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주 미국 위상 ‘흔들’ … 반덤핑 겹쳐 난기류

세계금융시장이 본격적인 회복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4월 들어 세계평균주가는 4% 정도 떨어졌다. 특히 미국증시의 경우 다우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5%, 10%가 급락했다.한동안 안전통화 역할을 담당해 온 미 달러화 가치도 약세조짐이 뚜렷하다. 4월 들어 미 달러화 가치는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약 4% 정도 떨어졌다. 반면 국제 금값과 원유가격은 각각 2%, 3%가 상승했다.국제 금값의 경우 조만간 온스당 340달러대에 이를 전망이다. 과거 세계금융시장이 난기류에 빠질 때의 전형적인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올들어 당초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로 기대감이 확산됐던 세계금융시장이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이 이뤄지고 있으나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추세에 맞는 증시를 비롯한 금융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국제기구들도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안전판인 국제통화기금(IMF)은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아르헨티나 사태 등에 방관자적 자세다.세계무역기구(WTO)도 회원국간에 늘어가는 무역분쟁에 대한 조정력과 구속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상태다.그 결과 아르헨티나 사태는 갈수록 데킬라 효과가 본격화되면서 베네수엘라, 페루 등 인접국가로 확산되는 추세다. 세계 각국간의 무역분쟁 건수도 이제는 개도국 선진국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 관세(anti-dumping tariff)와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를 활용하고 있다.그동안 국제기구를 대신해 세계금융시장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해 온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대표적으로 미국이 90년대 초에 이어 무역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보이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시대에 접어든 점을 들 수 있다. 그만큼 안전한 국가(safe haven country)로서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반면 미국을 대신할 수 있는 뚜렷한 대체국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럽은 프랑스 죠스팽 총리의 패배로 좌파에서 우파로 급선회하는 추세다. 독일의 슈뢰더 정부도 9월에 있을 총선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아시아 지역은 일본경제가 장기 침체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다 중국과의 주도권 확보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엔저 정책으로 아시아 국가간의 통화마찰도 불거져 왔다.기존의 글로벌스탠더드도 허구성이 속속 드러나면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심화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의 신뢰도가 떨어진지는 이미 오래됐다. 각종 기업수익 평가와 회계제도 등 증시관련 인프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미국제도와 관련해 비즈니스 위크지는 최신호에서 “미국이 독점기업에 대한 대중적인 혐오로 반독점법을 유발했던 1900년대 초반의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이후 경제시스템상의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며 “문제가 워낙 광범위해 한두 가지가 아니라 경제시스템에 대한 대규모 수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 곳곳에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 문제다. 저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최고경영자(CEO)와 종업원의 임금격차 확대가 지도력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며 이 격차가 최대 20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 격차는 411배에 달했다.특히 실적부진과 주가하락으로 종업원들은 해고에 시달리고 투자자들은 재산손실을 보는 가운데서도 경영자들은 스톡옵션으로 평균 1,000만 달러를 챙겼다. 이를 감독해야 할 이사회는 주식을 보유한 이전 경영진들로 채워져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이런 도덕적 해이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회계법인들은 컨설팅 수수료를 위해 느슨한 회계감사를 실시해 투명성과 신뢰성에 상처를 주었다. 투자은행의 애널리스트들은 주식이나 채권발행 주선, 인수·합병(M&A) 등의 고수익 업무를 따내기 위해 특정기업을 과대포장했다는 혐의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비즈니스위크는 이런 미국의 위기징후는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에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90년대 경제활력의 원동력이었던 개인의 ‘투자’가 줄어들어 미국 자본주의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국제관계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협력이 요구되고 있으나 세계 각국들이 실리를 중시하는 경제이기주의와 미국의 일방주의, 개도국들의 소외감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세계경제현안 해결에는 속수무책이다.이런 상황에서 세계경기 회복의 질이 종전보다 떨어지고 통계적 착시현상(illusion)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올들어 빠른 회복세를 보인 세계경제는 경제주체들의 캐시 플로(자산-부채상황) 희생의 대가다.신용대출과 레버리지 비율이 올라감에 따라 경제주체들의 캐시 플로가 지난해보다 악화돼, 경기가 회복되면서 캐시 플로가 개선되는 과거의 회복기와는 분명히 구별된다.한마디로 돈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만한 신뢰체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최근 들어 다시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각종 글로벌 펀드들이 안전자산을 선호(flight to quality)하는 쪽으로 투자성향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따라서 지난해 9·11 테러 이후 올 1분기까지 주식과 채권비중을 7대 3으로 주식보유 비중을 늘려갈 것을 추천해 왔으나 앞으로는 그 비중을 5대 5정도로 채권비중을 다소 늘려갈 것을 권고한다.우리나라는 어떤가. 앞서 지적한 세계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정책당국자가 나서서 시장에 충격을 줄만한 발언과 행동으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느낌이다.중앙은행 총재가 금리인상 시기를 못박는 듯한 발언을 하는가 하면 경제부총리가 동일한 문제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정책당국자의 역할은 시장이 제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institutional framework)’을 갖추는 데에 충실해야 한다.최근처럼 시장에서 활동하는 경제주체들의 자율적인 경쟁행위에까지 확대돼서는 시장은 안정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책 혹은 정책당국자의 신뢰까지 떨어지는 자충수에 빠질 우려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결국 최근에 난기류에 빠지고 있는 대내외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려면 신뢰를 회복해야 가능하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국제기구 기능의 재정립과 글로벌스탠더드가 마련돼야 하고 국제간 협력체계도 강화돼야 한다.세계경기도 경제주체들의 캐시 플로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회복돼야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schan@ 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