불티나게 나갔다. CJ39쇼핑은 전기매트 브랜드인 ‘황제보료 좋은아침’의 경우 최근 월 주문 100억원을 돌파했다. 분쇄, 혼합 등 다기능 주방용품인 ‘파워 도깨비 방망이’ 역시 잘 나가는 스테디셀러다.카탈로그우먼 두산오토 코디네이터 배연진 대리·패션 MD 정주희 과장고객니즈 살리는 우리는 ‘명콤비’카탈로그 제작엔 코디네이터와 MD의 호흡이 절대적이다. 고객 니즈를 잘 파악해 이를 카탈로그 디자인에 제대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 두산오토의 카탈로그 코디네이터인 배연진 대리(34)와 패션 머천다이저(MD)인 정주희 과장(35)은 그런 점에서 잘 맞는 ‘콤비’다.카탈로그 컨셉에서 디자인, 인쇄까지 도맡아 하는 배대리(사진 왼쪽)는 3년 전 국내 유명 의류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에서 카탈로그 코디네이터로 변신했다. 유럽풍 패션 의류의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키면서 구매 포인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지면으로 보여주는 의류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캐주얼, 타운캐주얼, 하이캐주얼 등 연령층별 다양한 상품들을 그 특성에 맞게 디자인해야죠.”타깃층이 중년 여성인 경우엔 라운드 레이아웃으로 부드럽게 연출하는가 하면, 젊은층이 대상인 브랜드는 배경을 화려한 색상으로 구성하는 식이다. 상품 슬라이드 편집뿐 아니라 상품이 한국인 체형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리터칭으로 의류들의 길이, 폭, 색 등을 조절하고 제안하는 역할까지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MD와의 긴밀한 업무 협조가 요구된다.두산오토 창립 멤버로 현재 5년째 패션 부문을 총괄하는 정과장은 패션디자이너 출신. 통신판매 업계에선 보기 드문 경우다. 그는 요즘 2002년 가을 가탈로그를 마치고 2003년 봄 시즌을 준비 중이다.“시즌에 앞선 카탈로그를 준비하자면 세계 패션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카탈로그가 출시되기 10개월 전에 다음 시즌에 선보일 샘플을 유럽의 의류회사에서 받아 한국인의 체형에 맞도록 제작하고, 모델들이 직접 입어보도록 해 최종 상품을 고른다. 고객들의 손에 전달되는 카탈로그로만 상품을 팔아야 하므로 같은 상품이라도 모델의 표정과 포즈 등이 실제 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진 한장 한장까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고객의 니즈를 적극 반영한 ‘살아있는’ 카탈로그를 만들어야 한다고 정과장과 배대리는 입을 모은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