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신화 ‘관서흥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금융기관들로부터 소외된 재일한국인들의 상부상조와 금융편의를 도모할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재일한국인신용조합이다.한때는 재일한국인들의 유일한 금융기관인 신용조합이 일본 전국 각지에 약 40개가 있었다. 한국인신용조합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사실상 한국인신용조합들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조합이 바로 ‘관서흥은’이다.‘관서흥은’은 1955년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재일한국인들에 의해 설립된 이후 발전을 거듭해 예금액 등 외형적으로 볼 때는 일본 국내의 작은 지방은행 수준에 육박할 정도의 그야말로 초대형 신용조합이었다.그러나 90년 이후 일본경제가 장기 불황을 겪게 되면서 재일한국인들의 경제사정도 점차 악화됐고, 이에 따라 회수불능의 부실채권들이 누적되면서 한국인신용조합들도 경영이 악화돼 규모가 영세한 신용조합부터 차례로 하나둘씩 퇴출되기 시작했다.이에 위기감을 느낀 ‘관서흥은’측에서는 지난 93년부터 규모가 영세한 재일한국인신용조합 5개 조합을 전략적으로 합병해 외형적인 규모를 키워 나갔다. 나아가서는 일본 전국에 산재해 있는 재일한국인신용조합들과도 제휴하거나 합병을 추진해 신용조합에서 지방은행으로 업종을 격상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이는 그때까지 대형 금융기관, 특히 은행은 결코 도산시키지 못하는 일본 금융당국의 관행을 역이용해 생존을 담보받으려는 궁여지책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필생의 전략이기도 했다.그러나 ‘관서흥은’에 의한 여타 한국인신용조합들과의 전략적 합병 및 은행으로의 격상 노력은 전혀 진전이 되지 않았다.게다가 장기불황의 여파로 97년을 전후해 은행을 포함한 대형 금융기관일지라도 부실 금융기관의 경우에는 퇴출도 불가피하다는 일본 금융당국의 정책변화로 일본 금융당국의 정책적인 지원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자연히 잃게 되었다.마침내 예금액 1조엔을 자랑하던 재일한국인신용조합의 중심축이었던 ‘관서흥은’은 2000년 12월 채무 초과를 이유로 일본 금융당국의 직권에 의한 파산명령에 의해 사실상 퇴출됐다.2002년 6월 말까지 남은 부채와 자산을 다른 신용조합에 양도한 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재일한국인신용조합들이 차례로 도산되는 등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이들을 돕기 위해서 보여준 노력은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이었다.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재일한국인신용조합의 숫자는 한창때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20개 정도이다. 이 중에는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신용조합이 포함돼 있다.비록 재일한국인신용조합이 일본 국내법에 의해 통제를 받는 일본 금융기관이긴 하지만 엄연히 한국인들의 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해 설립된 조직이라는 특수성도 있는 만큼 우리 정부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일한국인신용조합들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 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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