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통째 넘겨받아 … ‘톱10 목표’

일본 폴라, 매출 급속하락하자 제안 … 패션·레포츠 연계 방안도 ‘구상 중’

코오롱CI(대표 나종태)가 4월 초부터 2년 동안 일본계 화장품회사 한국폴라의 경영을 맡았다. 국내 대기업 계열사가 외국기업의 한국법인 경영을 통째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 화장품업계 최초인 것은 물론, 오래 전부터 체인 경영 형태의 경영 아웃소싱을 도입해 온 호텔업계나 외국기업의 한국 진출 전략 수립에 일정기간 참여한 일부 컨설팅 업체의 경우를 제외하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코오롱CI는 코오롱상사의 기업 분할에 따라 지난해 12월 설립된 회사로, 유망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및 기업을 대상으로 한 컨설팅 비즈니스를 주업무로 삼고 있다. 이번 경영 아웃소싱은 코오롱CI 출범 이후 가장 큰 프로젝트에 속한다.진출 16년, 국내 위상 급속 하락코오롱CI의 한국폴라 위탁경영 배경에는 국내 화장품시장 경쟁 격화와 한국폴라의 지속적인 매출 하락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지난 86년 일본 폴라화성공업과 50 대 50의 지분 구조로 한국에 진출한 폴라는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고급 화장품 전략을 펴며 선전했다. 당시는 해외 유명브랜드들의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데다 일본풍 광고 등 독특한 마케팅 전략으로 연 4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하지만 IMF 경제위기를 전후해 유명브랜드가 속속 상륙하고 국내 화장품기업의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매출이 급속히 하락, 최근 3년 동안은 연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 실적에 그쳤다.브랜드 인지도 역시 눈에 띄게 낮아져 ‘고급 화장품’에서 ‘동네 화장품 가게용’으로 전락했다는 게 중론이다. 태평양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국내 대형 화장품 메이커들 가운데 폴라를 경쟁상대로 보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해외 유명브랜드 또한 한국에서의 폴라를 ‘하위권’으로 인식하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상황이 이쯤 되자 일본 폴라 본사는 위기를 절감하고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브랜드 위상 하락이 일본 등에도 미칠 가능성이 큰 데다 만성 적자의 조짐마저 보였기 때문. 반면 일본 시장에서 폴라는 시세이도, 가네보 등 톱 브랜드에 근접한 가격과 품질 전략으로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다.“유통망·매출구조 재건하라”이 과정을 통해 일본 폴라가 선택한 기업이 코오롱CI. 패션, 화학, 의약품 등 화장품과 깊은 관련이 있는 사업 분야에서 노하우를 확보한 점을 감안해 먼저 제안을 했다는 후문이다. 위탁경영 계약을 통해 코오롱은 기간 중 순이익의 30%를 가져가며, 적자시에는 별도의 규정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이번 아웃소싱 계약은 한국법인을 배제한 채 일본 폴라와 코오롱CI가 직접 체결한 것으로, 기존 한국법인 경영진에 대한 ‘문책성 조치’ 성격도 띠고 있다.한국폴라는 지난 3월 28일 주총을 통해 위탁경영을 의결하는 한편, 일본 폴라의 지분을 50%에서 57%로 높였다. 일본 폴라의 한국시장 재건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더불어 경영진도 교체했다. 한국폴라 사장으로는 코오롱상사 마케팅 실장 출신의 박찬열씨(53)가 취임했다. 박사장은 76년 코오롱에 입사해 의류 영업과 마케팅, 스포츠사업 등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코오롱상사의 브랜드사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안정적인 수익기반으로 전환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박사장은 “우선 한국폴라 기업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벤치마킹 대상과 경쟁업체를 설정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유통현장과 경영진의 의사소통이 빠르게 진행되는 스피드 경영을 추구, 짧은 시간 내에 리노베이션과 재도약을 이루겠다”고 밝혔다.반면 기존의 한국폴라 대표 다카야마 오사무 사장은 공동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2000년 7월부터 경영에서 손을 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던 한국법인 설립자 이청승씨는 3월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일반주주로 변경됐다. 또 이청승씨가 보유하고 있던 25%의 지분 가운데 7%는 일본 폴라로 넘어갔다.고품질·고가제품 방판 전략 ‘준비 중’코오롱CI는 위탁경영에 착수하면서 폴라를 ‘국내시장 톱10의 화장품 메이커’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 폴라의 기술에 패션, 화학 등 유관 사업영역에서 쌓은 코오롱의 경영·마케팅 기법을 융합하면 못할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먼저 사업역량 재구축을 위해 유통망부터 손질할 계획이다. 화장품전문점을 통한 시판을 기본 유통망으로 유지하되, 최근 점차 확대되고 있는 방문판매 시장을 겨냥해 완전히 구분된 유통채널을 만든다는 전략. 또 고품질,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을 방문판매용으로 개발하고 전혀 새로운 모델의 방문판매 시스템을 병행한다는 포부다.특히 코오롱은 한국폴라 위탁경영을 통해 화장품 외 사업으로 확대를 구상하고 있다. 오랫동안 노하우를 쌓아온 패션 브랜드 사업과 골프장, 호텔, 스포렉스 등 레포츠사업을 화장품 사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돋보기 ‘경영 아웃소싱’ 도입 확산호텔·철강은 이미 ‘진행중’경영 전체를 통째 맡기는 경영 아웃소싱은 호텔 업계에선 일반화된 기법이다. 웨스틴 조선호텔의 경우 (주)조선호텔이 웨스틴에 위탁경영을 맡겼고 하얏트호텔은 미라마관광(주)가 하얏트에 경영을 맡긴 사례다. 또 힐튼호텔의 실제 경영회사는 (주)동우개발이며 르네상스호텔은 남우관광(주)가 라마다퍼시픽에 경영을 위탁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 58개국에 1,900여개 시설을 운영하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날은 서울 센트럴시티에 위치한 JW메리어트와 부산의 메리어트부산을 위탁경영하고 있다.호텔 업계를 제외하면 위탁경영은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시도된 게 대부분. 현대중공업의 삼호중공업 위탁경영이나 포철의 한보철강 위탁경영이 그것이다. 삼성물산도 지난 95년부터 5년간 카자흐스탄 정부의 의뢰로 동 제련소를 위탁경영한 바 있다.하지만 최근 들어서 국내 진출을 모색하는 외국기업이 국내 컨설팅 회사나 기업에 경영 아웃소싱을 제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경영 컨설팅 업체 맥세브는 지난해 일본의 제조업체 A사로부터 한국법인 위탁경영 제안을 받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내년 2월 한국에 본격 진출할 계획인 A사는 시장 조사, 진출 전략, 인사 및 조직 구축 등 경영 전반을 맥세브에 맡긴 상태. 컨설턴트가 소극적 조언자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 경영에 뛰어들어 자신의 이론을 실행에 옮기는 ‘경영 아웃소싱’의 한 사례다.맥세브 이장석 사장은 “영업, 물류, 연구개발 등 일부에 활용되던 아웃소싱 개념이 경영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인식이 국내에서도 차츰 싹트고 있다”고 밝히고 “CD&R, PWC 등 외국계 컨설팅사들은 경영 아웃소싱을 새로운 시장으로 보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작한 상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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