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에 기술·돈 들고 중관춘으로 집결

중화창업망(www.sonobit.com). 중국에서 유명한 IT(정보기술) 창업컨설팅 회사다. 흔히 ‘시노비트’로 통한다. 벤처 창업자와 투자자를 연결시키고, 창업 인큐베이팅 사업도 펼친다.이 회사의 CEO인 순엔쥔 사장. 그는 미국 미시건 대학 MBA 출신이다. 시티은행에서 근무하다 귀국, 지난 2000년 창업했다. 그와 함께 회사를 설립한 장레이 총재는 예일 대학 MBA 출신.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근무하던 그는 순 사장을 만나 시노비트에 합류했다.이들은 미국에서 익힌 IT 투자컨설팅 기법을 중국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노비트의 컨설팅을 거친 업체만도 1만 4,000여개에 이른다. 230개 투자자 회원을 두고 있다.이들은 컨설팅 기법뿐 아니라 해외자금도 끌어들였다. IBM, 소프트뱅크, SAP, 뉴스콥 등이 이 회사와 관계를 맺고 있다.순 사장과 장 총재는 중국에서 일고 있는 ‘해귀조(해외유학생 귀국 물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유학을 위해 해외로 떠났던 중국 학생들이 돌아오고 있다. 한 손에는 기술, 또 다른 한 손에는 돈을 들고 귀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들은 돌아와 창업을 하거나, 중국내 외국인 투자기업 또는 중국내 금융기관 등에서 일을 한다.중국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유학을 위해 해외로 떠난 중국 학생은 약 40만명에 이른다. 이 중 15만명이 귀국했다. 지난 95년 이후 해외 유학생들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해마다 13%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교육부는 최근 미국에서 유학 중인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귀국 시기를 조사했다. 21%의 학생들이 5년 안에 귀국하겠다고 답했다. 5~10년 사이에 돌아가겠다는 학생은 37%에 달했다. 졸업 후 미국에 남겠다는 학생은 19%에 그쳤다.해외 유학생들 귀국 물결이 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 IT 산업 발전과 관련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한 중국 IT 인재들이 거점을 중국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귀국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다.귀국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베이징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이다. 지난해말 현재 중관춘에 설립된 ‘해외 유학파 벤처기업’은 290개. 350여명의 유학생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상하이의 하이테크 단지인 장장 과기원에도 170개 유학생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실리콘밸리에서 온 유학생들이다.해외 유학생들은 황무지였던 중국의 인터넷 산업을 개척했다. 지금 중국에서 잘 나간다고 하는 벤처기업은 대부분 유학생들이 설립했다. 포털사이트인 소후의 장차오양 사장은 미국 MIT 출신이다.또 다른 포털사이트인 신랑왕은 초기 ‘국내파’ 왕즈동이 설립했으나 지난해 결국은 미국 유학파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나스닥 상장업체인 야신 역시 해외유학파 벤처기업이다.중국 정부의 유학생 유치 노력도 이같은 붐 조성에 한몫했다. 중국은 전국에 60여개의 ‘유학생 창업 단지’를 조성, 유학생들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 귀국 유학생들에게는 갖가지 창업 특혜를 베풀고 있다.주룽지 총리는 지난해 가을 난징에서 열린 세계 화교상인 대회에서 “중국은 해외 유학생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조성해 놓고 있다”며 “제발 돌아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베이징 시정부는 유학생 유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방자치단체다. 베이징 시정부는 중관춘관리위원회 산하에 ‘해외 유학생 창업지원 본부’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해외 유학생 창업 촉진 규정을 제정하기도 했다.이 규정에 따라 관리위는 유학생들에게 창업에 따른 각종 편의를 제공해 준다. 베이징 후코우 문제, 세제·금융 지원, 자녀 입학 문제 등을 일괄 처리해 준다. 해외 유학생이 중관춘에서 창업할 경우 이틀이면 수속 절차가 끝날 정도다.관리위는 이와 함께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를 설치,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학생들의 귀국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설립된 이 사무소는 유학생들에게 중국의 정보기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유학생들의 성향을 분류, 관리하고 있다.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해외 유학생들을 불러들이는 요소다. WTO 가입으로 더 많은 해외 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으며, 이는 곧 국제화 인력 수요의 증가를 뜻한다. 해외 기업들은 중국 사정을 잘 알고, 국제화 마인드도 갖춘 해외 유학생들을 스카우트 0순위로 선택하고 있다.최근 베이징 국제전람센터에서 ‘국제인재 박람회’가 열렸다. IBM, 모토롤라, GE 등 40여개 외국 다국적기업들이 인재 유치경쟁을 벌였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해외 유학경력 우대’를 내걸었다.WTO 가입으로 중국 금융기관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이 분야 해외유학 인재 수요도 늘고 있다. 상하이, 선전 등의 금융기관들은 해외 유학생들을 수시로 뽑는다.상하이증권거래소 류샤오둥 부총경리는 지난 99년 귀국한 해외 유학파. 그는 “보수, 교육, 주거 등 중국 직장의 근무조건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며 “같은 조건이라면 굳이 미국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 귀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배운 것을 조국에서 활용하고 싶었단다.‘해귀조’의 물결을 타고 있는 귀국 유학생들이 중국 국제화를 앞당기고 있다.첨단기술의 주역,‘천안문 세대’‘천안문(天安門) 사태가 중국 IT 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최근 해외 유학파 귀국 붐을 보면서 떠올리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왜 그럴까.지난 89년 6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을 피로 물들게 했던 ‘6·4 천안문 사태’는 세계를 경악시켰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5만여명의 중국 유학생들에게 영주권을 줬다.중국 유학생들이 몰린 곳은 실리콘밸리. 수리에 밝은 중국인의 천부적 재질과 당시 실리콘밸리 부상이 맞물린 결과다.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들은 몇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은 화교 단체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후진을 키운다. 1만 5,000개 첨단기업 중 14%는 중국인들이 최고경영자(CEO)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안문 사태 세대’가 뿌린 씨앗이 실리콘밸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이들이 거점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미국에서 귀국하고 있는 해외 유학생 중 상당수는 천안문 사태로 고국을 등졌던 학생들이다.빈손으로 떠났던 그들이었지만 귀국 길에는 첨단기술을 갖고 온다. 그들은 중국에 벤처업체를 설립하고, 또는 벤처투자 펀드를 만들어 중국내 유망 벤처기업인을 발굴하고 있다. 이들의 귀국에는 물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중국 인터넷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뜻도 있다.중국 경제를 3년여 동안 후퇴시킨 천안문 사태가 21세기 중국 발전의 견인차로 등장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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