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기능 강조되며 시장 급팽창

지난 4월 2일 밤 11시. CJ39쇼핑의 여성속옷 브랜드 ‘피델리아’는 방송 2시간 동안 8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6월 출시된 이후 매회 방송마다 평균 5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보여왔던 것보다 3억원이 많았다. 식목일을 앞둔 밤 시간에 ‘피델리아’ 방송을 편성한 전략이 적중해 평소보다도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올해 CJ39쇼핑의 속옷 부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난 상태다.속옷시장에 거센 변화 기류가 일고 있다. 생활필수품 중 하나로만 분류되던 속옷에 패션과 기능성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발표한 ‘2001 의류소비실태’에 따르면 외의와 내의를 합한 전체 의류시장의 규모는 11조 8,000억원. 이 중 내의류 시장은 9,400억원으로 총 의류시장의 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 통계가 의미있는 이유는 경기 불황이던 지난해 상반기에 의류시장 전반이 2.1%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속옷시장은 18.8% 성장했기 때문이다.또 외환위기를 겪었던 IMF 관리체제 이후 속옷시장은 예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의시장의 빅3업체 BYC, 쌍방울, 태창 외에도 신규업체들이 대거 등장해 속옷 무한경쟁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삼성증권 투자정보팀 의복담당 장근난 연구원은 “현재 내의시장에서 BYC가 30%, 쌍방울이 3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며 “태창, 좋은사람들은 각각 10%, 신영와코르, 비비안, 신규업체들이 그 나머지인 20%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와 같은 시장환경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메이저 업체를 비롯한 신규업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신유통의 황태자로 떠오른 홈쇼핑의 경우, 유명 디자이너와 손잡고 속옷 PB(자사제품)를 내놓고 있다. 이른바 명품으로 분류되는 수입 브랜드들의 수입도 늘어나고 있는 상태. 또 각 업체들의 기능성 속옷 출시 바람도 시장을 확대시키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쌍방울은 1~2년 내에 해외 수입브랜드를 라이선스로 들여오는 방안을 현재 신중히 검토 중이다.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브랜드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쌍방울 마케팅팀 박현주 대리는 “알마니, 미쏘니와 같은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들까지도 속옷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라며 “해외 브랜드 수입에 대한 필요성이 신중하게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홈쇼핑은 그야말로 속옷시장에 불을 지핀 주인공. 디자이너 김정아, 하용수씨와 손잡고 ‘르메이유’라는 브랜드를 제작, 판매하고 있는 LG홈쇼핑의 경우 올해 속옷 부문 매출이 월 1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대비 약 40%가 늘어난 수치다. 홈쇼핑 업체들의 PB경쟁은 속옷의 명품추구 현상을 일으킨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달 CJ39쇼핑의 ‘피델리아’를 구매했다는 직장인 김주현씨(32)는 “평소 명품 속옷에 관심이 많았지만 가격대 때문에 엄두가 안났다”며 “명품 디자인이지만 수입브랜드들보다 저렴한 이 브랜드를 구입하고 나니 이런 화려한 디자인에 계속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기능성 속옷의 규모는 그 성장세가 더 급격하다. BYC, 좋은사람들 등의 회사는 옥, 쑥, 숯, 황토 등 각종 건강재료를 활용한 속옷을 속속 내놓고 있다. 비비안의 맞춤형 속옷 BBM의 경우, 제품을 처음 선보인 96년 이후 연평균 70%의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시장 규모 커져 양극화 현상 빚기도그러나 명품과 기능성 제품 바람은 시장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기도 하다. 중저가 제품을 다루는 대형 할인점에는 저가형 제품의 매출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롯데 마그넷의 언더웨어 담당 김희경 바이어는 “기존 메이저 내의업체에서 할인점용 브랜드를 따로 만들고 있으며 할인점이 주 납품처인 코튼클럽, 전방군제 등의 내의회사들도 있다”고 말했다.한편 패션의 강조는 비단 여성 속옷만의 동향은 아니다. LG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디자이너 하용수씨의 브랜드 ‘르메이유’는 남성을 타깃으로 한 명품 패션속옷이다. 이 속옷은 기존의 사각 트렁크가 아닌 스판 소재를 사용해 몸에 달라붙는 ‘드로우즈’라고 불리는 사각 팬티로 구성된 제품이다.이처럼 속옷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고은주 교수는 “속옷은 신체에 가장 가깝게 닿아 있어 건강과 관련이 높으며 신체가 가진 아름다움의 표현과 성적매력 추구도 동시에 가능한 아이템”이라며 “소비자들은 기능성 소재의 속옷으로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개성에 맞는 좋은 품질의 명품 속옷으로 자기 만족감과 자신감을 가지려 한다”고 설명했다. ‘패션은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표현한 고교수는 “현대사회에선 신체가 소비의 대상이며 자본으로 인식돼, 신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중요시된다”고 덧붙였다.60~70년대 히트상품 빨간 내복“첫 월급 탔습니다. 빨간 내복 사왔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취직 후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해 드리던 빨간 내복. ‘효의 상징’인 빨간 내복은 60~70년대의 히트상품이었다. 60년대 후반 백양(현재 BYC)이 개발했던 이 상품은 쌍방울, 신앙촌 등의 회사에서도 출시됐다. 그 당시 전체 내복시장에서 빨간 내복이 차지했던 매출비율은 50~60%에 이르렀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 흰색 옷을 즐겨입던 백의민족에게 내의가 흰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일깨워준 획기적인 제품인 셈이다. 왜 ‘빨간색’이었을까? 빨강은 전통적으로 정열, 광명, 전진 등의 의미를 지녀 주술적 용도에도 자주 쓰여왔다. 2002년 현재, BYC의 제품 중 컬러 속옷은 80%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빨간색 내복이 눈길을 끌었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사회 변천상을 속옷시장에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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