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이중으로 복사해두는 BC전도사

스토리지 전문업체인 한국EMC의 통합마케팅부를 이끄는 김경진 상무(45)는 지난해 9·11 테러사태 직후 한동안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꿈 속에서 한국EMC 본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이 항공기 테러로 무너져 내리는 끔직한 일을 매일 새벽 치르며 가위에 눌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김상무의 걱정은 온통 사내 시스템에 있었다.그동안 쌓아두었던 산더미 같은 고객데이터가 한순간에 폭염 속으로 사라질 판이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정보관리 인프라를 자랑하던 세계적인 기업인 EMC도 막상 자사 건물이 붕괴되고 나니 속수무책’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가까스로 잠에서 깨곤 했다.“이런 일은 꿈 속에서나 가능할지 모르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EMC는 업무가 중단되지 않을 만큼 탄탄한 정보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습니다.”어쩌면 그의 이런 악몽은 테러 이후 생긴 노이로제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정보가 한순간에 날아가버리고, 업무가 중단돼 회사가 망하는 위기가 일어날 리 없다는 ‘불감증’보다는 차라리 이런 노이로제가 낫다는 것.우리나라는 정보기술(IT)의 발달 속도에 비해 재해복구 시스템은 한참 뒤처져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거의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화하면서 대부분의 정보관리를 IT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기업들은 한 곳에 쌓아둔 방대한 데이터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위기에 항상 노출돼 있는 거죠.”중단없는 업무(BC)를 위해선 더 늦기 전에 재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복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요즘 ‘BC전도사’를 자처하며 기업들을 설득하고 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경영자는 물론이고 기업내 시스템 관리 담당자들조차도 BC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 개념과 중요성을 알고 있어도 비용 부담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고 있습니다.”국내 24개 기업에 복구시스템 구축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CEO의 딜레마다. 그러나 금융 같은 기간산업에서 업무중단 사태가 발생할 경우엔 언제까지나 돈 핑계를 댈 수는 없다고 그는 지적한다.현재 EMC는 국내 재해복구 시스템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했다. 국내 9개 은행과 증권거래소, 증권사, 카드사 등을 비롯해 3대 이동통신사와 한국전력, 포스코, 대우자동차, 삼성반도체 등 모두 24개 기업에 자사 재해복구 시스템인 ‘SRDF’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장애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근거리 또는 원거리에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이중화한다고 그는 설명한다.여기에 신속하고 종합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기존 재해복구 시스템 전담팀까지 뒀다.재해복구 시스템 구축은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는 만큼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그가 강조하는 재해복구 시스템과 업무 연속성은 개인업무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가 가입한 종신보험 역시 업무 연속성과 무관하지 않다.지난 94년 환전해둔 7,000달러를 9년째 지니고 있는 것도 비상시 쓸 위기관리용 화폐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통장, 카드를 비롯해 각종 계약서까지 모든 개인정보 데이터를 2중, 3중으로 복사해 각각 다른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 역시 분실시 거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만의 복안이다.“업무의 연속성은 한마디로 기업의 생명입니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간 ‘가래로도 못 막을’ 재난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기업 투자의 가치를 무엇에 둘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한다는 김상무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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