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상징 … 돼지고기 등 모든 먹거리 ‘블랙’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검은색의 컬러 이미지는 무겁고 딱딱하다. 격조 높고 세련된 컬러라며 유독 검은색만을 고집하는 멋쟁이들도 많지만 밝고 환한 것과는 일단 거리가 멀다.겉모양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당기고 입맛을 자극해야 하는 먹거리 입장에서 볼 때 검은색은 일단 제조자들로부터 환영받기 힘든 색상이다.밝고 화려한 색이 주종을 이루는 먹거리 시장에서 검은색은 어딘가 모르게 칙칙하고 둔탁한 느낌을 줘 제품 판매에도 마이너스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본 식품시장에서는 이같은 선입견과 상식을 뒤집는 ‘큰 사건’이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다. 검은색을 앞세운 블랙 먹거리의 대약진이다.검은 쌀, 검은 설탕이 인기를 끄는 것은 물론이고 쇠고기, 돼지고기, 사탕, 국수, 라면, 식초 등 수많은 먹거리마다 블랙을 앞세운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전국상공연합회가 운영하는 도쿄 유락초의 향토특산물 직매장의 경우 ‘검은 바람’의 위력이 가장 생생하게 나타나는 매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전역의 2,800여 촌(한국의 면·리에 해당)에서 공급한 1,000여 특산물을 팔고 있는 이곳에서 블랙 먹거리의 인기는 단연 독보적이다.검은 쌀, 검은 콩으로 만든 차 등 50여 종이 나와 있는 블랙 먹거리는 다른 상품들보다 값이 비싸지만 상당수가 이 매장의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이 매장을 찾는 고객수는 하루 1,600여 명. 매장 관리인 아오야마 도모코씨는 “일반인도 많지만 백화점 구매담당자들도 좋은 상품을 찾기 위해 들르는 경우가 많다”며 “블랙 먹거리 가운데서는 이들의 눈에 띄어 대박을 터뜨린 것도 적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그는 “아키다현의 검은 쌀과 홋카이도 도카치의 흑콩차가 대표적 사례”라면서 “유독 검은색 식품에 관심을 갖는 고객이 많아 히트상품 탄생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점치고 있다.블랙 먹거리 중 일본 소비자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상품은 가고시마현의 대표적 특산품인 검은 돼지고기다. 검은 털 돼지의 고기를 말하는 이 돈육은 물론 육질까지 검은 것이 아니다.외관상으론 일반 돼지고기와 별 차이점이 없다. 하지만 청정지역에서 사육된 돼지를 도축했다는 점과 검은색이 주는 특유의 이미지가 시너지효과로 작용,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가짜 블랙 위조 상품까지 등장 ‘골머리’도쿄 식육시장에서는 매일 1,070두의 돼지가 상장되지만 가고시마산 검은 돼지가 나오는 것은 한 달에 한 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15마리에 불과할 정도로 양이 극히 제한돼 있다.따라서 지육 평균가격으로 볼 때 검은 돼지고기는 ㎏당 1,500엔으로 다른 고기의 3배나 되지만 업자들은 너도나도 돈을 싸들고 치열한 물량확보 싸움을 벌이고 있다.업계 관계자들이 시장에 나도는 검은 돼지고기의 90%는 가짜일 것이라고 실토할 정도로 검은 바람은 돈육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가고시마현은 검은 돼지고기의 인기를 이용, 아예 검은색을 상징색으로 삼고 다른 향토식품에도 블랙이미지를 강조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검은 돼지고기로 만든 육가공제품은 물론이고 흑설탕, 검은 식초, 흑사탕소주, 검은 쇠고기 등 블랙 먹거리를 잇달아 내놓고 판로를 확대,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블랙 먹거리의 인기비결과 관련,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간의 건강붐을 가장 큰 배경으로 꼽고 있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흰쌀보다는 현미·흑미를, 흰설탕보다는 흑설탕을 선호하는 풍조가 뿌리내린 것이 검은색 식품의 인기를 급격히 밀어올렸다는 것이다.식문화연구가 나카야마 히사오씨는 “일본인들은 검은색 자체가 갖고 있는 ‘힘’을 은근히 믿는 것 같다”며 “검은색을 받드는 전래의 식문화가 의외의 경제효과를 창출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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