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는 70년대 동남아 국가들에 콜라를 무료로 대량 살포했다. 당시 이 지역 어린이들은 달착지근하고 톡 쏘는 콜라 맛을 공짜로 즐길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 덕분에 코카콜라는 덥고 못사는 나라의 어린 이들에게 은혜(?)를 베푼 기업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땐, 이미 중독(?)된 콜라를 마시기 위해 스스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만 했다.토요일 오후, 맥도날드 매장은 아이들로 북적댄다. 햄버거를 사먹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세트메뉴를 시키면 각양각색의 인형과 장난감을 덤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들 소매를 필사적으로 잡아당긴다. 햄버거를 아이들 입맛에 맞추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이들을 충성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미끼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다국적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린이를 고객으로 사로잡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현재 100명의 고객에게 상품을 파는 것보다 1명의 어린이를 평생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론 훨씬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어리다고 얕보면 ‘큰코’ 다쳐지금은 어린아이일 뿐이지만, 이들은 반드시 자라서 기업의 제품을 사는 고객으로, 또는 그 회사에 취업하는 인재로, 그것도 아니면 그 회사의 주식을 사는 투자자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어린이는 ‘인류의 꿈나무’일 뿐 아니라,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기업에게 수익을 안겨줄 확실한 고객임에 틀림없다.어린이는 구매력이 없다.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최대의 구매집단이 된다. 아이들의 미소와 응석이 부모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이들을 놓칠 리가 만무하다.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가 대리점을 통해 판매하는 컴퓨터의 주요 사용자들은 어린이다. 돈벌이가 시원찮은 대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중·고등학생들조차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의 주 고객이 된 것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오히려 최대 잠재고객으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구매력이 없는데도 강력한 시장을 형성한 어린이 집단은 가까운 미래에 강력한 구매집단으로 성장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는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선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 초등학교 5~6학년생 500명을 대상으로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한 결과 핸드폰, 컴퓨터(노트북PC), 게임CD 등이 상위를 기록했다.컴퓨터와 이동통신 업체들은 쾌재를 부를 일이다. 어린이들은 부모가 허락한다면 주저없이 컴퓨터를 살 수 있는 잠재고객들이다.어린이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부모의 이름으로 휴대폰을 구입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중학교에 들어가는 1~2년 후만 해도 부모 동의 하에 자신의 이름으로 휴대폰을 갖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이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 늦다.앞선 이동통신 서비스업체라면 바로 지금 이들에게 제품을 알리는 활동을 할 것이다. 비단 휴대폰과 데스크탑 컴퓨터뿐 아니라 노트북, PDA(개인 휴대용 단말기), 게임 업체들도 어린이들을 고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리다고 과소평가해서는 큰 코 다칠 일이다. 이 때문에 어린이를 향한 기업들의 시선은 뜨겁다.해마다 5월이 되면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가들은 진열정비는 물론 어린이 고객, 가족고객을 붙잡기 위한 다양한 상품 전략으로 들뜨게 된다. 최근엔 인터넷 백화점과 TV홈쇼핑들까지 가세해 어린이 고객을 잡기 위한 전쟁이 뜨거워지고 있다.인터넷 쇼핑몰 e현대백화점이 서울 시내 3개 초등학교의 학생 430명을 대상으로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어린이와 부모들의 시선을 잡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강아지가 인기품목으로 떠오르자 현대백화점은 강아지를 경품으로 내세우는 기민함을 보였다.무료 서비스·봉사활동으로 동심에 호소국내에도 어린이를 미래고객으로 보고 일찍부터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한·일 합작 벤처기업인 LG히다치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드림포에버’란 사내벤처를 통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내 꿈 가꾸기’ 프로젝트를 추진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20~30년 후의 잠재고객을 미리 확보해 두겠다는 목적이었다. 현재 국내 13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어린이들의 꿈 가꾸기가 한창이다.세계적인 이동통신 단말기업체인 노키아도 최근 한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기업이미지를 알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독일, 영국 등에 이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랑의 공부방’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메이크 어 커넥션’이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노키아는 일찍부터 자사의 시장이 될 만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회사 이름과 보유 기술을 알리는 봉사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삼성전자를 비롯한 컴퓨터 업체들의 경우, 무료 교육으로 어린 고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처음 컴퓨터를 가르쳐 준 회사를 신뢰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또 교육을 받은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교육을 실시한 회사의 컴퓨터를 살 것이란 기대도 깔려 있다.항공사들도 어린이 고객을 미리부터 붙들어 놓으려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어린이 승객에게 따로 선물을 주는 것을 비롯해 어린이용 마일리지 카드까지 발행한다. 커서도 자사 비행기를 애용해줄 것이란 기대에서다.올해로 22번째를 맞는 ‘비추미 그림축제’를 개최하는 삼성생명 역시 어린이 고객을 주목하는 기업이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축제로 자리잡은 이 행사는 유치비용이 8억원이나 들지만, 그 이상의 홍보 효과를 거두고 있다.LG그룹는 과학관인 사이언스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역시 수십억원의 사업비가 들지만, 앞으로 수십년 동안 이 아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기만 한다면, 돈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기업도 아동보호 정책 펴야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이완정 교수는 “이제까지 기업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입맛이나 흥미를 자극하는 데만 급급했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론 어린이들의 정서에 부합하고, 이들에게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이교수는 또 아동을 대상으로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홍보할 땐 가족을 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IBM에 근무했던 옛 동료를 예로 들며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덕에 그 자녀들이 아빠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결국 자녀들에게 IBM이 좋은 회사란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전했다.실제로 미국의 직장인들이 보수를 많이 주는 회사보단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회사를 선호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는 이런 현상을 예일대 명예교수인 브론펜브레너(U. Bronfenbrenner) 박사가 주장하는 아동발달의 생태학적 이론으로 설명했다.그는 “아동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지는 않지만, 아동의 삶에 영향을 주는 체계를 ‘외체계’라고 한다”며 “가령, 부모의 직장에서 장학금이나 보육시설을 제공하거나, 부모가 자녀의 행사에 참여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등 아동보호 정책이 있는 경우, 부모의 회사가 아동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외체계’가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