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의 금융지배는 반대...철도.전력 등 망관련 산업 민영화는 신중히 추진돼야
“이제 제왕적 대통령이 통치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권한은 아래로 위임하고, 회의의 주재자 같은 역할을 대통령이 담당해야 진정한 국가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와의 인터뷰에 앞서 서면으로 한 질문에 대해서는 A4용지 10장에 충분히 답이 돼 있으니 다른 얘기를 해보자고 했다. 그의 얘기는 공무원 평가시스템 문제에서부터 아시아통화기금 설립문제까지 펼쳐졌다.다양한 주제로 인터뷰가 진행된 20여 분 동안 노후보는 열정적으로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론’을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국민들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라는 말로 대통령관을 피력했다.노후보는 또 “지금 같은 정보화사회에서 대통령에게만 모든 의사결정이 집중된다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평소에 자주 언급한 ‘김대중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겠다’는 발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자산이라 함은 김대중 정부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IMF 경제위기의 극복과 경제구조조정, 생산적 복지정책과 남북간의 화해협력정책의 추진을 들 수 있습니다.이러한 업적은 차기정부의 자산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반면에 현 정부의 부채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또 시도했으나 실패한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가장 빨리 떠오르는 것은 지역분열의 정치구도와 인사정책의 실패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 권력형 비리의 빈발, 노사협력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등도 꼽을 수 있습니다.저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지역구도를 정책구도로 만들고, 정실·연고주의 인사를 뿌리 뽑을 것이며, 권력형 비리가 생길 수 없도록 독립적이고 투명하며 공정한 검찰권을 확립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를 확대발전시켜 노사협력체제를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습니다.노후보의 경제정책은 대체적으로 사회적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성장과 분배는 어떤 식으로 조화시킬 생각이십니까.성장론자냐, 분배론자냐 하는 부분에서 제가 오해를 받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은 국민이 잘살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할 덕목입니다. 저는 국민 모두가 향상된 삶의 질을 향유하는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복지국가의 건설은 시장안정과 적절한 성장의 바탕 위에 가능한 것이므로 복지와 성장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되고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따라서 적절한 분배구조를 갖추면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고 국민적 통합에 의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의 확대로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분배의 정책은 사회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시각에서 모색돼야 합니다. 세제의 형평성을 실현해 소득이나 상속·증여세에 대한 세금의 탈루를 예방하고 재정을 확충해야 합니다.빈곤 계층의 증가를 해소하기 위해 극빈층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한 지원과 함께 직업재활을 위한 훈련과 취업알선 등의 정책이 병행돼 자활할 수 있도록 돼야 합니다. 극빈층의 바로 위 계층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혜택보다 의료보호나 교육급여 등과 같은 부분적인 지원이 가능할 것입니다.아울러 근로자를 위해 최저임금제도를 개선하고 재산형성과 생활안정을 위한 각종 배려를 통해 중산층에 포함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여성과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도 재정의 여력이 허용하는 한에서 확대돼야 합니다.이러한 노력들은 삶의 질과 근로의욕을 높일 것이며, 전제된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통한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산업자본의 금융지배는 절대 허용해선 안 됩니다.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들 중 어느 나라도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동일인의 은행주식보유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의 통과가 거의 확정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산업자본이 은행경영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습니다.따라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금융감독을 강화하고, 적어도 은행에 대해선 집단소송제와 집중투표제를 도입해 시장에 의한 감시와 견제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은행의 사금고화 가능성을 차단해야 합니다.또한 우리나라의 재벌은 모두 산업자본이므로 재벌이 은행을 지배하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이 같게 됩니다. 만일 재벌총수가 계열은행에 대출을 지시하면 은행장은 거부하기 힘들 것입니다.IMF 위기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재벌이 종금 등 제2금융권을 소유해 과잉 투자한 것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민영화와 관련해 조속한 자금회수를 위해 재벌에 매각하자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무리하게 서두르는 것보다 은행의 경영상태, 주식시장의 여건 등을 봐 공적자금을 적절히 회수할 수 있을 때 매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만약 대통령에 당선되면 경제정책을 어떻게 펼쳐나갈 계획이십니까?정치지도자는 경제전문가들의 전략을 이해하는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대신 그들이 뭘 생각하고 주장하는지 알 수 있는 논리력·직관력과 함께 자신의 노선과 철학을 가져야 하겠지요.경기대책과 관련해서는 무리하지 않고 시장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의 가치지향이나 철학이 드러나는 때는 ‘어떤 시장 메커니즘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입니다.장기적으로 세계사의 조류를 꿰뚫어 보면서 다른 사람보다 한 단계 높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는 게 경제정책을 펴는 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지금까지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항상 공무원 감축을 추진했습니다. 공무원 감축문제에 대한 노후보의 견해가 궁금한데요.바람몰이식 공무원 구조조정에는 반대합니다. 물론 줄여야 할 곳은 줄이고 늘려야 할 곳은 늘려야겠지요. 하지만 획일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할 경우 소위 힘 없는 곳만 줄고, 힘 있는 부처는 오히려 늘어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단편적인 바람몰이식, 소나기식 인원감축보다 인력을 재배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성과를 분석하고 측정하는 일상적 평가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겠지요.어쨌든 저는 단순하게 총원 기준으로 줄이는 접근방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국민서비스의 공백도 우려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 대비 공무원 숫자가 가장 적은 나라에 속합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논할 문제가 아닌 거지요.민간에서 경제부처 장관을 영입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누구든지 유능한 분이라면 각료로 모셔서 국가발전에 공헌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 케이스가 있지 않습니까?물론 이장관은 관료출신으로 민간분야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순수 민간분야에서 장관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과 정책이 상호교류할 수 있다면 국리민복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미국의 경우도 골드만삭스 회장이었던 로버트 루빈을 재무장관으로 영입해 10년 호황의 기틀을 마련한 일이 있습니다. 민과 관을 서로 오가며 실물경제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국가와 국민에 봉사할 기회를 갖는다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철도 등 일부 산업의 공기업민영화에 대해서는 현 정부와 견해가 다른 것 같은데요.철도, 가스, 전력 등 망(網)관련 산업의 공기업민영화는 포괄적인 의미의 공기업민영화보다 더욱 신중하게 추진돼야 합니다. 전국 규모의 독점적인 공공서비스이기 때문에 공공성을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영국의 철도민영화 실패사례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전력민영화 후에 겪은 전력위기사태 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영화 여부를 떠나 경영시스템의 개선을 통한 경영효율성과 생산성의 향상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사기업에 못지않은 경영자율성을 보장하되 책임이 따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민영화 과정에서의 독점적 특혜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해관계자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보완방안을 강구함은 물론이고 증시와 경제상황 등에 따라 신축적인 결정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아시아통화기금(AMF)을 창설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노후보의 견해를 밝혀주시지요.세계경제는 유럽권, 북미권이 각각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고, 국민의 정부에서는 동북아경제통합을 위해 이미 ‘아세안+3’ 등을 적극적으로 주장해 왔습니다.동아시아 경제협의체의 창설은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가 안정되는 균형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로 이러한 지역경제통합의 추세와 함께 해당 지역 국가들의 유동성문제와 국제투기자본에 의한 보호장치로서의 역할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19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통화기금(EAMF)의 설립 논의가 있었으나 IMF, 미국, EU 등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아시아 역내에서도 어느 나라가 주장하느냐에 따라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만일 일본이 이를 주장하면 대동아공영권의 문제와 연결되며, 중국은 패권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따라서 한국이 주도하여 한·일·중을 중심축으로 추진하는 방안이 있고, 보다 진전된 방식의 기구 설립 추진도 가능합니다. 단, 이러한 논의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관계 및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며, 동아시아 지역 내의 관련 경험이나 역내외의 역학관계 등에 대한 검토가 수반돼야 합니다.우리 경제는 물론 국가전략에 있어서 해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김재철 무역협회장이 해양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습니다만, 해양수산부의 대회의실에는 거꾸로 그린 세계지도가 걸려 있습니다.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북극이 위쪽에 있는 지도가 아니라 남극이 위쪽에 그려진 지도이지요. 이 세계지도를 바라보다 보면 우리나라는 유라시아대륙의 끝에 매달린 자그마한 반도국가가 아니라 대륙을 발판으로 태평양으로, 세계로 뻗어가는 전진기지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특히 부산은 홍콩에서 미국의 서부지역으로 가는 최단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일본의 고베나 중국의 상하이 이상으로 부산은 아태지역의 물류중심지로서 훌륭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지요.이러한 유리한 입지를 살리기 위해선 전 국민이 해양과 해운물류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그다음 단계로 항만확충에 재원을 투입하고 연관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영국의 런던이나 로테르담, 그리고 싱가포르와 같이 물류산업과 동시에 금융산업 등 서비스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나라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