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 중간자 역할 활용 ‘주도권’ 잡아야

최근 동북아 지역에 있어서는 주도권을 놓고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역내 국가간의 협력문제도 꾸준히 진전되고 있다. 이달 12일에 끝난 아시아 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그대로 재현됐다.현재 동북아 지역의 협력문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한·중·일 3국간을 중심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다른 하나는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등 금융협력 문제다. 마지막으로 민간차원에서는 동북아 비즈니스 협력방안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이런 협력논의의 중심(Hub)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무엇보다 이런 협력논의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초점을 받으면서 동북아 지역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이론적으로 중국처럼 배후 시장규모가 큰 국가들이 WTO에 가입하게 될 경우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국가가 가입하는 것보다 개방에 따른 경제적 효과(Open Effect)가 크게 나타난다.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중국이 WTO에 가입함에 따라 연간 경제성장률이 1~2%포인트 제고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 1/4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대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WTO 가입으로 매년 경제성장률이 1~2%포인트 추가 상승할 경우 오는 2025년에는 미국경제를 앞서는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국제금융시장에서도 중국의 부상이 갈수록 눈에 띈다. 물론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유태계 자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기채(起債)시장에서만은 화교계 자금이 제1선 자금으로 떠오르고 있어 향후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특이한 것은 화교계 자금은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다국적 기업들이 대부분을 조달했다는 점이다. 엔화 자금과 달리 조달비용 면에서 저렴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유동성에 전혀 문제가 없는 다국적 기업들이 화교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부수적 효과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풀이된다.아시아 주도권을 놓고 빚어지는 이런 현상은 최근 들어서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동아시아의 경제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알력까지 작용하고 있어 주목된다.이미 미국과 중국 간의 통상마찰이 불거진 지 오래됐고 일본과 중국 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상태다.특히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일본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는 점이 향후 동북아 지역의 협력문제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변수다.현재 일본경제는 일부 경지지표에 있어서 개선될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침체국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달 들어 일본 경제각료들이 ‘일본경기가 저점을 통과했다’고 립서비스를 계속하고 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한때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을 꿈꿨고 무역흑자국의 상징이었던 일본이 악순환 국면에 몰리고 있는 것은 중국의 시장잠식과 일본 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중국 이전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나 지난해부터 일본은 위안화 가치가 중국경제 기초여건에 비해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가장 문제라는 인식을 여전히 갖고 있다. 현재 중국은 ‘1달러=8.28위안’을 중심환율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94년부터 유지해 오고 있다.문제는 중심환율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실제로 실질실효환율로 위안화의 적정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6.8~7.0위안으로 나온다. 이에 따라 일본은 중국이 시장잠식을 뛰어넘어 ‘산업찬탈’(産業簒奪)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기업을 유치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이론적으로 한 나라의 통화가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는 대표적인 ‘이웃 궁핍화정책’의 관점에서 해석된다. 다시 말해 어느 한 나라가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얻어지는 수출과 경제성장 측면의 이득은 인접국 또는 경쟁국들의 희생과 다름없는 견해다.우리나라는 어떤가. 물론 중국의 WTO 가입으로 우리로서는 매년 8억~12억달러 정도의 대중 무역수지 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가로막았던 ‘제3국으로의 수출의무 조항’과 ‘현지부품조달 의무조항’도 폐지된다.위안화가 절상되는 경우 환차익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아 국내 기업들의 ‘제2 중국 진출 붐’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반면 부정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다. 그 중에서 우리 농민들의 정서차원에서 보호해 온 농업 분야가 개방된다는 점이다.현재 양국간 농업 부문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중국의 값싼 농산물이 들어올 경우 농업 부문의 피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통상압력도 거세짐에 따라 중국에 대한 수출이 아직까지 크게 늘고 있지 않다.지리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 상태로 놓여 있다. 오히려 일본과 비슷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한국경제의 위상이 좌우된다.이미 표면화되기 시작한 일본과 중국간의 갈등구조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따라서 이때 우리나라는 동북아 지역에서 차지하는 중간자 혹은 균형자(Balancer) 역할을 잘 활용해 한·중·일 3국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라든가 통화스와프 협정체결, 공동통화기금 설정, 공동화폐 도입문제 등을 원만히 매듭지어야 동북아 지역에서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이 방안은 최근에 급진전되고 있는 공동화폐 도입논의에서 원화의 위상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scha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