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업체들 설비이전 ‘디지털가전’ 양산

중국 산둥성 칭다오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종합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그룹 본사. 정문에 들어서자 ‘海爾是海’(하이얼은 곧 바다), ‘中國造’(메이드인 차이나)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관계자에게 무슨 뜻인지 물었다. ‘하이얼이 해외로 뻗어나가 중국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뜻’이라고 했다.하이얼은 중국 가전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하이얼 브랜드는 이미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가전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 소형 냉장고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지 올해로 꼭 23년. 하이얼의 성공은 중국 개혁개방정책의 결실을 상징하고 있다.하이얼뿐만 아니다. 중국에는 세계적인 가전업체들이 수두룩하다. 연간 매출액 10억위안이 넘는 업체가 무려 29개나 된다. 이 중 22개 업체는 영업이익이 1억위안을 넘는다.특히 17개 업체는 지난해 5,000만달러 이상을 수출했다. 하이얼을 포함해 상위 6대 가전업체의 총수출액은 1억5,000만달러가 넘었다. 중국 가전업체들이 대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이같은 업체들이 중국을 거대한 ‘가전제품 공장’으로 만들었다. 중국은 세탁기, 컬러TV,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컬러TV의 경우 4대에 1대 꼴로, 전자레인지는 2대에 1대 꼴로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다.단지 가전업체가 많다고, 생산량이 많다고 해서 중국을 ‘가전대국’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가전기업을 끌어들이는 능력에 중국의 힘이 있다. 세계에서 잘나간다는 가전업체들은 지금 생산설비를 중국으로 옮기고 있는 중이다.중국 진출 외국 가전업체 중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회사는 LG다. LG는 가전 분야의 모든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더욱더 많은 설비가 중국으로 이전되고 있다. ‘중국에 또 하나의 LG를 만들겠다’는 게 이 회사의 전략이다.LG의 가전공장은 중국 전역에 고루 퍼져 있다. 선양 컬러TV공장에서는 일반 TV와 PDP, 프로젝션TV가 생산된다. 이 밖에 냉장고(타이저우), 세탁기(난징), 에어컨(톈진), 전자레인지(톈진), DVD(상하이), 오디오(후이저우), 청소기(톈진)등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특히 전자레인지와 DVD의 경우 한국의 생산량을 능가한다.이 밖에 일본의 4대 가전제품 메이커인 마쓰시타, 도시바, 산요, 미쓰비시가 모두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 소니도 최근 연산 100만대 규모의 컬러TV공장을 세웠다. 최대 가전업체인 GE 역시 중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미국으로 들여가고 있다.중국은 그동안 이뤄진 가전 분야 기술발전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부품을 조달받을 수 있다. 또 임금수준이 낮다. 막대한 중국 내수시장이 받쳐주고 있다. 중국이 세계 가전공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다.요즘 ‘가전 대국’ 중국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고 있다.우선 가전업체들이 생산품을 정보기기 등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생산품 다각화가 휴대전화이다. 냉장고, 세탁기 등으로 시작한 많은 가전업체들이 휴대전화 생산에 나서고 있다.하이얼, TCL, 콩카(康家), 하이신(海信) 등 대부분의 가전업체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또 자회사 설립을 통해 시스템통합(SI) 소프트웨어개발 인터넷서비스 등의 정보기술(IT) 비즈니스에 나서기도 한다.민영기업의 활동이 두드러진 것도 특색이다. 국영기업보다는 민영기업이 가전산업을 이끌어 가는 형세다. 에어컨 업체인 메이디(美的)와 춘란(春蘭), 전자레인지 업체인 거란쓰(格蘭仕) 등은 시골의 작은 기업(향진기업)에서 시작, 각각 특정 분야에서 시장을 석권했다.거란쓰는 세계 전자레인지 시장의 35%를 차지할 정도이다. 세계 전자레인지 3대 중 하나에 ‘거란쓰’ 상표가 붙어 있는 것이다. 적극적인 기술개발과 선진 경영노하우 등이 무기였다.향진기업에서 세계 기업으로 성장한 가전업체들은 중국 개혁개방 과정을 설명해주는 산증인이기도 하다.돋보기 / 장즈밍 베이징궈메이 사장박리다매전략 … ‘가격파괴 킬러’중국 최대 가전제품 유통업체인 베이징궈메이의 장즈밍 사장. 그는 업계에서 ‘가격파괴 킬러’로 불린다. 치밀한 가격인하 작전으로 경쟁업체를 밀어내면서 얻은 별명이다. 그는 가격을 앞세워 중국 가전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가전메이커들은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장사장의 시장전략은 ‘박리다매’이다. 이를 위해 그는 공장과 소비자 간 유통단계를 최소화했다. 유통과정은 궈메이가 다 한다. ‘궈메이 가전제품 가격은 백화점은 물론이고 할인매장 보다도 최소한 100위안 이상 싸게 팔아야 한다’는 게 장사장의 지론이다.“판매량이 많아질수록 가격은 싸지게 돼 있다. 가격이 싸지면 고객은 몰리게 마련이다. 이는 곧 판매량 확대로 이어지고, 또다시 가격을 낮출 수 있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공급자도, 소비자도 아닌 중간유통업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장사장이 직원에게 강조하는 말이다.지난 여름 랴오닝성 선양. 선양의 4개 현지 대형유통매장 대표들이 ‘궈메이 대책회의’를 가졌다. 궈메이 선양점 개장에 대비, 손해를 보더라도 가격을 낮추자는 결의가 맺어졌다.그러나 이들 업체는 3개월도 안돼 손을 들고 말았다. 궈메이의 가격에 도저히 맞출 수 없다고 판단, 가격결의를 파기한 것이다. 선양 언론들은 이를 두고 ‘궈메이의 승리, 소비자의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궈메이는 현재 전국 40개 매장에서 연매출액 30억위안을 올리고 있다. 오는 2003년까지 150개 매장, 연매출액 100억위안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장사장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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