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4월 4일 발표한 ‘3월 중 금융시장동향’에 따르면 올 들어 3개월 동안 가계대출의 증가규모는 17조 4,000억원에 달했다. 하루평균 2,000억원씩 늘어난 셈이니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다. 또 지난해 12월말 현재 개인이 일반대출이나 신용카드, 할부금융 등 여러 형태로 금융기관에서 빌려쓴 금융부채는 341조 7,000억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97년 말의 211조 2,000억원에 비해 60% 이상 증가했다.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가계부채는 올해말 430조원을 넘어서고 2년 뒤에는 500조원 선에 접근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씀씀이가 커진 탓이다. 최근 미국의 시사주간지 은 한국의 경기부양은 소비가 늘어난 덕분이라는 기사를 쓴 일이 있다. 실제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개인들의 소비나 투자가 경기를 지탱했다. 그러나 가계대출의 증가는 금리가 급상승할 경우 위기의 원인이 된다.금리가 갑자기 오른다면 335조원의 가계여신 중 신용이 가장 취약한 신용카드 대출에서부터 연체가 발생해 다른 부분으로 파급될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오피스텔이나 아파트 분양업체가 중도금 대출을 알선해 주면서 이자를 대납해 왔다. 금리가 오르면 이들도 직격탄을 맞는다.가계대출이 위험수위라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면서 신한은행이 부동산담보대출 비율을 72%로 떨어뜨렸다. 즉 예전처럼 담보율이 85%였을 때라면 시가 1억원짜리 부동산을 담보로 8,5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7,200만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자산관리 시대에서 부채관리 시대로정부가 최근 1∼2년 사이에 금리를 한 자릿수로 떨어뜨린 것은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주택, 주식 등 자산가치의 상승은 경기를 회복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부자가 됐으므로 더 쓴다’는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따라 소비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품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자산가격 상승이 담보가치를 증대시키면서 대출이 증가하고 다시 자산수요가 증대되는 순환고리가 생기면서 거품이 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출자금으로 자산 불리기를 하다 이자를 더 내야 하는 때가 되면 부채가 많은 저소득층의 경우 빚이 빚을 낳는 ‘빚의 덫’에 걸려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로서야 경기가 살아나 다행이겠지만 경기부양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개인이 부채부담에 시달리다 파산 등으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면 경기부양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이라 할 수 있다.신용카드 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특히 20, 30대 젊은 층의 카드 빚이 심각하다. 무분별한 소비 행태로 늘어가는 카드 빚은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다각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부채의 부담이 개인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에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최근 은행강도 등 강력사건의 범인들은 대부분 카드 빚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서 털어놓았고, 지난 3월말 부산에서는 20대 딸의 카드 빚 때문에 아버지가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신용불량자 280만명 중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가 105만명으로 전체의 37%나 차지하고 있다는 자료만 봐도 카드부채는 만만치 않은 문제다.빚을 조금 졌을 때는 어떻게든 빚을 갚으려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신용카드를 10장씩 가지고서 매달 근근히 결제하는 빚이 300만∼400만원에 이르게 되면 그때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서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하기가 쉽다.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만약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면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빚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개인이 자신의 재정상태에 대한 진단과 부채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전문가들은 우선 재정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재정 문제와 관련해 장단기 계획을 세우는지, 또 부모나 가까운 다른 사람들 중에 재정 문제에 대한 행동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중독성이거나 낭비적인 소비행위를 하지는 않는지도 한번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경제적 우선순위를 제대로 잡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스스로 ‘저축과 소비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자문해 보고 자신의 순자산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만약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면 카드마다 연회비가 얼마이고 이자율이 어떻게 되며 연체료가 있음을 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이처럼 포괄적인 부채관리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난 뒤 좀더 구체적으로 빚 관리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자산 운용에서 “빚을 순자산의 30% 이하로, 대출상환액(원금+이자)은 연간 소득의 30%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샐러리맨들은 이같은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요즘처럼 경기회복 초입에 서 있다 보면 30% 이하의 부채비율을 유지하기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평균적인 샐러리맨이 집 하나만 장만해도 부채비율이 30%를 훌쩍 넘긴다. 또 부양가족이 있는 직장인들은 대출상환금 규모를 30% 수준으로 잡기가 쉽지 않다. 연간 소득 중 적게는 70%에서 많게는 90%가 생활비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30%의 황금률을 지킬 수 없다면 내집 마련 시기도 미루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거품논란이 일고 있을 때엔 대출자금으로 고정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하지만 아무리 궁리해 봐도 대출을 꼭 받아야 할 상황이라면 금융기관의 PB(Private Banker)들이 사용하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꼭 염두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우선 대출의 용도가 적당한지 따져야 한다. 대출 용도가 주택구입 등 꼭 필요한 자금에 사용되는지, 아니면 주식투자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용인지 검토한다. 투자목적성 대출일 경우에는 대출이자 대비 투자에 대한 실제수익이 얼마나 될 것인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두 번째는 상환계획이 적절한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순소득 또는 총소득 대비 월부채 상환능력을 계산해 보고 부채에 대한 원리금 부담을 하고도 생활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또 대출금이 만기가 지났거나 지체된 경우에는 연체이자가 적용되므로 스스로 대출금의 만기관리도 해야 한다.그 다음으로 현금흐름의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예금이나 적금대출인 경우는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예적금과 대출을 연동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나 적금의 경우 단지 수익률의 개념인 반면 대출의 경우 매달 현금지출 흐름이 발생하므로 이중의 지출부담을 갖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전문가들은 그래서 단기부채부터 갚고 부채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밖에 대출을 받을 금융기관과 대출방법, 그리고 이자율도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돋보기 금리 전망박승 한은 총재 ‘5월중 인상’시사최근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금리인상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이미 시장금리는 상당히 올랐다. 장기금리 지표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연말에 비해 1.5%포인트 오른 6.5%대에 진입한 상태다. 관심을 모으는 것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지표금리인 콜금리. 콜금리는 지난해 10월 이후 4%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 취임 후 처음으로 4월 4일 열린 금통위를 주재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각 경제주체들은 금리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해 금리를 조만간 올릴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민간섹터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장 강력하게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쪽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버블이 본격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금리인상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2∼3개월은 걸리는데 실물경기에서 거품이 확인된 뒤 행동에 나서면 이미 늦다는 설명이다.물론 금리인상에 반대하는 쪽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자료에서 우리 경제에 아직 디플레이션 갭이 존재하는 데다 3분기쯤에야 수요 초과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므로 금리를 인상할 시기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통화당국 내부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온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아직 수출이 본격 회복되지 못했고, 가동률이 8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을 두고 과열 운운할 수 있겠느냐”며 “경기에 대한 판단을 차근차근 치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또 “최근 시장금리가 오른 건 머니게임 때문”이라며 “금리를 섣불리 건드리면 기업의 투자가 다시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거시경제를 주관하는 재경부도 입장이 확고하게 서 있는 것 같지 않다. 진념 부총리는 3월말 한 방송에 출연해 “가계대출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카드회사에 은행 수준의 충당금을 쌓는 쪽으로 규정을 개정했다.금리가 오르면 당장 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한데 인상 여부와 시기는 아직 안개 속이다. 결국 5월 초에 열리는 금통위 정례회의 결과가 향후 금리운용의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