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회장,김정태 국민은행장 등 능력위주 인사.창의성 경영 '앞장'
히딩크식 경영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히딩크식 경영’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금의 국내 경영현실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이런 가운데 이미 국내에서 히딩크식 경영을 실천하는 경영자들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발 앞서가는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히딩크가 한국축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듯이 한국식 경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한국의 간판기업 삼성을 이끄는 이건희 회장은 여러모로 히딩크와 대비된다. 우선 이회장은 늘 인재제일주의를 주창한다.뛰어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집중적으로 토론하기 위해 사장단 회의를 직접 주재할 정도다. 실무자들에게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외국에 나가 똑똑한 인재를 데려오라고 주문한다. 전형적인 능력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히딩크 역시 학연과 지연을 배제하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월드컵대표를 선발했고, 이 과정에서 무명의 박지성과 이을용 등을 발굴해 대표팀의 역량을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반면 한때 국내 축구계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고종수와 이동국은 이름 석자만 믿고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다 대표팀에서 제외됐다.거슬러 올라가면 이회장의 능력위주 채용은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사원을 뽑을 때 학력을 따지지 말라고 주문했고, 이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능력만 있으면 대졸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 채용시스템으로 삼성 내에 자리잡도록 했다.삼성맨 하면 재계에서도 능력을 인정하는 건 이런 이회장의 인재제일주의가 바탕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이건희 회장과 여러모로 닮은꼴지나친 자만심은 금물이라는 이회장의 경영철학도 히딩크의 ‘공격할 때 수비를, 수비할 때 공격을 생각하라’는 소신과 맥을 같이 한다. 이회장은 수시로 경영진을 불러 잘나갈 때 조심하자고 강조한다.다른 기업들로부터 시샘을 받을 만큼 순항을 하지만 늘 긴장감을 유지하라고 당부한다. 최근에도 이회장은 최고경영진을 모아놓고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5년·10년 후에 먹고 살 것을 생각하자’고 독려했다.개혁적인 경영으로 금융업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경영스타일도 히딩크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최근의 행번제 폐지는 연공서열은 철저히 배제하고 능력위주로 선수들을 발탁하는 히딩크식 축구와 아주 흡사하다.김행장은 지난 5월 인사담당 임원을 불러 직원들이 부여받은 행번을 모두 없애라고 지시했다. 행번은 처음 은행에 입사하면서 개인적으로 부여받는 번호로 은행원 입장에서는 주민등록번호나 다름없다.서열을 중시하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은행의 관행상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잇따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그런데 김행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과거 인사기록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능력위주 인사정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평소 불합리한 점을 고쳐나가는 데 많은 힘을 쏟아온 김행장다운 발언이었다.이후 국민은행은 지나간 평가기록에 치우치지 않고 영업실적과 능력만을 근거로 처음부터 다시 인사평가를 실시하기 위한 대대적인 시스템 정비에 나섰다.또 하나 김행장은 창의성을 중시한다. 김행장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오히려 은행의 수익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으며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히딩크가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우리 팀에는 선후배가 따로 없다. 후배도 필요하면 선배에게 주문을 하고, 선배들 역시 후배들에게 큰소리치지 말라. 지시를 받아 움직이기보다 그라운드에서 창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김행장의 낙관적 결단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행장은 한 인터뷰에서 “결단을 내릴 때마다 무엇이 가장 큰 도움이 됐느냐”라는 질문에 “낙관적인 성격”이라고 강조했다.김행장은 “부자나 성공한 사람 중에 부정적·비관적인 사람보다 긍정적·낙관적인 사람이 훨씬 더 많다”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봐야 아이디어도 나오고, 또 그에 따라 발전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히딩크 역시 인터뷰 때마다 “철저히 준비하는 만큼 좋은 성적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단 한번도 비관적인 얘기를 한 적이 없다.이는 프랑스 출신 트루시에 일본국가대표팀 감독이 유럽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16강에도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변한 것과 크게 비교된다.히딩크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경영자로는 최태원 SK(주) 회장을 꼽을 만하다. 최회장은 평소 신입사원들과의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 등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SK의 조직문화에 대해 자유롭고 상하 간에 격의가 없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최회장의 인사스타일 역시 히딩크를 떠올리게 한다. 능력만 있다면 국적이나 나이, 경력, 성별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 최회장의 소신이다.최근에도 최회장은 최고경영진 회의에서 능력위주의 인사채용에 대해 강조하고, 최고의 인재를 적극 뽑아 기업의 맨파워를 극대화할 것을 주문했다.그러면서 “앞으로 회사 내 공식언어는 영어와 중국어”라며 글로벌 경영시대를 맞아 사원들의 능력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상당수 경영자들 ‘히딩크식’경영 실천서두칠 이스텔시스템즈 사장은 직원들과 현장에서 호흡을 같이 한다. 직원들을 독려하며 솔선수범하는 스타일이다. 한국전기초자 사장 시절 직접 발로 뛰며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려낸 것도 이런 그의 경영방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격렬하게 부딪히며 땀을 흘리는 히딩크 감독 역시 솔선수범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서사장의 위기극복 방법 또한 독특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공격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더 열심히 일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히딩크 역시 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후 한때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이때 오히려 체력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등 더욱 공격적으로 팀을 단련해 위기를 극복했다.국내 벤처기업의 간판으로 떠오른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은 핵심역량의 집중이라는 점에서 히딩크와 공통분모를 이룬다. 휴맥스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용인공장을 포함해 평택공장, 안산공장 모두 직영공장이 아니다. 모든 생산은 아웃소싱을 주고 있다. 회사는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변사장의 경영방식은 협력업체 공장에 야근이 없다는 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리 물건이 달려도 생산직 사원이 밤에 일하는 경우는 없다. 변사장 스스로 야근의 경우 주간에 비해 생산성이 월등히 떨어진다는 생각에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이 밖에도 상당수의 경영자들이 ‘히딩크식 경영’을 이미 실시 중이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연봉제를 맨 처음 실시한 두산 경영진의 경우 일찌감치 능력위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해 적잖은 성과를 거두었다.전자, 화학, 통신 등을 주력으로 정해 집중투자하고 있는 LG의 구본부 회장이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화를 탈바꿈시킨 김승연 회장 역시 핵심역량 강화라는 측면에서 선견지명이 있다고 평가된다.히딩크식 스타일의 경영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장점이 많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 히딩크에 대해 경영학적 측면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조직이 이를 소화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다.어윤대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히딩크가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면서 보여준 능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며 “기업 현실에 맞게 선별적으로 도입해 경영에 적용시키면 많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