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 대중의약품으로 승부 ‘경영순풍’

제약회사의 본업은 좋은 약을 만드는 것이다. 질병을 다스리는 명약을 만들어 고객의 건강을 지켜 주고,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제약회사들이 금과옥조로 받드는 사명이다.좋은 약을 만들지 못하는 제약회사치고 고객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일류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 하나만 보아도 이같은 지적은 타당성을 지닌다.하지만 제약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치료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의 처방 없이도 어디서나 팔 수 있는 초보적 수준의 대중의약품 역시 제약회사들이 만들어 파는 것이다.사업영역의 확대로 최근에는 제약회사마다 살균소독제, 건강용품, 미용상품 등을 부대상품으로 내놓고 또 다른 주력제품으로 키우고 있어 각 회사들의 실제 얼굴은 고객들의 선입견과 크게 달라져 있다. 말하자면 ‘제약’이라는 간판이 너무 커 속사정이 그늘에 묻혀버린 셈이다.일본의 제약회사 중 고바야시제약이라는 기업이 있다. 전국적인 지명도를 누리며 연간 750억엔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회사이지만 본사는 오사카에 있다.일본 제약업계와 소비자들이 고바야시제약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독특하다. 간판만제약회사라는 이름을 달았을 뿐 이 회사는 약품시장에서 ‘고바야시’라는 이름을 선뜻 떠올릴만한 대형 히트상품을 좀처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제약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약품사업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해 놓고 있지 못하니 평범한 회사 중 하나로 치부될 수 있다는 말이다.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면 그게 아니다. 이 회사는 지난 2001년 3월 말 결산에서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려 경쟁업체들을 경악시켰다. 매출, 영업이익, 경상이익 등 대다수 지표에서 과거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2년 3월 결산에서도 기세는 누그러지지 않았다.제약업계 전문가들은 고바야시제약의 눈부신 고성장 비결로 이 회사가 택한 시장전략과 특유의 마케팅기법을 첫손에 꼽고 있다. 대규모 연구개발비가 투입돼야 하면서도 선발 경쟁업체들의 벽에 부딪쳐 시장을 넓히기 어려운 치료약은 자제하는 한편 다른 분야에서 최대한 실속을 챙긴다는 전략이 그것이다.전문가들은 고바야시제약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자신만의 대표적 텃밭을 대중의약품과 기타 가정용품으로 지적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이들 상품에서 경쟁업체보다 늘 한발 앞서 가는 선점전략으로 고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틈새시장을 겨냥해 신제품을 소나기식으로 퍼부으면서도 브랜드, 광고싸움 또한 경쟁업체들의 허를 찌르는 발상으로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고 있다.매년 2~3건 신제품 시장에 내놓아고바야시제약이 매년 대중의약품과 가정 생활용품에서 선보이는 신제품은 30점 전후에 달하고 있다. 매달 2~3건씩의 신제품을 시장에 투입하는 셈이다. 단기간에 많은 제품을 내놓는다고 준비가 덜 된 제품을 무작정 들이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하나같이 아이디어로 철저하게 무장한 제품들이라 경쟁업체들이 이마를 치는 것들이다. 무좀약, 구강치료제 등에서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크게 높인 아이디어 제품들이 대거 쏟아진 2001년 봄 제약업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역시 고바야시’라는 경탄이 끊이지 않았었다.신제품 개발에 고바야시가 쏟는 노력과 집념은 놀라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할 정도다. 이 회사는 연구소 내에 특수 조직으로 기술자 15명으로 구성된 별동부대를 설치해 놓고 있다.이들이 하는 일은 24시간 내내 현미경이나 시험관에 매달려 실험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생활패턴과 행동양식을 관찰하는 것이 주 임무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과학적인 관점에서 정밀하게 분석해 새로운 트렌드과 소비자 욕구를 읽어낸 다음 신제품 개발에 응용하는 것이다.이들은 끊임없이 각종 소비자조사를 실시한다. 아이디어 단계에 있는 제품을 설명서 등으로 작성한 후 이를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보여준 후 제품화의 실마리를 찾는 조사다.사내에는 고객과 일선 유통채널 등 각종 경로를 통해 수집된 2만건 이상의 아이디어가 축적돼 있어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상품이 있다면 사겠습니까’ 식의 질문을 수시로 던져 소비자들의 반응을 사전 체크함으로써 실패위험을 낮추는 것도 이들의 또 다른 임무다.“고바야시제약에는 신제품의 개발재료가 무궁무진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만 그게 아닙니다. 소비자들의 욕구가 끝이 없는 겁니다. 말하자면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신제품의 기회가 있는 거지요.”쓰지노 다카시 고바야시제약 부설 연구소 소장은 “신제품의 아이디어는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 속에 얼마든지 있는 것이며, 이를 찾아내는 데 힘을 쏟는 것이 고바야시의 강점”이라고 말했다.부르기 쉬운 브랜드명도 매출에 기여전문가들은 틈새시장에 에너지를 몽땅 퍼붓는 특화전략과 함께 이 회사의 브랜드 전략을 또 하나의 무기로 지적하고 있다. 고바야시제약은 제품이름을 고객들이 알아듣기 쉽게, 그리고 연상하기 쉽게 짓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목안을 살균소독해주는 약의 경우 ‘목에 바른다’, 얼룩을 빼주는 세제는 ‘얼룩잡기’, 발뒤꿈치 갈라진 곳에 바르는 약은 ‘매끄러운 뒤꿈치’라고 이름을 붙이는 식이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촌스러워 보이지만 상품의 이미지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가 큰 브랜드 네임”이라며 고바야시제약의 고집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제약업계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고바야시의 또 다른 특징은 독특한 TV광고 전략이다. 이 회사는 화장실 배수구에 쌓인 머리카락을 제거해주는 상품을 소개하는 광고에서 현장을 집중적으로 비춰주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상품의 이름도, 회사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배경음악도 없었다. 오직 ‘이런 제품이 나왔으니 이런 용도로 쓰면 됩니다’라는 메시지로 상품 컨셉트를 전달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파이어니어업체 입장에서 본다면 상품 컨셉트와 기존 유사상품들과의 차별화를 앞세워 소비자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셈이다.고바야시제약은 대중의약품과 가정생활용품 사업의 경우 시장에 투입한 지 4년 이내의 제품들로 전체 매출의 35% 이상을 올린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발매 후 1년이 안 된 제품들의 매출비중은 10% 이상을 유지한다는 목표를 내부적으로 세워놓고 있다.신제품 개발에는 전사적 힘을 쏟지만 지나치게 신제품에만 의지하다가는 광고비 등에 발목을 잡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고바야시제약의 한 관계자는 “신제품의 경우 광고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는데 TV광고 한 편당 최소 1억5,000만엔이 들어가니 신제품으로는 이익을 내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이 회사는 신제품의 8할 이상을 최소 한 번 이상 TV광고를 하고 것으로 알려졌다. 틈새시장을 선두주자로 개척해 판로확장에 앞장서는 한편 실제수익은 시장 정착에 성공한 2~3년차 제품들에서 거두는 전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고바야시제약은 상품을 시장에 일단 내놓은 후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일용잡화는 3년, 의약품은 5년으로 잡고 있다.이 관계자는 틈새시장을 몸속에 품고 키운 후 경쟁사들이 쫓아와도 기필코 마켓셰어 1등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고바야시제약의 기본 철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틈새시장이 성숙시장으로 커지는 과정에서 1등 상품을 통해 번돈을 다시 신제품 개발에 아낌없이 집중 투입한 것이 승리의 방정식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yangs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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