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평가사 진출… 국내기업도 ‘눈독’

무디스,한신평 최대주주지위 확보...피치 한기평과 업무제휴,S&P도 진출 추진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S&P), 피치 등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97년 여름 이들 기관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자 외국자본이 급속하게 빠져나갔고 뒤이어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신용평가기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이후 이들의 영향력은 계속 증대돼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곧바로 주가가 폭등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이들 신용평가기관이 속속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신용평가업계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채정태 S&P 서울임시사무소 이사는 “한국의 회사채 시장은 아시아에선 일본 다음으로 크다”며 “따라서 회사채 평가 시장도 팽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3대 업체 중 무디스나 피치는 제휴를 통해 이미 국내 시장에 들어왔으며 경쟁업체들의 활발한 한국 진출에 자극을 받은 S&P도 ‘상륙’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한국신용정보(이하 NICE)가 아직 ‘짝’이 없는 것을 두고 ‘S&P와 제휴를 맺을 것’이란 보도가 나올 정도다.이에 대해 S&P의 채이사는 “궁극적으로 한국 신용평가사와 업무제휴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NICE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도 협상 대상”이라고 밝혔다. NICE는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일본 최대 신용평가기관인 R&I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며 “S&P와의 제휴는 검토하고 있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이처럼 느긋한 것은 일본에 진출한 해외신용평가기관의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실제로 일본 토종 업체인 R&I는 일본 신용평가시장에서 60~7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NICE측은 외국 신용평가사와의 업무제휴에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우리나라 신용평가기관 지분매입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무디스다. 무디스는 지난 98년 한국신용평가(이하 KIS) 지분 10% 매입을 통해 처음 국내에 발을 들여놓았다.계약상 2003년까지 추가 지분매입을 통해 지분율을 49%까지 확대하기로 돼 있다. KIS 관계자는 “무디스와 합작한 배경은 직원 연수, 간행물 공유 등을 통해 무디스의 선진 기법을 배우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무디스가 KIS의 대주주가 된 데는 모회사인 한국신용평가정보(이하 한신평정)의 다급한 입장도 한몫했다. 정부가 신용평가기관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신용평가업 허가요건을 지난해 바꾸면서 신용평가업 허가를 얻는 데 장애물이 등장한 것이다.S&P, 한국 진입 시도자회사인 KIS가 신용평가업을 하기 위한 허가를 얻으려면 최대주주인 한신평정이 그 지위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한신평정은 원매자를 찾았고, 무디스와 지분매각협상을 지난해 12월에 매듭지었다.매각내용을 보면 무디스에 40만1주를 주당 3만459원에 넘겨 매각대금으로 122억원을 받고 여기에 3년간 경영성과에 따른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최대 69억원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이로써 무디스는 KIS 지분 50.0001%를 소유, 최대주주 지위에 올랐으며 KIS는 금감위로부터 신용평가업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피치도 지난 98년 한국기업평가(이하 KMCC)와 단계별 업무제휴를 합의했다. 내용은 교육훈련제공, 신용평가서비스 제공 등이었다.피치는 지난해 2월 KMCC 지분 9%를 44억5,600만원에 인수, 한국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구축했다. KMCC를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매각에 피치가 참여했던 것이다.비록 코스닥등록을 위한 공모과정에서 2대주주로 떨어지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피치는 산업은행과 함께 1대주주였다.외국사 진입에 우려 반, 기대 반외국 신용평가기관의 국내 진출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무디스의 경영권 확보를 두고 업계 일부에서는 “지금껏 국내 기준에 의해 신용평가를 받아온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국제적 기준에 맞춰 평가를 받을 경우 낮은 등급을 받을 확률이 높아 자본조달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감을 표명한 바 있다.다시 말해 무디스 등 외국계 신용평가사의 방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기 때문에 낮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그러나 KIS의 최대주주 지위를 차지한 무디스는 향후 3년간 국내에서 행해지던 등급체계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앞으로 3년 후에나 수면 위로 부상할 전망이다.반면, 외국 평가사의 진출로 국내 신용평가업계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이보영 연구원은 “외국 평가사들은 국내 기업의 해외채권발행시 등급산정방법, 신용평가방법 등을 전수해줄 수 있다”며 “KIS의 경우 피치로부터 제공받는 노하우가 상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국내 신용평가기관에 관심을 두는 것은 비단 외국계 신용평가기관만은 아니다. 지난 4월 말에는 한일시멘트가 KMCC 주식 130만주를 221억원에 매입하면서 총지분율 32.76%로 최대주주가 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일부에서는 단순한 투자목적이 아니라 산업은행의 대리인 역할을 하기 위한 지분취득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최근 산업은행이 KMCC 주총에서 이영진 사장 체제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일이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한 산업은행측이 미리 우호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이에 대해 한일시멘트 관계자는 “공시에서도 밝힌 바 있듯 신용평가업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 투자한 것일 뿐”이라며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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