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보고’ 텍사스의 에너지 위기

[리스크 관리 ABC]

(사진) 오스틴재난구호네트워크의 자원 봉사자가 2월 19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사람들에게 생수를 나눠주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필자는 미국에서도 춥다고 하는 미시간과 펜실베이니아 등에서 10여 년 가까이 살았다. 때때로 마주쳤던 폭설과 강추위 속에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전기 공급 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기와 통신이 끊기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데 강추위 속의 정전은 말 그대로 ‘킬러 리스크’다.

지난 2월 미국에서 섭씨 영하 20도의 강추위와 폭설, 정전, 수도 공급 중단 사태 속에서 4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알래스카의 강추위가 중간 장애물 없이 그대로 들이닥친다는 미네소타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의 선 벨트 텍사스에서의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가히 블랙 스완급의 재난으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 왔다. 자연재해와 인재가 최악의 상황과 결합된 복합 재난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2월 평균 최저 기온이 섭씨 영상 5~10도인 텍사스에 폭설과 섭씨 영하 20도의 강추위는 지극히 드문 자연 현상이다. 지구 온난화 등 기상 이변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사한 상황이 앞으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텍사스 폭설 정전 사고는 발생 가능성 차원에서 극히 낮은 확률의 재난이지만 손실 규모는 막대하다. 인적 손실, 물적 손실, 배상 책임 손실, 평판 손실 등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소위 ‘천재지변’이라고 하는 자연재해에 이번 사태는 인재(人災)가 더해졌다는 비판이다. 경제 논리에 따른 전력 사업의 민영화는 전기료 인하 경쟁과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번 사태처럼 발생 가능성이 낮은 비상시에 대비한 시설과 인프라는 당연히 부재했다. 비상 계획도 없었던 듯하다. 킬러 리스크에 따른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business continuity plan)’이 준비돼 있어야 마땅한데 전력망 독립 정책을 고수했던 텍사스 주는 이웃 주들로부터의 비상 전력 공급이 원천적으로 불가했다고 한다.

텍사스의 전통적인 보수 성향의 정치 환경 또한 사태 악화에 한몫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오랫동안 집권해 온 공화당 세력은 다른 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부실한 거버넌스의 의사 결정은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식의 정치 경제 시스템은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이번과 같은 킬러 리스크에 따른 대형 사고에 해당 조직은 크게 흔들린다. 결국 텍사스 주민과 텍사스 소재 비즈니스가 직격탄을 맞았는데 남의 일만이 아니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이 정전으로 셧다운 됐는데 그에 따른 직간접적 손실 또한 상당히 클 것으로 추정된다.

리스크 사회에 살고 있는 개인과 비즈니스의 현실이 이렇다. 정부가 아무리 리스크 관리를 강조해도 구성원이 동참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1년 넘게 지긋지긋하게 계속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소규모 집단 감염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반대로 개인이나 비즈니스가 평소 리스크 관리에 애써도 정작 그들이 속한 지자체가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텍사스에서 벌어진 기습 한파와 정전에 따른 주정부의 리스크 관리 실패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결국 리스크 관리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리스크 관리는 특정 전문인의 특별한 기능이 아닌 것이다. 개인은 건강과 재산과 가정 관리에 힘써야 한다. 임직원의 인적 리스크, 물적 리스크, 배상 책임 리스크, 시장 리스크, 비상 리스크 등에 노출돼 있는 비즈니스는 통합 리스크 관리에 노력해야 한다.

한 사회의 존폐를 위협하는 재난 사고가 빈발하는 오늘날 정부는 재난 리스크 관리에 더욱 힘쓰고 주도적으로 앞장서야 마땅하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리스크 관리 인프라 구축에 노력하고 실제 이행하고 점검하고 개선해야만 리스크 관리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장동한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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