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기 ‘먹구름’… 재둔화 우려감 증폭

요즘 들어 미국경제와 증시가 흔들리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난기류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미국주가와 달러화 가치의 약세현상이 뚜렷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르헨티나사태에서 비롯된 개도국 금융위기도 인접국가로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시간이 갈수록 이런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세계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태세다. 일부에서는 9·11테러 이후 어렵게 마련된 이번 세계경기의 회복세가 조만간 재둔화(Double Dip)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주목된다.미국증시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이 갑자기 불안해지고 있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신뢰감 상실과 미국경제의 위상 약화에서 비롯됐다.한동안 글로벌스탠더드로 각광을 받았던 미 자본주의시스템이 엔론사태와 이후 잇단 미국기업들의 분식회계 문제, 감독기관의 소홀 등으로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을 맞고 있다.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미국 자본시장을 외면하면서 이미 주가는 9·11테러 당시와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 달러화의 가치도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약세현상을 보이고 있다.벌써부터 미국경기의 재둔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올 하반기 이후에는 금리인상보다 금리를 다시 내려야 한다는 ‘재인하론’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그동안 방관자 자세로 일관했던 부시 미국대통령도 “당면한 미국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호소했다. 현재 민간이 주축이 돼서 회계책임위원회(PAB)와 블루·리본위원회 신설 등을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 중이다.미국주가가 하락함에 따라 미국으로 유입됐던 국제투자자금의 이동이 종전의 흐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하나는 미 자본주의체제의 신뢰상실과 최근 들어 글로벌펀드들이 안전 자산을 다시 선호하는 경향(Flight To Quality)이 높아지면서 미국증시에 투자한 유럽계 자금과 일본계 자금은 본국으로 회귀하는 성향이 뚜렷하다.다른 하나는 미국기업들의 부진한 실적보전과 주가하락으로 수익률이 떨어진 글로벌 펀드들의 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을 줄이는 소위 디레버리지(Deleverage) 과정에서 개도국들에 투자했던 자금들은 회수하고 있다.최근의 국제간 자금이동은 특히 개도국들에 커다란 타격을 끼치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아직까지 미미하나마 미국증시로 자금유입세가 유지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해 4/4분기 중 월평균 577억달러에 달했던 투자자금의 미국 유입액은 올 들어 154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우려되는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국증시에서 자금이 이탈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국제외환시장에서도 95년 4월 미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플라자합의(Anti Plaza Agreement) 이후 지속돼 있던 ‘강한 달러화’(Strong Dollar)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무엇보다 90년대 초에 이어 무역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보이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시대가 재연됨에 따라 달러화표시자산에 대한 매력이 잃고 있기 때문이다.이번 미 달러화 약세의 특징은 일본, 유럽 등 상대국의 요인보다 주로 미국경제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달러화 약세국면이 지속돼 신플라자체제로 나갈지, 아니면 조만간 미국경기가 안정돼 달러화 가치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여부를 쉽게 점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이런 점을 감안해 국제통화기금(IMF)은 앞으로 주요 통화가치는 등락을 거듭하는 불안한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환율변동폭이 커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데킬라 효과’도 본격화되고 있어미국증시 불안과 함께 아르헨티나사태도 인접국으로 확산되는 소위 ‘데킬라 효과’(Tequila Effect)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미 칠레, 베네수엘라가 금융불안에 휩싸였다. 최근 들어 브라질, 우루과이, 멕시코 금융시장의 움직임까지 심상치 않다.인도네시아사태는 기술적 파산상태(Technical Default)에 처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금융기관의 대규모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중국이 갈수록 재정사정이 악화돼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따라서 개도국의 금융위기는 미국과 IMF가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는 부시행정부 들어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IMF가 개도국 금융위기에 대한 입장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다시 말해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는 미국과 IMF가 인접국으로의 전염 가능성을 차단하고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곧바로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신속지원의 원칙’을 취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찾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문제는 부시행정부 들어 금융위기는 위기를 발생시킨 당사국의 책임이라는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자금지원에 인색한 것이 개도국 금융위기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결국 최근의 개도국 금융위기는 미국의 책임도 있다고 봐야 한다. 그만큼 미국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짐에 따라 당초 낙관적으로 예상됐던 올 하반기 이후 세계경기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아직까지 세계경기는 불안한 가운데에도 회복국면이 유지되고 있으나 증시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이 조만간 안정을 찾지 못할 경우 재둔화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결국 세계경기가 재둔화되는 최악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국제금융시장, 특히 미국주가와 달러화 가치가 안정을 찾아야 한다.불행하게도 이 점에 있어선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시스템에 대한 신뢰상실이라든가 쌍둥이 적자문제가 구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국제금융시장과 세계경제의 안정을 위해 단기적으로 선진국들이 어떤 공조방안을 마련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비록 미국의 일방주의로 현시점에서 공조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 미국경기가 재둔화되고 그 영향이 다른 국가들에 본격화될 경우 궁극적으로는 공조방안을 통해 세계 각국이 안정을 찾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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