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들, 신세계이마트·엔씨소프트·파라다이스·메가웹 성공사례 벤치마킹 열심
90년대 초반. 세계적인 전자업체로 이름난 일본의 한 업체를 방문한 한국의 엔지니어들. 한 컨설팅업체가 진행한 ‘일본기업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들은 흐릿한 유리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제조공정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당장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일본기업 안내인들의 감시 탓에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 회사로부터 ‘제조라인을 상세히 알라오라’는 지시를 받은 K씨는 견학을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방문을 걸어잠근 채 준비해온 그림노트를 꺼냈다. 그는 밤새 기억을 되살리며 제조공정을 그림노트에 옮겼다.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요즘 오히려 일본기업들이 한국기업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한국기업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던 일본기업의 기술력에 근접했거나 이를 극복한 한국기업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특히 국내 전자·정보통신업체들은 일본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횟수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DRAM, LCD, CDMA 단말기 생산국의 지위를 자랑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낸 보고서 도 이런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해 준다. 보고서는 10년 전만 해도 한일 양국은 소득격차와 문화적 이질성 등으로 인해 히트상품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비슷해졌다고 분석했다.가령 휴대전화, 정수기 등은 거의 비슷한 시차를 보이고 있으며 2001년 일본 히트상품 2위에 오른 ADSL은 국내에서는 이미 일반화됐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글로벌화가 진행된 까닭도 있지만 아울러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히트상품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 수준이 일본을 따라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또 일본경제가 10년 이상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일본기업의 ‘방한러시’를 부채질하고 있다. 불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벗어난 데다 IT산업의 빠른 성장으로 미래의 성장엔진을 찾은 한국기업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일본인들이 작정하고 찾아오는 신세계 이마트 등 ‘일본기업에 벤치마킹 대상이 된 국내기업’ 4곳을 소개한다. 이밖에도 일본기업의 방문이 잦은 국내기업들로 다음 커뮤니케이션, KT, KTF, 아이팬택 등 다수가 있다.사례1 / 신세계 이마트월마트 물리친 노하우 전수2월 21일 신세계 이마트 가양점.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10여명의 일본인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신세계 이마트 직원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이들은 신세계 이마트 직원의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메모하고 또 캠코더로 녹화했다.이들은 우리나라 재정경제부에 해당하는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유통경제연구소와 아사히 그룹의 유통연구소 연구원들이다. 이들 국책연구소와 민간기업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 중인 프로젝트인 ‘구미 유통업체의 일본진출에 따른 일본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대응방안’의 해답을 우리나라 이마트에서 찾고 있는 중이다.신세계 이마트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집중 연구대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 99년부터 한달에 한두 번꼴로 일본인 방문객을 맞고 있다. 다녀간 주요 업체들은 도쿄, 사이타현 등 관동지역을 중심으로 슈퍼마켓 50개의 체인망을 운영 중인 야오코, GMS(양판점) 업체로 일본 유통소매업체 중 매출액 3위인 쟈스코, 일본 슈퍼마켓 중 가장 큰 업체인 라이프 코퍼레이션 등이 있다.뿐만 아니라 일본 유수의 경제전문지 , 경제 주간지 등 일본 언론의 취재대상이 된지 오래다.이처럼 일본기업과 언론이 신세계 이마트를 자주 찾는 이유는 뭘까.이는 일본 유통업계의 최근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일본은 외국계 할인점과의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까르푸는 2000년 12월 도쿄 마꼬하리시에 첫 점포를 연 데 이어 지난해 2·3호 점포를 잇달아 열었다.월마트도 올 3월 일본 슈퍼마켓 중 4위 업체인 세이유의 지분을 매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 업체들이 외국계 유통업체를 누르고 할인점 업계 1위를 7년째 고수하고 있는 이마트 배우기에 나선 것이다.사실 일본기업들의 이마트 방문 러시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94년 11월 이마트 1호점을 내기 전, 준비팀은 일본 할인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 일본 최대의 GMS(양판점)인 ‘이토요카도’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 매장구성, 상품진열, 시스템 부문 등을 벤치마킹해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옛 이야기가 됐다.사례 2 / 엔씨소프트일본 언론·출판계 “부러워요, 리니지”“한국이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이렇게 앞서 나갈 동안 일본은 뭐했나 모르겠어요. 정말 부럽습니다….”지난 3월 20일 온라인게임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를 취재하러 온 일본 교도통신 기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일찍부터 전세계 게임업계를 주름잡아온 일본이 유독 온라인 게임에서만은 한국에 뒤지고 있다는 점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오히려 인터뷰를 하던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이 일본 기자를 위로하게 됐다. “우리도 시작 때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꾸준히 매달리다 보니 좋은 콘텐츠가 개발됐고 시장도 좋아진거죠. 일본도 머지않아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너무 걱정마세요.”‘e코리아’를 보는 일본의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지난 2월부터 일본에서 리니지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엔씨소프트는 일본 IT업계의 ‘지향 모델’로 부상했다. 그동안 NHK, 아사히, 니혼게이자이 등 대표 언론들이 잇따라 방문해 리니지 성공비결 캐기를 시도했고 유명 저술가와 학자들 또한 서적 출판, 강연 등을 통해 심층적 접근을 시작한 상태다.지난해 7월 출간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