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브러더스, 인력보강뒤 주식영업확대 … PCA운용, 투신운용업 진출 본격화
“앞으로 국내 투신시장은 외국계 금융기관의 독무대가 될지도 모릅니다.”금융당국의 한 고위인사가 지적한 말이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권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일부 은행과 증권사의 주인이 외국계 자금 또는 금융기관으로 바뀌는 등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특히 투신권의 변화는 ‘격변’이라고 표현할 만하다.소위 ‘3투신’과 지방 5개사에 불과하던 투신시장은 지각변동을 일으켜 현재 운용사만 30개사에 달한다. 이 중 9개는 외국자본이 대주주다.현재 외국자본이 참여하고 있는 투신운용사는 대신(일본 스미토모생명), 동원BNP(프랑스), 한화(미국 알리앙스 캐피탈), 프랭클린템플턴(미국), 외환코메르쯔(독일), 주은(호주 ING), 하나알리안츠(독일 알리안츠AG), 슈로더(영국), 국은(싱가포르 모건스탠리) 등 9개사다.외국자본은 지금도 계속 들어오고 있다. 우선 지난 4월 농협중앙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프랑스 최대은행 크레디 아그리콜이 있다. 농협은 크레디 아그리콜과 투신운용사 합작설립에 합의, 올해 안에 영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일단 농협이 대주주 지분을 갖고 아그리콜은 경영을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지켜질지는 미지수이다.아그리콜은 국내 진출을 모색하면서 농협의 800개가 넘는 점포망을 노렸고, 농협은 업무다각화를 위해 제휴한 것이기 때문에 향후 국내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아그리콜이 독자 영업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또 영국계 푸르덴셜그룹이 전액 출자한 PCA투신운용도 지난 4월 예비허가를 받아 투신운용영업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4월 영풍생명을 인수, PCA생명으로 이름을 바꾼 푸르덴셜그룹은 한국시장을 매력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수시로 밝힌 바 있다.외국계 투신사 약진 눈부셔신해용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은 “앞으로 투신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분위기”라며 “외국계 투신사의 약진이 눈부시다”고 지적했다. 신국장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투신권의 자금이동추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한투, 대투 등 기존의 대형 투신사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템플턴, 슈로더 등 외국계 투신사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모건스탠리 싱가포르법인이 인수한 국은투신도 주목해야 할 회사다.물론 해외 금융기관이 투신사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좀더 규모가 큰 증권사(인베스트먼트 뱅크)들도 한국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지난 4월16일 미국 리만브러더스의 리처드 헐드 회장은 이 증권사 서울지점 승격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내한했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한국경제에 대해 낙관하고 있으며 서울지점 개점을 계기로 한국 투자를 늘리겠다”며 “필요하면 증권사 인수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헐드 회장의 발언 중에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한 부분이다. 그는 “일본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한 반면, 한국은 부실 부문을 적극적으로 정리해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A3로 상향조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전세계 25개국에 52개 사무소를 두고 지난해 순이익을 67억달러나 낸 리만브러더스의 회장이 지점개설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내한해 상당히 ‘정치적’ 발언을 한 셈이다.다소 늦긴 했지만 리만브러더스가 이처럼 발벗고 나선 것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동북아, 그중에서도 서울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리만브러더스는 사무소 수준이던 서울지사의 지점 승격허가를 받았으며, 리서치 인력, 세일즈맨, 트레이더 등을 대폭 보강해 기업금융 업무에 국한돼 있던 서울지사 업무를 주식영업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대 개편했다.그러나 향후 서울의 영업환경이 개선되는 기미를 보인다면 경쟁사인 메릴린치나 골드만삭스 수준의 추가확대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게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메릴린치는 이미 지난 2000년 말 프라이빗 뱅킹(PB) 업무를 개시하는 등 서울지점 업무를 강화한 지 오래다.외국계 금융기관이 몰려오는 현상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해외의 금융노하우와 고급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굿모닝증권 사례에서도 드러났듯이 ‘금융종속·국부유출’이라는 일부의 반발도 있다.그러나 지난 86년 영국의 금융대변혁, 소위 금융빅뱅 이후 영국계 증권사의 90%, 대형 종합금융사의 절반의 주인이 외국계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제 외국금융기관의 한국 진출은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특히 빅뱅 이후 런던이 세계 3대 국제금융시장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사실을 돌이켜 보면 우리도 이제 발상의 전환을 이뤄야 할 시점이다.돋보기 싱가포르 투자청싱가포르 국부창출 ‘1등공신’외국계 금융기관의 활발한 한국 진출과 관련,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전략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싱가포르 투자청(GIC)이다.싱가포르 정부의 100% 출자로 설립된 GIC는 지주회사로 3개 자회사를 두고 전세계 각국의 채권과 부동산 등에 1,000억달러(약 120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GIC는 지금은 고문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리콴유 전 수상의 구상으로 태동돼 이제는 싱가포르 국부창출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GIC의 부동산 투자 관련 자회사인 GIC RE는 지난 99년 이후 서울 잠실의 시그마타워 일부와 중구 회현동의 아시아나빌딩(프라임 타워), 무교동의 서울 파이낸스센터(SFC) 등 대형 빌딩을 잇달아 사들이면서 눈길을 끈 ‘큰손’이기도 하다.GIC RE는 세계 주요도시 빌딩 등에 120∼130건 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그중 6∼7개 도시의 빌딩들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SFC도 그중의 하나다.GIC는 싱가포르의 풍부한 외환보유고를 투자재원으로 전세계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리투자자문의 이남우 사장(전 삼성증권 상무)은 “GIC는 외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사를 두는 외국계 금융회사에 특혜성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면서 “외국계 금융사가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 국제금융시장의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는 등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5월15일 현재 1,079억달러다. 이 중 300억∼400억달러 정도는 장기투자를 해도 지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이남우 사장은 “외국자본의 진출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역으로 해외 금융기관이나 자산투자에 나서면 투자수익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