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경제학 교수이자 등의 저자인 토드 부크홀츠는 라는 미래경제 예측서에서 ‘가위 경제’라는 얘기를 한다. 인터넷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소비자들의 거의 모든 거래에서 중간 상인을 ‘싹둑싹둑 잘라낸다’는 것이다.이 책에는 ‘…이제 누가 여행사 직원을 필요로 하는가? 주식중개인, 보험설계사, 서점 등을 누가 필요로 하는가…’ 라는 구절이 있다. 토드 부크홀츠뿐만 아니라 많은 저명한 미래 트렌드 예측가들은 미래 경제에는 중간자가 설 땅이 없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곤 했다.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생겨나고 있는 ‘신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직업들을 보면 이런 저명인사들의 예언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판매자와 소비자를 잇는 ‘중간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더구나 이 중에는 고소득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택담보대출을 중개하는 모기지브로커 박만규씨는 요즘 매달 200억원의 대출실적을 기록하고, 월 5,0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특정 보험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여러 보험사 상품을 가리지 않고 판매하는 보험중개인 이근혜씨 역시 매월 5,000만원 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업종에 따라 편차는 다양하며 브로커의 대명사 같은 주식중개인이나 부동산중개인과 같은 ‘고전적인’ 브로커들은 이 같은 호황과는 거리가 있다.양쪽을 중개하는 게 주요 역할이므로 이들을 넓은 의미에서 ‘브로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브로커요’라고 자칭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브로커라는 말은 다분히 부정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왜 중개인들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다양하게 생겨나고, 또 호황을 누리는 것일까? 토드 부크홀츠의 견해와는 정반대로 미국의 영업 전문가인 로버트 슈크와 브릿 베머는 라는 책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썼다.소비자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길 원하며, 무시당하거나 그저 ‘대중’으로 똑같이 취급당한다고 느낄 때는 구매를 하지 않는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너무 많은 정보에 질려 조언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조언은 인터넷사이트나 대형할인점에서는 얻을 수 없다. 지속적인 유대관계,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세심한 배려와 같은 것은 사람 외에는 없다. 중개인들이 활황을 누리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다양한 분야에서 만난 중개인들의 말 역시 정보가 너무 많고, 지나치게 복잡해 개인들이 모두 처리하기에는 시간과 노력,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문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복잡한 미국사회는 이미 브로커들의 천국이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데 파생되는 업종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금융사인 하나파이낸셜팩토링의 매니저 숀 리는 주택구입절차를 예로 들었다.“집 한 채를 구하는 데 거래가 완전히 끝나기까지 3~4명의 중개인이 개입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먼저 집을 물색하기 위해선 부동산중개 에이전트 회사를 찾는다. 대부분의 부동산중개업자는 이 같은 회사에 소속돼 있다.살 사람과 팔 사람이 만나 거래의사가 확인되면 일종의 공탁회사(Escrow company)가 다음 일을 맡는다. 매매에 따르는 서류를 작성하고, 거래가 끝나면 관련기관에 거래내역이나 소유사항 변경등록을 해주는 브로커다.만약 주택구입 과정에서 대출을 신청했다면, 사설 모기지회사가 또 개입된다. 은행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모기지회사도 많다. 이 회사에 소속된 모기지브로커들이 신청자의 자격조건을 확인, 서류를 구비하고 융자를 처리한다.다양한 업종과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발히 뛰고 있는 중개인들을 찾아 본 결과 이들로부터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주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만의 영역을 갖고 있는 전문가라는 점 등이다.한 예로 은행에서 대출을 심사할 때 쓰는 스코어링시스템보다 모기지브로커의 영업경험에서 쌓인 노하우가 더 정확할 때가 많다.“스코어링시스템은 정보를 입력해 산술적으로 부실위험을 계산하지만 우리는 직접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고 집으로 찾아가기 때문에 이 사람이 대출상환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그 판단은 매우 정확하다”는 게 대출중개조직을 운영하는 윤석진씨의 말이다.긍정적인 의미의 브로커가 제 몫을 다할 경우 각종 경제행위의 원활한 흐름을 돕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판매자 입장에선 회사 내에 비용이 많이 들거나 손이 많이 가는 업무를 처리할 부서를 두는 대신 아웃소싱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소비자는 편리성 때문에 좋다는 것이다.베테랑 브로커들은 한결같이 “좋은 성과를 내는 브로커가 되기 위해선 판매자, 소비자에게서 ‘믿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한 은행의 임원은 특히 영업분야에서 새로운 유형의 전문화된 중개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브로커 전성시대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