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시스템으로 자산관리 '차별화'..."국민은행과도 경쟁하겠다" 선전포고
광화문에 있는 서울 파이낸스센터에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밀집해 있다. 그래서인지 시내에 있는 여느 빌딩과는 달리 고급 호텔 같은 분위기다. 이 건물 20층에 가면 삼성증권 ‘fn아너스 광화문’이 있다.내부는 잘 꾸며진 비즈니스센터 같아서 도무지 증권사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28층으로 가면 증권사 메릴린치의 프라이빗뱅킹(PB)센터가 자리잡고 있다.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탄 부유한 자산가, 어디서 내릴지 잠시 고민을 하지 않을까. 20층? 28층?거의 모든 금융회사가 PB 업무를 하겠다고 나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 선점자인 하나은행이나 신한은행은 물론이고 외환, 조흥 등 거의 모든 은행이 VIP 점포수를 늘리고, 새로운 브랜드의 점포를 내는 등 PB시장에 나서고 있다.‘리치클럽’(현대증권), ‘골드넛 멤버스’(LG증권), ‘씨저스 클래스’(대우증권) 등 증권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험사들은 종신보험을 판매하기 위해서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해왔고, 앞으로 변액보험 등 투자성격이 강한 상품이 부상하게 되면 자산관리 분야에서 운신의 폭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모든 금융사들이 ‘당신만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라고 광고를 하니 뭐가 다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 성숙단계에 이르지 않아서 시장의 검증을 거치고 난 절대강자도 없는 상태다.이처럼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에서 공격적인 전략을 택한 삼성증권은 ‘1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삼성증권의 PB 브랜드는 ‘fn아너스클럽’이다.수탁고 기준으로는 현재 증권업계 1위. 하지만 PB시장에서는 증권사들만 경쟁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삼성증권측은 의미 있는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삼성증권이 우선 따라잡아야 할 상대는 메릴린치다. PB가 무엇인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 씨티은행이나 하나은행이다. 이들은 선발주자이기 때문에 한국시장의 실제 마케팅에서 강점이 있다.마지막으로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쟁탈전을 벌여야 할 상대.국세청 직원 특채해 세무 상담도삼성증권은 PB시장에 진출하면서 우선 메릴린치를 비롯한 외국계 증권사를 충실히 벤치마킹했다. 종금사나 은행권에서 하고 있는 ‘자산관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시스템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fn아너스클럽을 찾으면 고객은 먼저 자신의 투자성향에 대해 일종의 종합검진부터 받는다. 설문지를 작성하고, ‘포커를 좋아하십니까’와 같은 간접 질문을 통해 투자성향이 파악되기도 한다.그 결과에 따라 고객은 ‘안정투자 선호형’부터 ‘공격투자 선호형’까지 16단계로 분류된다. 그런 후 포트폴리오 구성에 들어가고, 구체적인 상품을 추천받는다. 이후 매달, 매분기, 매년 투자에 대한 보고서를 받고 계속해서 조정을 하게 된다.이 보고서에는 자산이 어디어디에 투자돼 있고, 그래서 한 달 전에 비해 얼마가 불거나 줄었으며, 가입한 상품 중 이번 달에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은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돼 있다.이처럼 삼성증권의 시스템이 응축돼 있는 게 고객에게 제공하는 보고서다. 대단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같은 시스템이 있으면 프라이빗 뱅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구조적인 관리가 가능해진다.국내사 중에는 이런 시스템을 완성해 놓고 PB 영업을 시작한 곳이 드물다. PB 분야에서 선발주자로 꼽히는 한 은행의 경우에도 프라이빗 뱅커가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손수 디자인한 간단한 프로그램에 고객정보를 입력하고, 결과를 산출한다. 수공업인 셈이다.하지만 ‘웰스 매니저’라 불리는 삼성증권의 지점 PB는 고객 정보를 본사에서 관리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에 입력한다. 정보만 입력하면 그 고객에게 맞는 투자성향이 분석되고, 적정 자산배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나온다. 물론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고, 사람이 손을 대서 조정해야 할 부분은 있다.하지만 프라이빗 뱅커 한 사람 한 사람이 포트폴리오를 짜 주는 방식과는 다른 것. 같은 고객이라도 어떤 프라이빗 뱅커를 찾아가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자산배분 방법이 나올 수 있지만, 삼성증권에서는 그 편차가 훨씬 작아지게 된다. 소위 ‘과학적인 관리’다. 이 시스템은 메릴린치, 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외국사의 것을 참고해 개발했다.PB 영업에서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인력이다. 현재 모두 57명의 웰스매니저가 있는데 삼성증권 영업직원 중에서 교육, 선발하기도 하고 종금사·투신사·외국은행 출신도 스카우트했다. 세무상담을 위해서는 회계사가 아니라 국세청 직원을 특채했다.이밖에도 ‘삼성’이라는 브랜드 파워, 삼성서울병원에서부터 삼성생명 등 보험에 이르기까지 그룹 계열사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경쟁사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게 삼성증권이 생각하는 강점이다.삼성증권이 이처럼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증권사의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은 증권사의 불안정한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PB를 지목했다.장기적으로 전체 수익 중 주식 약정의 비중을 기존 80%에서 30%로 낮춰가고 나머지는 종합자산관리와 투자은행 업무에서 비슷한 비율로 채워나갈 계획이다.삼성증권이 은행이 선점하고 있던 종합자산관리 분야에 뛰어든 건 적절한 의사결정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종합자산관리는 일정 규모의 금융자산을 장기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구조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 삼성증권의 종합자산관리 수탁고는 3월 말 기준으로 22조원, fn아너스클럽에 가입한 고객들의 수탁고는 9조8,000억원을 넘어섰다.INTERVIEW 오희열 웰스 매니지먼트 기획팀 부장“우수인력 영입, 바람 일으킨다”국내 금융사들이 프라이빗 뱅킹(PB) 시장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어느 정도 사실이다. 3년 전 시작을 하려고 보니 PB 영업을 기획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전문가가 국내에는 없더라. 메릴린치나 씨티은행과 같은 외국사들은 미국시장에서 이미 검증을 거친 마케팅 능력과 운영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미국 보험사들로부터 배울 점도 상당히 많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보험사들은 자산관리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기획부서에 미국 푸르덴셜과 메트라이프에서 영업경험이 있는 인력 두 명을 데려왔다.같은 시장을 놓고 은행과도 다퉈야 한다. 증권사가 경쟁력이 있을까.현재 우리나라 개인 금융자산의 53%가 은행 예금으로 잠겨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정반대다. 개인 금융자산은 은행에 약 13%가, 유가증권에 50% 이상 투자돼 있다. 저금리가 계속되고 금융기관 구분이 희미해지는 추세가 계속되면서 우리나라 개인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도 은행에서 빠져나올 것이다.삼성그룹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부유한 고객들이 많이 찾지만 공급 물량이 적은 삼성계열사의 우량채권을 다른 금융사 고객보다 많이 확보해줄 수 있다.‘프라이빗 뱅킹은 사람장사’라 할 정도로 영업 인력의 우수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모두 57명의 웰스 매니저가 있는데, 일부는 삼성증권의 영업 직원 중에서 뽑아 교육을 거쳐 웰스 매니저로 선발했고 은행, 종금사, 투신사 등에서 다양한 경력자들을 스카우트하기도 했다.이렇게 구성해 놓고 보니 각각 장단점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은행경력이 있으면 고객관리나 경험 마케킹 기법 등에서 우월한 반면, 원금손실이 발생했을 때는 고객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보였다.증권영업경력자는 그 반대이고. 따라서 우리 웰스 매니저들이 양쪽의 장점을 취득할 수 있게 교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