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창구마다 투자자들로 북적북적...주식형 펀드에도 돈 몰려
3월 21일 목요일 오전 10시 삼성증권 서초지점. 입출금 업무와 투신상품 상담 등을 하는 1층은 은행에 비해 그리 번잡한 편은 아니지만 최근엔 번호표를 뽑고도 30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아졌다.우승택 서초지점 지점장은 “올들어 주식을 사기 위한 입금액이 상당히 늘었다”며 “하지만 5억원 이상을 은행에 예금한 ‘큰손’의 움직임은 아직 둔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그동안 경기회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주가지수가 올랐다고 생각한 ‘큰손’들이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다가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는 뜻.우지점장은 “대선, 월드컵이 있다고 주가가 오르리란 단순한 생각으론 그들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며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는 지수인 1,100에서나 그들이 뛰어들 것”이라 전망했다.2층엔 20여명이 의자에 앉아 벽 한면을 채우고 있는 주식시세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자 뒤로는 단말기로 시세를 확인하는 10여명의 사람들이 키보드를 쉼없이 눌러댔다. 이들 고객수는 지난해에 비하면 두 배 정도 많은 숫자다.10시 40분쯤. 의자에 등을 파묻고 시세판을 지켜보던 투자자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TV에서 ‘미국 주식형 펀드 2월 116억달러 순유입’이란 ‘호재’가 나온 것. 고개를 끄덕이며 해설을 듣던 투자자들은 옆자리 사람들과 뉴스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그때 컴퓨터로 종목 시세를 확인하던 30대 여성 투자자가 근처 주식영업직원에게 소리친다. “엔지니어링!” 전일 판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가 매도했던 가격보다 더 올랐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듣고 영업직원은 “종합지수가 오르는건 기술적 반등으로 보이는데, 조금 오른다고 따라 사지 말고 조정받아 주가가 떨어지면 그때 사시죠”라고 대답한다.이 여성 투자자와 대화를 나누던 몇 분동안에도 직원의 전화벨은 계속 울려댔다. 앞자리에 앉은 40대 투자자는 주문지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업직원은 “요즘 들어 주식에 대한 문의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특히 주가지수가 요동칠 땐 점심도 못 먹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지난해 10월 주가지수 490 선에서 6개월 동안 별다른 조정 없이 꾸준히 올라 900 선에 이르는 요즘, 객장에서도 ‘스타’ 투자자가 속출했다. 서초지점에서 만난 40대의 한 남성 투자자는 “불과 몇 달 만에 따따블(3배)이 난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투자자들도 높은 수익률을 자랑한다. 객장 단말기에서 시세를 확인하던 30대 직장인은 “1,00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평가금액이 1,350만원”이라며 “객장에 사람이 가득 차면 주식을 다 팔 생각”이라고 밝혔다.새로 주식투자를 하는 ‘개미’들이 많을 때가 ‘상투(팔아야 할 때)’라는 논리다. 서초지점에서 아침부터 오후 세시까지 ‘상주’하는 투자자는 지난해만 해도 15명 정도. 그러나 주가가 급등할때는 금세 40~50명의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투신사 지점도 요즘 늘어나는 고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동양오리온투자신탁 목동지점에서 만난 30대의 여성 투자자는 “투신사는 오늘이 처음”이라며 “은행금리가 너무 낮아 주식형 상품에 가입하러 왔다”고 밝혔다. 민경건 지점장은 “올해 들어 주식형 펀드 가입이 전년에 비해 세 배 정도 증가했다”며 “주가지수가 조정을 받으면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대기자금도 많다”고 귀띔했다.인근 한국투자신탁 목동지점의 30대 여성 투자자도 낮은 은행금리에 실망해 투신사를 찾은 케이스. 이 투자자는 “열흘 전 1,000만원을 주식형 펀드에 넣었는데 오늘까지 100만원이 불었다”며 “대우채 문제로 손실을 봐 투신사펀드는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앞으로는 투신사를 계속 이용할 계획”이라고 즐거워했다.요즘 투신사엔 이런 ‘개미투자자’의 주식형 펀드 가입이 많다. 한투 목동지점만 해도 올해 들어서만 주식형 펀드에 54억원이 들어왔다. 처음으로 투신사를 이용하는 투자자의 비율도 높다. 그렇다고 모든 투자자가 주식형에만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채권편입비율이 높은 채권혼합형 상품엔 올들어 105억원이 들어왔다. 박원현 지점장은 “지난 99년 수익증권에 가입하고 환매하지 않았던 손님들이 원금이 회복되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전화가 많다”고 소개했다.그렇다면 간접투자를 하면서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수익률은 얼마 정도일까? 이경한 대한투자신탁증권 영업부 부부장은 “예전엔 대박을 노리고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는 투자자가 많았지만 요즘은 채권형은 7%, 주식형은 10% 정도 수익을 노리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종합주가지수는 급등했음에도 상승에서 ‘소외된’ 개인투자자도 많다. 객장에서 만난 40대 남성 투자자는 “장기투자를 했어야 했는데 자주 샀다, 팔았다를 거듭하니 남는 게 없다”라고 털어놓았다.대우증권 목동지점에서도 이런 투자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지점을 이용하는 40대 여성 투자자는 “요즘 약간 수익을 올려 IMF 외환위기 때 잃었던 1억 2,000만원 가운데 2,000만원을 복구했다”며 “하지만 그래프 분석만 하다 보니 내수관련주가 오를때 수익을 못 올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종합지수가 950까지 오르면 다 팔아버릴 생각”이라며 “애널리스트들이 추천하는 종목들이 수익률이 좋은 듯해 그쪽에도 조금씩 관심을 둘 계획”이라 덧붙였다.뚜렷한 목표수익률을 갖고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가 많아지는 것처럼 증권업계 사람들도 지금껏 올린 인센티브를 보존하는 데 여념이 없다. 흔히들 주가지수가 1,000에 육박하면 여의도 증권가 사람들이 ‘두둑한’ 인센티브를 받으며 인근 유흥업소도 호황을 누릴 것이라 생각한다.그러나 여의도 모 증권사 지점장은 “증권사 직원들이 예전엔 지점 경비로 룸살롱 등을 자주 드나들었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다”며 “돈 벌었다고 흥청망청 쓰기보단 돈을 모으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여의도 R룸살롱 주인도 “손님이 늘긴 했지만 예약을 안 해도 자리는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