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입장’서 사건 이해·수습 나서야

협력업체 도움받아 전사적 대응 필요, 모든 활동 문서화.안전기업 이미지 쌓아야

7월1일부터 제조물책임(PL)법 시행으로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소비자들의 입증 책임이 크게 완화됐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제조업체의 고의나 과실 여부를 입증해야 했다. 또한 그로 인해서 제품의 결함이 발생했으며, 이 제품이 소비자에게 피해를 야기했다는 몇 단계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했다.그렇지만 새로이 제정된 PL법에 따르면 소비자는 제조업체의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제품의 결함이 신체나 재산상 피해를 야기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또한 PL법이 도입되면서 제조물과 제조업체의 범위가 넓어진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이에 따르면 제조물에는 자연농산물 및 수렵물을 제외한 모든 동산이 포함된다. 부동산은 제조물에 해당이 되지 않으며, 다만 건축물에 시공된 승강기, 배관 등은 제조물에 포함된다.이와 함께 제조물책임의 주체도 확장된다. 제조업체는 1차적으로 완성품 제조업자(OEM업체 포함)이며, 넓은 의미에서 결함을 야기한 부품,원재료 제조업자, 외국산 제품의 수입업자, 판매업자 등도 제조물책임을 지게 된다.예를 들어 제조사 불명의 수입산 제품에 의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라도 수입판매업자가 손해배상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PL법의 도입과 제조물책임의 강화는 분명 제조업체들에 불리한 것임이 사실이다.무엇보다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PL 대응체제를 구축하는 데 단기적으로 적잖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이나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PL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커다란 부담을 느낄 전망이다.그렇지만 PL 문제로 법정에 가는 상황보다 예방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만에 하나 PL 문제로 피소된 제조업체가 패소할 경우 소송비용과 배상금 부담은 물론이고, 이미지 실추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그렇다면 PL법 도입은 무조건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PL법 도입취지에서는 소비자 권익보호와 함께 기업경쟁력 강화를 강조한다.즉 PL법은 기업에도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작용하는 긍정적 측면도 가진다는 것이다.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우선 제조업체들은 PL법 도입을 계기로 품질안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제품의 설계, 제조, 유통 등의 과정에서 이전보다 세심한 결함예방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다.이 과정에서 업체 간의 우열이 가려질 것이며, 안전기업으로 거듭난 업체는 기업이미지 제고, 경쟁사와의 차별화 등을 통해 경영상 이득을 얻게 된다. 또한 품질 및 안전성이 뛰어난 제품은 글로벌스탠더드에 합치해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될 수 있다.이번 PL법의 도입은 확실히 경영환경의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달라진 환경에 처한 제조업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기업 입장에서는 먼저 PL법을 이해하고 차근차근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들이 PL법 시대에 명심해야 될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 점검해봤다.소비자를 왕처럼 받든다첫 번째로 강조할 사항은 소비자를 최우선시하라는 것이다. PL법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피해구제를 확대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불만이 없고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제조업체들은 PL법 내용을 몰라도 될 것이다.하지만 만에 하나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해당 기업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해하고 수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업이 어려운 기술용어를 동원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는 이미지 실추 등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더욱이 소비자들의 의식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제품의 안전과 품질에 대한 기대수준도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는 점을 업체들이 인정해야 한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자세로 업무를 처리하고, 민원이 발생했을 때 지체 없이 소비자 입장에서 처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소비자를 왕처럼 받든다둘째, PL 대응활동을 품질부서에 국한하는 오류를 피해야 할 것이다. 제조물은 설계단계에서부터 폐기되는 순간까지 제조업체의 소관 사항이다. 제조과정에서 품질관리만 이뤄진다고 PL대책이 완결될 수 없는 것이다.소비자의 안전을 중시하는 제조업체가 되려면 CEO부터 평직원에 이르기까지 품질안전에 대한 마인드를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담당자가 아니다’라는 사고는 문제를 키우는 주범이 될 수 있다. 전사적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목이다.특히 소비자 안전과 밀접한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들은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소비자보호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식품, 가전제품, 주방용품, 의약품, 자동차 등의 순으로 소비자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이에 해당되는 업종의 제조업체들은 소비자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반드시 의식해야 한다. 이 다음 단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사내 PL 대응체제를 구축하고, 각 부서별로 소비자 안전 향상에 필요한 개선점들이 도출될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협력업체와 공동으로 대응한다넷째, 완성품 제조업체의 입장이라면 협력업체의 PL 대응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제조물은 여러 부품들로 구성되며, 기술단계가 높은 제품일수록 부품수가 많아진다. 최근에는 글로벌화에 따라 해외부품의 아웃소싱도 잦아지고 있다.그런데 특정부품 하나가 불량일 경우 완성품도 불량으로 이어지고 소비자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체 제품은 멀쩡한데 한 군데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것이다.따라서 완제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완성품업체는 국내외 부품협력업체의 PL 대응수준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상호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 만일의 PL 소송시 양측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경우 양측은 모두 피해를 입게 된다. 두 회사 사이에 비상연락체제를 마련해야 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공유해야 한다.모든 PL 대응활동을 문서화한다다섯째, 사내에서 이뤄진 모든 PL 대응활동을 문서화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다 하더라도 기록된 것이 없다면 허사다. 기본적으로 PL은 사후적 구제조치이고 최악의 경우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이럴 경우 문서로 되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결과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특히 제품의 설계, 제조, 경고표시 등 일련의 과정에서 안전성에 대해 기존 기술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였음을 입증할 수 있는 문서를 보관해야 한다.개별제품의 개발 및 생산에 관한 문서는 매우 방대할 것이므로 기록된 날짜의 증명이 가능한 형태의 전자문서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련 문서를 챙기는 전담직원의 배치도 고려해볼만 하다.평소 안전기업의 이미지를 쌓아둔다마지막으로 제품안전에 있어 앞서 있는 기업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축적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PL보험에 가입한다든지 피해자와 무조건 합의한다든지 하는 것은 소극적 PL대응이다. 적극적인 관점에 입각해 평소부터 안전기업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일반적으로 제조업체는 자사의 안전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만에 하나 PL 관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비자 입장에서도 평소 기업의 이미지에 따라 대응태도를 달리할 가능성이 크다.어느 제조업체의 제품이 전반적으로 안전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는 경우 제품의 사용상 문제를 업체 책임으로만 돌리려는 악의적 소비자의 시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또한 PL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해관계자, 언론, 법조계 등으로부터 호의적인 대우를 받을 가능성도 크다. 업체가 PL 소송에서 패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품질이미지가 좋은 회사라면 조기에 이미지 회복이 가능한 반면, 그렇지 않은 회사는 한두 번의 PL 관련 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을 것이다.이상의 사항들은 PL법시대에 기업들이 명심해야 될 최소한의 것인지도 모른다. 결함 없는 제품, 안전한 제품을 만들려는 제조업체들의 시도는 다각도에서 끊임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또한 단순히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실체적인 품질개선이 이뤄지고 광고, 홍보 등의 수단을 활용한 안전이미지 개선활동이 수반될 때 PL 대응활동은 좋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돋보기 쉽게 풀어보는 PL법 Q&A7월1일 이후 제조사 손 떠난 제품 대상Q:상당수의 선진국들이 PL법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들인지 알고 싶다.A: 전세계적으로 약 20개국에서 이 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은 우리나라와 교역을 많이 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을 비롯해 EU,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이들 나라는 우리나라가 준비한 PL법보다 더 강력하게 소비자들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집단소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도입 초기인 점을 감안해 이 제도를 유보시켜 놓고 있다.Q:기업과 소비자가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은 PL법의 적용시점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A: 약간 까다롭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하는 문제다. 일단 7월1일 이후 제조업체의 손을 떠난 제품이 대상이 된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제조업체 직영점의 경우 7월1일 이후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이 대상이 되고, 일반 판매점에서는 7월1일 이후 입고된 제품이 PL법의 적용을 받는다.같은 제품이라도 창고에 재고로 있다가 7월1일 이후 출고됐다면 적용을 받지만 이전에 유통돼 판매점에 재고로 남아 있었다면 해당되지 않는다.Q:그렇다면 제조업체의 책임기간은 언제까지인가. 아울러 소송 가능한 기간은.A: 제조업체는 공급일로부터 10년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에 시중에 나온 지 9년11개월 된 제품을 구입해 2개월간 사용한 뒤 손해를 입었다면 제조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또 소송 가능 기간은 손해 발생 3년 이내다. 다만 석면, 수은 등 화학물질이 인체에 누적, 잠복해 있다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손해 발생 시점 10년 이내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Q:결함만으로도 제조업체는 처벌을 받을 수 있나.A:그렇지 않다. PL법은 소비자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데 법의 취지를 두고 있다. 따라서 결함만으로는 처벌되지 않고, 소비자가 손해를 봐야만 한다. 따라서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결함이 있을 때 재빨리 리콜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Q:OEM업체나 수입업자도 PL법 적용을 받는가.A:OEM업체는 제품을 직접 제조하기 때문에 의무를 진다. 제품을 공급받는 업체의 지시를 따랐다고 해도 책임을 벗을 수 없다. 수입업자는 해외 제조업체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을 때 책임을 진다. 따라서 해외에서 완제품을 들여올 때는 제조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Q:PL법과 관련해 기업 입장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어디인가.A:중소기업청이 운영 중인 중소기업 PL상담실(본청 042-865-6147)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PL사업팀(02-2124-3082) 등으로 연락하면 된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02-3771-0114)와 대한상공회의소(02-316-3114) 등에서도 자문을 받을 수 있다.Q: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이 봇물처럼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외국의 사례 등을 감안해볼 때 어떠할 것으로 예상하는가.A: 당장 소송이 크게 늘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에도 도입 첫해를 보면 전년도에 비해 2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고됐다.특히 소송 전에 양측이 의견을 조율할 기회가 많은 만큼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고소 및 무고 건수가 많다는 통계가 있는 만큼 이 점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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