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셀 코리아(Sell Kor ea)’ 대세인가

외국인 투자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증시는 물론 경제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상장주식의 36%를 보유하고 있으며, 서울파이낸스센터 등 도심의 고층빌딩을 대거 사들여 한국의 자산시장에 ‘큰손’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지난 4월 4일 신한금융지주회사는 굿모닝증권의 대주주의 지분을 30% 인수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형 M&A(기업합병인수)가 발표되자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증권업계 빅뱅’이 시작됐다는 점에만 주목해 앞으로의 합병지도가 어떻게 그려질지에 대한 논의만 분분했다.그러나 4월 8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면서 증권업계 주변에서는 이번 합병건이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 자본들이 이익실현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일단 이번 거래로 굿모닝증권의 외국 대주주들은 굿모닝에 투자한 지 3년여 만에 무려 4,300여억원의 차익을 남기게 됐다. 투자수익률은 450%에 이른다. 굿모닝증권의 대주주는 미국계 투자펀드인 H&Q(현재 지분율 16.0%)와 캘리포니아연기금 운용사인 롬바르도(10.7%), 싱가포르투자청(GIC, 8.8%) 등으로 지난 98년 963억원을 들여 쌍용그룹의 쌍용투자증권을 인수해 이름을 바꿨다.한 주당 인수가격은 1,250원이었다. 이번 거래에서는 주당 7,200원에 지분 30%를 신한지주에 넘겨 3,800억원 이상을 챙기고도 5.48%(984만주)의 지분은 남겨두게 된다. 물론 이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단기간에 투자수익을 노리는 소위 사모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 :PE)여서 이미 이탈할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예상 밖의 고수익이었다.4월 4일에 이어 11일에는 또 다른 대형 합병추진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에도 신한지주가 추진하는 합병건이었다. 신한지주 최영휘 부사장은 이날 “JP모건을 자문사로 선정해 한미은행 대주주 컨소시엄과 합병에 대해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인수가격이 합병의 가장 큰 이슈라고 밝힌 만큼 협상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시점에서 봐도 한미은행의 대주주인 칼라일펀드는 남는 장사를 했다.지난 98년 한미은행 지분 중 40%를 살 당시 주당 6,800원에 매입했기 때문에 지난 11일 종가 1만 2,000원대를 기준으로 해도 두 배 가까이 이익을 올린 셈이다. 칼라일은 내년 11월까지 지분매각이 제한돼 있지만 합병이 완전히 성사될 경우 보통 합병시 시가에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현실을 감안하면 칼라일이 벌어들일 수익은 그 이상이 될 전망이다.굿모닝증권과 한미은행에 앞서 ‘대박’을 터뜨린 뒤 우리나라를 이미 떠난 외국 투자자들도 많다. 먼저 한국을 떠난 이들은 몇천억 원대의 자금을 불과 3년여 만에 몇조 원대로 불렸다.예컨대 하이트맥주의 최대주주였던 캐피털인터내셔널은 지난 98년 3,000만달러를 투자해 무려 9배의 이익을 챙겼다. 이 펀드는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낯선 개념이었던 신형우선주(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를 인수하는 등 선진투자기법을 십분 활용했다.H&Q 투자수익 5배KTF에 합병돼 사라진 한솔엠닷컴에 투자했던 미국 AIG컨소시엄도 5배의 투자수익률을 올렸다.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이 큰 수익을 올렸다고 해서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98년은 나라가 부도날 지경까지 몰렸던 시기인데 투자해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문제는 앞으로다. 98년을 전후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지분을 팔고 떠난다면 한국 경제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 증시 일각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어떻게 탈출할 건지에 대한 방법 모색이 끝났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실제로 제일은행의 대주주인 뉴브리지도 호시탐탐 매각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부터 경영을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닌 만큼 언젠가는 나갈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최근 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지난해 11월 호리에 행장을 전격 교체한 것도 합병작업이 지지부진한 데 따른 문책이라는 분석이 뒤늦게 나오고 있다. 즉 제일은행의 대주주들은 앞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원매자가 나타났을 때 지분을 털려고 했지만, 합병협상이 노조의 방해 등 여러 이유로 잘 진척되지 않자 은행장을 갈아치웠다는 후문이다.이밖에도 국민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만삭스도 지분 중 99년에 투자한 지분을 팔아 이익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분 매각은 해외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일종의 공모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거래가 성사될 경우 최근 국민은행 주가를 감안하면 주당 4만원, 모두 6억달러에 달하는 차익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LG카드의 지분 20%를 보유한 워버그 핀커스도 LG카드가 상장을 앞두고 있어 대박을 예감하고 있다. 핀커스는 지분 일부를 해외 투자자에게 매각하기 위해 대상을 물색 중이다.일단 최근의 주식매각은 투자목적의 펀드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Sell Korea’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모건스탠리 서울사무소 양호철 대표는 “외국인들이 본격 이탈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펀드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양대표는 그러나 “한국경제가 현재 고비에 서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낙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아직까지 외국인들의 움직임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지난 88년 버블붕괴 이후 10년 이상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마냥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지난 87년 말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이 조금씩 주식과 부동산을 팔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 경제계 관계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의 뮤추얼펀드인 피델리티펀드가 철수하자 상황이 달라졌다.당시 피델리티펀드는 ‘도쿄의 사무실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어 철수한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일본의 자산시장이 고평가됐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피델리티 철수 시기를 즈음해서 주가지수선물과 관련된 규제조치를 해결해 달라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을 일본 정부가 거부하자 외국인들의 탈출은 시작됐다.당시 버블논쟁이 붙을 정도로 일본 경제에 유동성이 풍부했던 만큼 외국인들이 판 주식이나 부동산은 모두 일본의 개인과 기업이 사줬다. 이런 과정을 겪은 뒤 찾아온 자산가치 폭락사태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릴 정도로 경기침체에 시달린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지난 4월 10일 외국인들은 서울 증시에서 삼성전자를 필두로 대거 주식을 매도, 종합주가지수는 32포인트나 폭락했다. 올 들어 2조 6,000억원 이상 주식을 내다판 외국인들은 이날 올 들어 가장 많은 3,288억원치나 팔아치웠다.일본 사례 잘 새겨봐야이와 관련, 증권가 일각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정치변수에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최고의 매도공세를 펼친 4월 10일 외국계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는김대중 대통령의 건강이었다.이날 오전 청와대가 김대중 대통령의 입원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외국계가 투매에 가까운 매도세를 보인 것이다. 만일 김대중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돼 정상집무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향후 한국의 경제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일단 매도해둔 뒤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시장주의 경제정책을 신뢰하고 있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긴장이 완화되면서 한국의 국가위험도가 낮아진 대목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여부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최근 문을 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주영 소장(37·한누리법무법인 공동대표)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명성을 가장 중요한 투자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소장은 “지난 3월 국민은행이 금융감독원에서 내려보낸 낙하산 인사를 복수감사제 채택으로 사실상 거부한 점을 외국인들은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최근 외국인들의 움직임이 투자를 목적으로 들어온 자금들이 투자처를 옮기는 현상에 그친다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일 한국의 미래에 대한 의문 때문에 탈출준비를 하는 징조라면 긴장해야 할 일이다.우리나라의 상황이 지난 86년 영국에서 있었던 ‘금융 빅뱅’의 시기와 유사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86년 이후 영국의 런던은 유럽의 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금융시스템을 글로벌 체제로 개편하고 시장을 개방한 결과 현재 런던은 ‘영국의 런던’이 아니라 ‘유럽의 런던’이 됐다.대처수상이 주도했던 금융 구조조정 및 개방작업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의 런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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