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T 조사기관 가트너 그룹에 따르면 세계적인 저장장치업체 EMC, 글로벌 컴퓨터 제조업체 IBM, HP 등 미국내 400대 상위기업 중 50%가 SAN을 구축한 데 이어 나머지 28%의 기업도 곧 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과 한국통신 등 국내 대기업, 유럽과 아프리카 기업들까지 SAN을 구축하는 등 이 바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이같은 수요를 바탕으로 가트너 그룹은 “2005년 SAN 시장 규모는 170억달러가 된다”고 예측했다. 지난해 10억달러였던 시장이 4년 뒤 무려 17배가 커진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관련 업체들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태다. SAN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법석을 떨고 있는 것일까.SAN의 핵심은 파이버채널SAN이란 서버와 스토리지를 전용 네트워크로 묶어 스토리지에 담긴 데이터를 관리하고 보호하는 아키텍쳐다. SAN의 핵심은 광섬유(Fiber Channel)로 연결된 망과 이를 지능적으로 관장하는 스위치다. 파이버 채널은 전체 데이터를 프레임(Frame)으로 나누어 전송, 네트워크 부하를 최소화한다. 서버를 통해 갑자기 많은 정보가 들어와도 시스템 전체가 다운되는 일이 없다. 또 광섬유이기 때문에 어떤 선보다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스토리지의 CPU(중앙처리장치)로 불리는 스위치는 스토리지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지능적으로 데이터를 관리한다. 분산된 스토리지를 중앙 집중화함으로써 관리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총소유비용(TCO:Total Cost of Ownership)을 절감하고, 투하자본수익률(ROI:Return on Investment)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또 SAN을 구축해 급격한 데이터 증가를 흡수하며, 백업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장점이 있다.이같은 장점 때문에 지난해 미국 테러 사건 이후 SAN 시스템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전엔 서버와 스토리지를 랜(LAN)으로 연결한 NAS(Network Attached Storage)라는 시스템이 고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시스템의 장점은 고가의 스위치 장비를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반면 단점은 막대한 양의 정보가 서버를 통해 유입될 때 스토리지에서 정보를 꺼내거나 이를 백업 시스템으로 연결시키는데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SAN이 병렬 연결 시스템이라면, NAS는 직렬 연결인 셈이다.SAN 시스템이 특히 최근 들어 돌풍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미국 기업들의 비용 문제와 관련돼 있다. 지난 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 미국 기업들은 서버와 스토리지 등 IT 장비 구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투자 대비 수익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장비를 사들였다. 그러나 지난해 미국 경기가 하락하면서 기업들은 IT 장비 구입에 투자할 자금을 대폭 줄였다. 투하한 자본이 확실하게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틈타고 SAN 관련 업체들은 ROI가 높다는 점을 무기로 약진하고 있다.미국 산호세(San Jose)에 위치한 브로케이드(Brocade)는 SAN 시스템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다. IT 업계의 변화를 감지하고 앞서나간 이 업체는 지난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이 업체는 5억 1,000만달러(6,600억원) 매출을 올려 6,700만달러(871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 회사가 쏟아붓는 연구개발비는 전체 매출액의 20%(1억달러)에 이른다. SAN 장비업체로 세계적인 주도권을 쥐겠다는 야심에 찬 발상에서 아낌없는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회사는 파이버 채널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전세계 16개의 주요 SAN 기술 표준 중 13개를 보유했다. 이처럼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영업으로 브로케이드는 SAN 시장에서 90%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브로케이드 SAN 시장 90% 점유이 회사의 또 다른 경쟁력은 시장에서 OEM(주문자생산방식) 업체로 입지를 굳혔다는 점이다. EMC, 오라클, HP, 컴팩, IBM 등 세계적인 정보통신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마이클 버드(Michael Byrd) 브로케이드 사장(COO)은 “SAN을 구축할 경우, ROI가 300∼500%까지 높아진다는 사실을 우리 파트너들이 인정하고 있다”며 “브로케이드 제품이 경제성과 효율성에서 최고의 제품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파트너들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지난해 6월 설립된 한국 브로케이드 역시 국내 SAN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통신, SKT, 두루넷 등 통신업체들과 금융기관 그리고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박준모 한국 브로케이드 사장은 “SAN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스토리지 효율을 30% 이상 향상시킬 수 있으며, 전산 시스템을 중단시킬 일이 없어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브로케이드가 하드웨어로 SAN을 구축한다면 레가토(Legato)는 소프트웨어로 이를 구현하고 있는 업체다. 레가토 또한 브로케이드와 함께 SAN 인프라 구축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며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 회사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마운틴 뷰(Mountain View)에 있는 레가토는 백업 솔루션인 레가토 네트워커와 고가용성 솔루션인 레가토 클러스터 램(LAAM) 등 두 가지를 생산한다. 고가용성(High Availability)이란 예상치 못한 장애가 발생했을 때 재빨리 시스템을 복구하는 능력을 뜻한다.이 회사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의 강점은 하드웨어 플랫폼별로 호환성과 안정성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미국 1,000대 기업 중 90%가 레가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9·11 테러 사건 때 레가토는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했던 수많은 고객들의 데이터를 복구했으며, 파괴된 메릴린치 증권의 전산 시스템을 30분 만에 완전히 복구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한국 레가토(대표 전완택)는 삼성전자, 한국통신, 데이콤, 하나은행 등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으며 고가용성 클러스터 시장의 80%, 백업 소프트웨어 시장의 30%를 차지한다.레가토 코리아는 미국 본사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지사다. 지난 5년 동안 매출 성장률이 평균 80%에 달해서다. 게다가 총 8명의 직원으로 지난해 12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직원 평균 매출액도 높다. 이는 마진이 높은 직판체제를 포기하는 대신, 기술력이 우수한 국내 업체들을 적극 활용해 효율적으로 시장을 개척한 결과였다.미국 본사가 이같은 한국의 채널영업을 벤치마킹해 요즘 북미 지역에서 이를 응용하고 있다. 데이비드 비머(David Beamer) 레가토 부사장(COO)은 “한국지사가 채널을 통해 영업에 성공했다는 점에 고무돼 본사에서도 그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며 “지난해 초부터 금융기관, 기업 등 고객들에게 직접 판매하지 않고 EMC, HP 등 파트너들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레가토는 세계적인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으로 마케팅 정책을 펴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좀더 적극적으로 이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버와 스토리지 그리고 스위치 장비를 구축해 놓고 24시간 레가토의 시스템을 적용시켜 효율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레가토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업들이 갖춰놓은 장비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 데이터를 들고 파트너들을 설득하는 것이다.예컨대 레가토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경우 1테라바이트(TB)를 단 1시간 만에 백업할 수 있다. 1테라바이트는 도서관 몇십 곳에 보관돼 있는 책을 전부 합한 양이다. 세계적인 스토리지 업체인 EMC와는 제품 개발 초기부터 함께 참여하는 등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INTERVIEW/ 그렉 리 브로케이드 회장“가정에도 SAN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그렉 리(Greg Reyes·38) 브로케이드 회장을 만나기 위해 미국 산호세 본사를 방문한 날, 500여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줄을 지어 회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브로케이드 직원들의 자녀였다. 부모가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회사인지 알려주기 위해 특별히 초청됐던 것이다. 가정내 아이들까지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이처럼 초등학생까지 회사로 초청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앞으로 SAN 시스템을 가정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그렉 리 회장의 야심 때문이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데이터는 백과사전 등 대규모 활자 데이터뿐 아니라 동영상, 사진 등으로 늘어날 것으로 그는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거실에도 스토리지가 보급되고 자연스럽게 SAN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다. 아이들의 입에서 SAN이란 얘기가 나온다면 그것만큼 좋은 홍보 전략은 없는 셈이다.그렉 리 회장은 CEO로서의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적합성(Aptitude), 몸가짐(Attitude) 그리고 효능(Efficacy) 등 ‘2A’와 ‘1E’로 요약된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적합성은 회사의 비전을 세우고 그에 따른 전략을 실행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나는 5년 앞을 내다보며 전략을 수립하고 분기별 실천사항을 체크합니다. 비전은 쉽고 실행은 어렵다(Vision is easy, Execution is difficult)는 말이 있어요. 실행계획이 없는 비전은 판타지와 같습니다.몸가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굉장한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효능은 자신의 과거 경력을 현재 하는 사업에 잘 버무리는 능력을 뜻합니다. 나는 과거 다양한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세일즈맨, 데이터 시스템, 무선사업 부문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이런 경력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